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가 애플TV에 구독형 서비스 얹은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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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더 벌었다. 애플TV 이야기다. 애플의 봄 이벤트는 TV 이야기로 시작했다. 팀 쿡 애플 CEO가 처음 애플TV에 대해 언급했을 때는 ‘아차’ 싶었다. 새 애플TV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 이야기에 힘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애플TV의 하드웨어는 없었다. 다만 애플은 3세대 애플TV의 값을 69.99달러로 내렸다. 애플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제품 가격을 내리는 경우는 있지만 신제품 없이 값을 내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해 맥북 에어의 값을 한번 내린 적이 있긴 하다. 이 역시 디자인을 바꾼 신제품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면서 값을 내렸던 것이다. 애플TV의 가격 인하는 ‘당분간 새 제품을 낼 계획이 없다’는 우회 메시지에 가깝다.

2세대 애플TV도 지금까지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콘텐츠를 스트리밍하는 역할로 애플TV 성능은 아직도 충분하다. 이럴 때는 신제품을 내는 것만큼 값을 내리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지난해부터 소문이 이어져 온 게임 플랫폼 등에 대한 소문도 적어도 1년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당분간 애플은 TV에서 콘텐츠 사업을 넓히는 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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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가 HBO다. HBO는 이번 이벤트에서 애플TV를 통해 ‘HBO나우’ 서비스를 공개했다. HBO의 월정액제 구독형 서비스다.

HBO는 이미 ‘HBO고’라는 이름으로 앱과 웹에서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케이블TV 가입자가 또 다른 화면을 이용하는 N스크린 방식의 서비스였다. 넷플릭스가 무섭게 집어삼키고 있는 스트리밍 시장과 경쟁이 쉽지 않다. 케이블TV는 요금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HBO나우는 개별 콘텐츠가 아니라 HBO를 통해 유통되는 모든 영상을 한 달 14.99달러만 내면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와 비슷하다.

애플이 HBO의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독점으로 서비스한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애플은 이미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큰 콘텐츠 공급자다. HBO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음악과 영상 콘텐츠가 아이튠즈를 통해서 세계로 유통된다. 그 애플을 위협하는 가장 큰 경쟁자는 무제한 스트리밍을 내세운 기업들이다. 애플은 음악에서는 비츠 오디오를 인수하면서 ‘아이튠즈 라디오’를 시작했던 바 있다. 동영상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인가는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특히 영상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성장은 매우 독보적이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스트리밍 서비스를 넘어 4k 콘텐츠를 서비스하기도 하고,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업도 펼친다. 그리고 그 사업의 성장세가 아주 위협적이다. 애플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실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아이튠즈를 통해 건당 2~3달러씩 내고 보던 드라마들을 넷플릭스에서 10달러 정도에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짚어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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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애플이 아이튠즈의 모든 영상을 구독형 서비스로 단번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넷플릭스의 성장이 껄끄러운 회사가 하나 더 있다. 그게 바로 HBO다. HBO의 케이블TV 채널은 늘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콘텐츠들을 뽑아내 왔다. 하지만 여전히 HBO는 케이블TV를 주 플랫폼으로 삼고 있다. 결국 애플과 HBO의 제휴는 당연하고, 지금 시점에서 적절한 수순이다.

당장 애플이 아이튠즈와 애플TV를 통해 넷플릭스처럼 거대한 스트리밍 채널을 만들기는 어렵다. 콘텐츠 공급자들은 판매 형태의 콘텐츠 유통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HBO나우를 통한 애플의 정책은 모든 콘텐츠를 단번에 구독하는 모델보다, 현재 케이블TV의 형태처럼 보고 싶은 채널 단위로 패키지 구독 모델을 마련하려는 쪽에 가깝다. 지금 그림으로는 넷플릭스도 애플TV 속 하나의 채널이다. 이용자는 아이튠즈를 이용해 콘텐츠를 구입하거나, 넷플릭스와 HBO를 통해 구독하고 빌려보는 것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의 대세는 음악이 그랬듯 구독형 스트리밍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스트리밍 전쟁에 누가 또 참여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콘텐츠 유통업체로서의 애플도, 공급자 입장의 HBO도 다급하다. 아직 시장의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지금 영상 시장에 ‘왕좌의 게임’이 열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