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 예술·역사 만나 문화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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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3D Printing)’은 디지털 디자인 데이터를 이용해 3차원 물체를 제조하는 프로세스로, 제조 절차와 생산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시제품의 제작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 및 손쉬운 맞춤형 제작을 가능하게 하며, 복잡한 형상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 등에서 3D 프린팅은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핵심 제조 기술로 여겨졌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2006년 저서 ‘부의 미래’에서 3D 프린팅이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그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3D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디자인해 복잡한 공정을 거치지 않고 제작할 수 있다.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개인 및 소규모 커뮤니티 중심의 창작활동 수단으로 적극 활용된다. 디지털 제조의 하드웨어에서 디지털 창작의 도구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초기 3D 프린팅이 제조 차원에서 소비자(consumer)와 제조업자(manufacturer)의 결합을 의미하는 ‘콘슈팩처러(consufacturer)’의 탄생을 알렸다면, 최근 3D 프린팅은 창작 차원에서 창조적인(creative) 소비자(consumer)인 ‘크리슈머(cresumer)’의 등장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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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대학교 교수이자 아티스트인 존 에드마크(John Edmark)는 3D 프린터로 일정 패턴을 가진 물체들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명 아래에서 회전시켜 2D가 아닌 3D 버전의 ‘조이트로프(zoetrope)’를 만들어냈다. 조이트로프는 망막의 잔상효과를 이용한 장난감으로, 일정 형태의 정지된 그림을 회전시켜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그는 마치 꽃이 피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이 조이트로프들이 움직이는 영상에 이란 이름을 붙였다. 셔터속도를 1/4,000초로 맞추고 찍은 영상에서 존 에드마크가 만든 조이트로프들은 돌리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적 효과를 보여준다.

Blooms  Strobe-Animated Sculptures on Vimeo

존 에드마크의 3D 프린팅 작업 ‘블룸'(출처 : Pier 9 비메오 채널)

예술가와 3D 프린팅 기술이 만나면?

국내에서도 3D 프린팅 창작이 조금씩 본격화되는 추세다. 서울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은 2014년 5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전시회를 마련해 3D 프린터가 예술가의 작품 제작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중앙대학교는 2014년 12월 20일 3D 프린팅 콘텐츠 업체 ‘포디웰컴’과 ‘3D 프린터 창업과 예술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창업, 교육, 예술 등 다양한 3D 프린팅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5인과 관람객이 행사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노하우를 나눴다.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은 건축설계학과 신태섭, 이경석, 김보영(이상 4학년), 이빈(2학년) 학생이 경희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서울 개방형 디지털 제작소인 ‘SK 팹랩서울’의 지원을 받아 3D프린터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클라우드밤 프로젝트(Cloudbomb Project)’를 진행했다고 2015년 1월에 밝힌 바 있다.

‘클라우드밤 프로젝트’는 ‘3D프린터와 대중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을 주제로 건축, 예술, 미디어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사회적 기업이 모여 201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세달 간 서울 광진구 능동로(건국대-뚝섬유원지)에서 게릴라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로에 설치된 건축 파빌리온에서 DJ의 음악에 맞춰 대중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들을 3D 프린터를 통해 실제 제작하여 판매, 전시함으로써 대중들이 단순히 일방적인 소비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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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밤 프로젝트의 3D 프린팅 작업.(사진 출처 : 클라우드밤 페이스북 페이지)

3D 프린팅 창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디지털 복원’이다. 디지털 복원은 유형의 문화재와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문화재를 컴퓨터 그래픽, 가상현실 등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본 모습대로 복원해내는 작업을 의미하는데, 최근 3D 프린팅을 이용한 디지털 복원 작업이 각광받고 있다. 2D로 표현되는 일반 카메라에 비해 입체적인 측정을 통한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의 작가 타니아 라르손(Tania Larsson)은 2015년 5월, 3D 프린팅을 이용해 18세기 미국 원주민의 도구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현재 ‘산타페 아메리칸 인디언 예술 연구소’의 학생으로,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복제했다. 레이저 스캐닝과 사진측량 기술로 도구들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3D 모델링 소프트웨어와 3D 프린터를 통해 도구들을 재창조했다. 그녀의 작업은 캐나다 공영방송 CBC를 통해 몇 차례 보도돼 화제를 낳았다.

