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는 전자금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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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핀테크 수준은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발목 잡혀 있어요. 또 기존 체제가 너무 강고하게 버티고 있다는 점도 한계죠. 중국은 IT기업이 금융업이 아니라 인터넷기업 마인드로 금융업에 진출하다보니 틀에 박히지 않고 무서울 정도로 뛰어오는 상황입니다. 세상이 디지털 혁명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전자금융과 핀테크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부터 국내에 부는 핀테크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핀테크가 대두된 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다른 분야를 휩쓸고 있는 디지털 혁명이라는 바람이 뒤늦게 금융업계에 불어온 것이 최근 핀테크 열풍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자금융이 쌓아 온 금융아성, 핀테크가 뒤흔든다’라는 보고서를 내고 “핀테크로 인한 혁신이 건전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규제와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나온 6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김건우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핀테크는 금융업계에 닥친 디지털 혁명

“핀테크 세미나에서 20년째 핀테크 하고 계시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핀테크라는 용어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과도하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핀테크를 전자금융과 구분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자금융이란 인터넷이 나타나던 시기에 금융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옮겨온 것을 가리킨다. 이는 IT를 기존 금융서비스의 효율을 높이는 보조적인 역할에 보는 시각이다. 반면 핀테크는 IT가 기존 금융서비스가 지닌 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일을 일컫는다.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영국 무역투자청(UKTI)이 컨설팅 회사 언스트앤영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해 “전자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가치사슬상에 포함돼 서비스의 효율을 높이는 조력자(facilitator)로서 포지셔닝하는 반면 후자는 기존 금융서비스 전달체계를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자(disruptor)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핀테크란 “기술을 핵심 요소로 하는 금융서비스 혁신”을 뜻한다.

이 때문에 기존 금융업에서는 없던 혁신적인 금융서비스가 등장한다. 은행이 혼자 제공하던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기술 기반 핀테크 스타트업이 하나씩 쪼개 간다. 페이팔은 모바일 송금과 결제 기능을 가져갔다. 크라우드펀딩 스타트업 킥스타터는 금융회사도 못하는 대출 업무를 거뜬히 해낸다. 대출 심사나 자산 운용 등 위험관리와 정보관리 분야도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더 효율적으로 해내는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추세다.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이런 상황을 “금융이 우버화된다”라고 표현하곤 “틈새 시장에서 시작한 (핀테크 스타트업에) 은행의 금융서비스들이 조금씩 잠식당해 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행서비스지 은행이 아니다”라는 20년 전 빌게이츠의 예언과 맥을 같이하는 해석이다.

'전자금융이 쌓아 온 금융아성, 핀테크가 뒤흔든다' 보고서 15쪽 재인용

‘전자금융이 쌓아 온 금융아성, 핀테크가 뒤흔든다’ 보고서 15쪽 재인용

금융, 데이터와 소비자 중심으로 거듭나야

IT기업이 금융업계를 전방위에서 공격하는 마당에 기존 금융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건우 선임연구원의 조언은 원론적이다.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금융산업도 국경이나 규제 장벽에 안주하지 않고 전방위로 경쟁하는 디지털 경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IT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불러온 혁신이 이제 금융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죠. 스마트폰이 들어올 때 2년 동안 위피로 아이폰을 막으며 버텼지만 결국 시장은 넘어갔죠. 글로벌 시장의 거시적인 변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시장이 소비자 기호를 반영하고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죠. 혁신을 장려하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정부, 핀테크 혁신에 손놓고 있으면 금융위기 닥칠 수도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그림자 규제’라고 불리는 당국의 자의적 재량과 회색지대로 불리는 규제 공백을 줄여 규제 투명성을 재고하되,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타날 수 있도록 금융규제를 사후 규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마냥 규제를 풀어헤치자는 얘기는 아니다. 금융서비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금융위기 때 큰 위기가 온 이유는 그림자 금융 때문이었어요. 중앙은행과 금융결제원 같은 주요 금융 인프라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파급 인프라입니다. 통화정책은 금융위기를 방지하고 거시 정책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지급결제와 자금중개, 위험 관리, 정보 관리 등 금융업체의 기능을 핀테크 업체가 쪼개 가면 중앙은행이 감독 기능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과도하게 자금이 쌓이고, 이런 자금이 임계치를 넘어 몇백년에 한 번 날 금융위기가 닥쳤죠. 그래서 골드만삭스는 핀테크를 제2의 그림자 금융이라고 불렀죠.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핀테크 비즈니스 모델이 다수가 되면 이를 어떻게 볼지 고려해야 할 겁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핀테크는 기존 전자금융과 다르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규제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말했다.

“기존에 은행을 강하게 감독한 이유는 과도한 유동성(레버리지) 동원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급준비제도 같은 견제 수단을 만들어뒀죠. 지금 P2P 대출이나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자와 대출 고객이 일대일로 짝지어지는 환경입니다. 플랫폼 업체가 중간에 레비리지를 만들지 않죠. 신용을 창출하지 않는데 기존 은행과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요. […] 보고서에서 아날로그 규제와 디지털 규제를 얘기했습니다. 디지털 세상은 물리적 국경이 의미 없는 상황입니다. 규제 목적이 있다면 회사가 외국에 있든 국내에 있든 감독할 체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국내 규제 때문에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에 비해 역차별 당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글로벌 차원에서 공조해서 탈세나 자금세탁 방지처럼 거시적인 규제 공조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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