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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의 무풍지대, 신상 같은 공짜폰

2015.01.19

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통신 시장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단말기 가격이 높아졌다는 지적은 여전하고, 시장이 왜곡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장이 안정되고 구형 단말기를 사기는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아직 좋다 나쁘다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단통법이 시행되기 3달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조금씩 뭔가 변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통신사들이 시행하는 새 요금제나 정책들은 긍정적인 부분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위약금 부분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위약금, 할인반환금 같은 말은 아직도 너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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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가입자가 통신 서비스를 해지할 때는 두 가지 위약금이 청구됩니다. 하나는 그동안 할인해주었던 요금을 도로 뱉어내야 하는 ‘약정할인 반환금’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가입 시점에 일정 기간 약정을 약속하고 할인 받은 단말기 보조금을 물어내야 하는 ‘위약금’입니다.

위약금이라는 건 말 그대로 서로간의 계약을 해지할 때 물어야 하는 비용입니다. 서비스를 미리 정한 기간동안 쓰는 대신 비싼 요금과 단말기 할부금을 할인해주는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입자가 개인적인 사유로 해지할 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위약금 제도는 가입자가 중간에 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통신사의 안전 장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단말기를 잃어버리거나 단말기가 고장났을 때는 남아 있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습니다. 이 때문에 ‘족쇄’, 혹은 ‘노예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위약금 제도는 통신사들이 번호이동을 통한 가입자 빼내기 경쟁이 심해지면서 더 강력해져 왔습니다. 위약금을 강하게 운영할수록 해지할 때 부담을 많이 주어 가입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잠금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신사들이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주어도 그리 손해볼 게 없었던 겁니다.

최근 LG유플러스가 위약금 상한제를 내놓았습니다. 단말기를 깎아준 금액에 대한 위약금을 출고가의 절반 이상은 안 받겠다는 정책입니다. 대상은 출시된 지 15개월이 지난 단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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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최신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은 제한되지만 출시된 지 15개월 이상 지난 단말기에 대해서는 보조금에 대한 상한선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통신사들이 구형 단말기에 기존처럼 적지 않은 보조금을 얹어서 판매하는 건 하나의 흐름처럼 됐습니다. 예를 들면 ‘갤럭시노트3’는 출고가가 88만원이지만 통신사와 요금제에 따라 60만원부터 88만원까지 보조금이 들어갑니다. 거의 공짜폰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구형 단말기의 인기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조금을 많이 받은 단말기를 해지할 때는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현재 ‘위약4’로 불리는 조건에서는 6개월 이내에 해지하면 보조금 전액을 물어내야 합니다. 88만원짜리 갤럭시노트3을 60만원 할인받는 조건으로 구입한 상황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를 만약에 6개월 이내에 해지하면 그 사이 할인 받았던 요금의 일부를 반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60만원의 단말기 보조금을 고스란히 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단말기가 없더라도 번호를 해지하지 않고 요금을 계속해서 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6개월 이후에는 가입 기간에 따라서 조금씩 빠지긴 합니다.

LG유플러스의 정책은 아무때나 해지해도 위약금이 출고가의 절반 이상은 넘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서의 예를 다시 보면 88만원 출고가의 절반, 즉 44만원 이상은 안 받는 겁니다.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60만원을 내는 것보다 낫긴 합니다. 6개월 이후에는 위약금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초기 6개월 이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이 위약금 상한제는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습니다. 단통법을 피해 번호이동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약금 상한제는 표면적으로는 분실, 고장 등의 사유로 애를 먹는 가입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상 6개월 이전에 해지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폰테크족’들입니다. 단통법 시행 이전까지 ‘대란’을 이끌었던 것도 폰테크족이었습니다. 서너개의 번호를 돌려가면서 짧게는 3개월, 길면 6개월씩 가입했다가 번호 이동을 하면서 공기계를 손에 넣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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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로서는 단통법의 손이 닿지 않는 출시 15개월 지난 단말기로 번호이동 시장을 다시 만들어볼 심산인 듯 합니다. 의외로 아직 SK텔레콤과 KT는 이 정책을 따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신 3사가 계산기를 복잡하게 굴려봐야 할 상황입니다. 지난해 말 KT가 ‘순액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약정 기간동안 할인해주었던 요금에 대한 위약금인 ‘약정할인 반환금’을 없애는 제도 역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비슷한 조건을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전체적으로 할인 반환금이나 위약금에 손을 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득실 계산이 명확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위약금 상한제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사실 최신 스마트폰이 90만원대인데, 출시 15개월이 지난 단말기가 80만원대라는 것도 잘 와닿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보조금을 늘리는 것보다 단말기 출고가를 내리는 쪽이 맞습니다. 보조금 내역이 분리해서 공시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공급가와 제조사가 내는 판매 지원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형 단말기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보조금만 올라가는 것은 이제껏 지적되어왔던 출고가 뻥튀기와 마케팅 비용이 시장을 지배하던 단통법 이전 시장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스마트폰용 모바일 프로세서 성능이 정체기에 이르면서 출시된 지 15개월 지난 단말기의 성능도 구형이라고 깔보지 못할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대란’에 준하는 정책 전쟁이 구형 단말기에서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