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인공지능 사회? 게임을 들여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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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로봇과 인간의 경쟁이 매일매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로봇은 스스로를 감추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인간은 인간을 가장한 로봇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결과는 짐작대로다. 대부분의 로봇이 인간을 누르고 큰돈을 벌어들인다.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내 그 공간을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이 경쟁의 승자는 단 한 명이다. 로봇도 인간도 아닌 로봇을 소유한 인간이다.

영화 같은 현실이 이미 현실 속에 존재한다. 손에 잡히는 물리적 현실은 아니다. 코드와 마우스가 대결하는 가상현실 즉 게임에서다.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은 인간의 욕망이 대리전을 펼치는 영역이다. 한 연구자는 인터넷을 그 사회의 ‘생얼’에 비유했다. 마찬가지로 게임은 가식을 걷어낸 인간들의 생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인간 생얼이 충돌하고 부딪히는 가상현실이지만, 동시에 로봇의 침투가 일상화하고 있는 위기의 경쟁터다. 초보적인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은 시스템의 빈틈을 뚫고 들어와 인간을 무력화한다. 밟고 넘어서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제로섬 경쟁의 현실이 바로 게임이다.

이은석 넥슨 신규개발본부 프로젝트 K실 실장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디렉터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디렉터는 게임으로 인공지능 사회의 일면을 예측해볼 수 있다고 믿는 이다. 그래서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온갖 군상, 현상들을 현실에 대입시키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세상이 도래했을 때 인류가 어떤 모습일지 추론한다. 어차피 현실이나 게임이나 자본주의적 성장과 경쟁이 교차하는 공간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지난 5월21일 경기도 판교 넥슨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이은석 디렉터는 게임 개발자다. 가상사회를 만들고 운영한다. 게임이라는 사회에 적용될 통치의 원리를 설계하고 각종 정책을 입안한다. 로렌스 레식 교수의 말을 빌리면 “코드가 곧 법”인 세상이다. 이렇게 그가 참여해 개발한 게임이 ‘마비노기 영웅전’이다. 그는 ‘마비노기 영웅전’의 ‘작업장’ 실태를 목격하며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가상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매칭해보게 됐다”고 했다.

“마비노기 ‘작업장’ 실태 보며 현실-게임 매칭”

게임에서 작업장은 돈 버는데 ‘환장’한 인공지능들의 진지다. 이은석 디렉터에 따르면 작업장은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탈취하기 위해 구축된 오프라인 조직이다. 최근 들어 작업장에선 인간이 하던 작업을 봇, 즉 기초적인 수준의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기계를 돌려 게임을 하고 재산을 잔뜩 쓸어담는다.(이 디렉터는 이를 ‘골드파밍’이라고 불렀다.) 사람만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한 규칙을 깨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직접 경쟁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시온을 침탈하려는 센티넬과 같은 존재다. 이은석 디렉터는 센티넬을 닮은 작업장 로봇과의 전투를 방어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진땀을 뺐던 기억도 있다.

작업장 로봇은 다른 사용자들의 계정을 탈취해 게임 아이템을 빼앗아 간다. 또한 탈취한 계정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플레이를 펼치며 게임머니를 쓸어간다. 게임 세계를 지배했던 공정한 룰이 깨지고 인간 사용자들은 속속 게임을 이탈한다. 현실보다 더 공정한 규칙을 열망했던 사용자들은 실망한 채 이 가상세계를 벗어난다. 따라서 이들 작업장 로봇을 방어하지 못하면 게임 자체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는 작업장 로봇과의 전투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로봇과 인간이 경쟁하면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로봇의 가입을 차단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게임에 로봇의 가입을 허용하면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한 게임이 된다. 예를 들어, 좋은 집안에는 고용인들이 있지 않나. 돈을 내고 이들을 고용한다. 이와 비슷한 이치다. 로봇은 잠도 안 자고 하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사람 10명에게 ‘나를 위해 게임을 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로봇 10마리를 제작해 나를 위해 게임을 돌려보라고 지시한다. 당연히 승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는 로봇과 인간이 경쟁하게 되는 세상에서 과실은 로봇을 소유한 이들에게 돌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로봇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이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은 빈곤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RPG나 자본주의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게임 속 로봇 대 인간의 경쟁, 과실은 인간이

이은석 넥슨 디렉터가 NDC 2015에서 발표하고 있는 영상.(InvenMovieA 유튜브 영상 캡처)

작업장 로봇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내 화폐경제를 어지럽히는 주범이 된다고 했다. 그는 게임이라는 가상사회에서도 현실의 경제계처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그는 소개했다. 그 핵심에 바로 작업장 로봇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은석 디렉터는 “작업장 로봇이 경제행위를 하면서 시중에 돈이 더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면서 “나중에 더 찍은 게임머니의 총량을 다 계산해봤더니 로봇이 100억원을, 인간은 –5억원을 가져가더라”고 설명했다.

그는 로봇이 경제행위의 주도권을 넘겨받는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점증하는 인플레이션, 그에 따른 소득 불평등, 그것이 야기할 사회적 혼란, 비단 게임만의 현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석 디렉터는 “로봇이 할 수 있는 작업이 늘어나다보면 그 심각한 상황을 향해 갈 수도 있다”면서도 “아마 그렇게 되기 전에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갈등 양상으로 번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당장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게임과 현실이 다른 측면이 있다면 도피처의 유무다. 게임 사용자들은 인공지능 로봇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접속을 끊으면 그만이다. 다시 말해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오기면 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이 이런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면, 인간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이은석 디렉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게임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그는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이은석 디렉터는 로봇과의 불공정한 경쟁으로 이탈하려는 사용자를 붙잡기 위해 ‘역소득세’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현실로 치자면 일종의 복지 정책을 제시한 셈이다. 게임 내에서의 역소득세는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하게 되면 벌어들이는 수익을 감소시키는 알고리즘이다. 24시간 불철주야 돈벌이에 나서는 작업장 로봇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부가적으로 과몰입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고 했다.

“로봇으로 커진 부의 파이, 인간에겐 안 올 듯”

마비노기 영웅전(이미지 출처 : 넥슨 마비노기 홈페이지)

마비노기 영웅전(이미지 출처 : 넥슨 마비노기 홈페이지)

그가 바라보는 로봇 시대의 미래는 공상영화 같진 않았다. 게임 속의 현실이 그대로 실제 현실로 이전될 수 있다는 진단에 가까웠다. 이은석 디렉터는 “로봇의 생산력으로 부의 파이는 커지겠지만, 그것이 인간에 돌아갈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게임을 통해 체득한 경험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어 “사물들의 자가증식에 사람은 소외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면서 “로봇이 본격적으로 능력을 갖게 되면서 자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생산력 증대가 너무 커져버렸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2014, 139쪽)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미래의 진정한 위협은 프랑켄슈타인 유의 로봇들의 반란이 아니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 자본가 계급을 위한 노동의 기술적 대체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은석 디렉터가 경고한 메시지와 일치한다. 작업장 로봇과 공성전을 벌이며 그가 체득해낸 교훈이기도 하다.

게임을 통해 먼저 만나본 로봇과 인간의 경쟁 사회, 그곳에선 이미 불평등이 심각한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다. 적어도 게임 안에선 이를 예방할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고 적용되고 있다. 게임의 존속을 위해 더 치밀하게 정책을 디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을 닮은 실제 현실은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이 될 것이라 예단할 순 없다고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고 자료

  • 랜들 콜린스 외.(2014).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