타니아 라르손의 3D 프린팅 작업: 18세기 미국 원주민의 도구 재구성

타니아 라르손의 3D 프린팅 작업: 18세기 미국 원주민의 도구 재구성.(사진 출처 : 바이스미디어 머더보드)

IS 훼손한 모술 박물관 소장품 3D프린팅으로 복구

3D 프린팅을 통해 디지털 복원 작업을 하는 비영리 기구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유럽 ‘디지털 문화유산 양성 훈련 네트워크(이하 ‘ITN-DCH’)’의 ‘프로젝트 모술(Project Mosul)’을 들 수 있다. ITN-DCH은 디지털 문화유산 보존 분야에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마리 퀴리 펠로우십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EU ‘FP7(Framework Programme 7, EU 차원에서 7번째로 추진된 중장기 대형 연구사업으로, EU 과학기술 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의 펀딩으로 운영된다. ITN-DCH의 ‘프로젝트 모술’은 2015년 2월 수니파 무장조직 IS가 훼손한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Mosul) 박물관의 소장품을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복구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프로젝트 모술’의 핵심은 ITN-DCH에서 보유한 전문지식,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해 파괴된 유물을 웹 플랫폼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수집한 이미지를 토대로 최신 3D 사진측량 기술을 사용하여 유물의 실제 모습을 가상으로 구현한다. 충분한 사진과 디지털 스캔본만 있으면 유물의 디지털 모사품을 만들 수 있는데, 사진이 많을수록 더 정확한 3D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 ‘프로젝트 모술’ 팀은 수집한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먼저 의 부분 복원에 성공했다.

The Lion of Mosul by neshmi - download 3D model - Sketchfab

프로젝트 모술의 3D 프린팅 작업: 부분 복원.(이미지 출처 : 프로젝트 ‘모술’ 웹사이트 )

사이야크, 약 500개의 문화재 3D 스캐닝 계획 

그 밖에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레스터대학교는 ‘위기에 처한 고고학(Endangered Archaeology)’이라는 이름의 공동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다. 이 팀은 비영리 자선단체의 지원을 받아 2015년부터 2년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3D로 스캐닝할 예정이다. 미국의 비영리 기구인 ‘사이아크(CyArk)’ 역시 2015년부터 5년간 약 500개의 문화재 및 유적지에 대해 3D 스캐닝을 할 계획이다. ‘사이아크’라는 이름은 사이버(cyber)와 노아의 방주(ark)를 합성한 것으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로 보존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디지털 창작 도구로서 3D 프린팅 활용 사례 증가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창작자와 이용자의 경계를 허물고, 이용자를 더욱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존재가 되게 만든다. 둘째, 조형물, 건축물, 문화유산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3D 프린팅 창작은 관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다양한 적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아직 3D 프린터용 모델링 데이터나 소프트웨어에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3D 프린팅 플랫폼을 둘러싼 경쟁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개인이 만든 모델링 데이터를 3D 프린팅 상품으로 만들어주거나 상품 판매를 중개하는 마켓 플레이스 서비스 모델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셋째, 이용자층 확대를 위해 보다 접근성이 높고 사용이 편리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3D 프린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루기 위해 준 전문가급의 경험과 지식이 요구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현재 3D 프린팅 분야에 참여하는 이용자는 준 전문가 집단이나 마니아적 성향을 가진 얼리 어답터 위주로 형성돼 있다. 하지만 향후 3D 프린팅 기술의 보편화 현상이 이뤄짐에 따라 매스 마켓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DI가 ICT인문사회 혁신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는 ‘ICT인문사회융합동향’ 2015년 2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블로터는 KISDI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