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리는 e게시물 차단해놓고, 풀려면 소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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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정부제출안(이하 정부제출안)’이 2월10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오픈넷 등 시민단체는 같은날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부제출안이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법안 통과를 우려하고 있다. 오픈넷은 “현행 ‘임시조치 제도’의 문제점을 대단히 악화시키는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개정안은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다. 인터넷 게시물을 차단하는 방법은 더 쉬워진 반면, 임시조치로 가로막힌 게시물을 다시 복원하는 절차는 더 어려워졌다. 불균형이 심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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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조치는 인터넷의 게시물로 권리 침해를 당한 주체가 이를 삭제해달라며 취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다. 임시로 게시물의 노출을 막아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자는 게 원래 법안의 취지다. 지금은 불리한 내용이 포함된 인터넷 게시물에 임시조치가 남발되는 통에 표현의 자유에 위협을 끼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건이 생겼다고 가정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부제출안 “법의 불균형이 문제”

△ 사건

ㄱ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ㄴ 블로거는 심각한 부작용을 앓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ㄱ 성형외과의 시술 내용과 부작용 내용을 공개했다. ㄱ 성형외과는 ㄴ이 올린 블로그 게시물 때문에 고민이다.

ㄱ 성형외과는 ㄴ의 블로그 게시물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현행법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 현행

ㄱ 성형외과는 블로그 운영 주체인 포털사이트에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하거나 반박문 게시를 요청 할 수 있다. 보통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삭제 요청을 하는 것도 까다롭다. ㄴ이 올린 게시물 때문에 ㄱ 성형외과의 권리가 명백히 침해됐음이 인정돼야 한다.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은 포털사이트는 두 가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게시물을 검토 후 삭제하거나, 혹은 임시조치만 내리거나. 임시조치는 게시물이 30일 동안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조치를 말한다. 게시물을 복원하려면, 블로거가 포털 사이트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방법을 따라야 한다.

정부제출안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현행 임시조치보다 더 심하게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 정부제출안 개정안

ㄱ 성형외과는 포털사이트에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 이 때 권리가 침해됐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권리가 침해됐다는 주장만 해도 삭제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는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으면 한 가지 행동만 취할 수 있다. 게시물에 무조건 임시조치를 내려야 한다.

임시조치 된 게시물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마련된 ‘온라인 명예훼손 분쟁 조정 위원회’로 넘어간다. 조정 절차를 통해 삭제, 혹은 임시조치 해제 결정을 받을 수 있다.

임시조치 해제 결정을 받았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삭제 결정이 내려졌다면 ㄴ 블로거는 어떻게 해야 할까. ㄴ은 이를 복원할 수 있을까. 있다.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소송을 제기하면, 게시물은 임시조치에서 벗어난다.

생각해보자.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권리 침해를 당했음을 주장만 하는 것만으로도 게시물을 내릴 수 있다. 반대로 게시물을 지키려는 쪽에서는 최악의 경우 법원에 소까지 제기해야 게시물 삭제를 막을 수 있다.

소를 제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블로그 게시물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믈다. 기업을 상대로 블로거가 소를 제기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침해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정부 제출안에서는 권리 침해 당사자가 주장만 하는 것으로 게시물 노출을 막을 수 있고, 게시물을 복원하는 과정은 소송까지 가도록 바뀌었다”라며 “법의 불균형이 심각해졌으며, 만약 이 정부제출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앞으로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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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법 개정안 정부제출안의 임시조치 흐름도(오픈넷)

표현의 자유 지키고, 법 균형 바로잡고

이날 미방위에 상정된 법안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지난 2014년 12월29일 국회에 제출한 정부 제출안이다. 같은 법에 비슷한 개정안이 하나 더 있다. 2013년 12월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 발의한 개정안이 그것이다.

유승희 의원의 개정안이 이번 정부 제출안과 다른 점은 간단하다. 블로거가 게시물의 임시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면, 즉시 임시조치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ㄱ 성형외과가 게시물을 쉽게 차단할 수 있다면, 이에 반박하는 ㄴ 블로거도 보다 쉽게 게시물을 지킬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법의 균형을 맞추야 한다는 주장에 부합한다.

김가연 변호사는 “블로거가 소를 제기할 때까지 게시물을 계속 차단하는 것은 심한 불균형”이라며 “블로거가 이의를 제기하면, 바로 게시물을 복원한 뒤 분쟁절차를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며 법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오픈넷과 김가연 변호사는 정부 제출안에 담긴 문제점을 의원실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오픈넷 쪽에서는 오는 13일 미방위에서 정부 제출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로 예정돼 있는 미방위 전체 회의까지 통과하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가연 변호사는 “13일 미방위 회의가 있어 긴급히 대응하려고 계획 중”이라며 “법안 소위의 여야 의원들에게 정부 제출안에 담긴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