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본소득을 다시 불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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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오는 6월 성인 1인당 2500스위스프랑(우리돈 310만원)을 매월 일괄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 도입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 최종 결과가 어찌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전세계 시민들에게 각인되는 효과만큼은 분명히 얻어냈다.

녹색당의 기본소득 공약안.(이미지 출처 : 녹색당 홈페이지)

녹색당의 기본소득 공약안.(이미지 출처 : 녹색당 홈페이지)

국내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공론화 단계라고 말하긴 이르지만 논의의 물꼬가 터지고는 있다. 시작은 녹색당이 했다. 녹색당은 2017년 기본소득 40만원 지급을 당론으로 정하고 올해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초연금과 부동산 보유세 등을 통합하면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기본소득 제공이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자동화·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산업에서 더 이상 일자리는 창출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도 포함돼 있다.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씨도 최근 가세했다. 이재웅 씨는 지난 1월 자신의 트위터에 녹색당의 공약을 인용한 뒤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동화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짧은 트윗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잠잠하던 국내 기본소득 논쟁을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녹색당이 기본소득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긴 했지만 정작 파장은 이씨의 트윗이 만들어내고 있다. 데엠(DM) 창업자 괴츠 베르너2006년께 독일에서 기본소득을 공론화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기본소득이 대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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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대신하는 몰리 로봇.

기본소득은 쉽게 말하면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제도를 뜻한다.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격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단은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보수-진보 경제학자가 한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정치적 개념 가운데 하나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가 선언적 수준에서 수용한다는 태도를 나타냈고 1962년에는 밀턴 프리드만이 ‘음의 소득세’라는 이름으로 최소 보증소득 도입을 주장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정초한 보수적 경제학계 대표 학자들이다.

기본소득이 이론적로든 현실적으로든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된 건 1986년 벨기에 출신 정치경제학자 판 더 벤과 반 빠레이스의 논문 ‘코뮌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길’ 덕이다. 이후 독일 생필품 체인 데엠 창업자 괴츠 베르너가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곽노완, 2007). 베르너는 독일 100대 부호에 들 정도의 자산가면서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전계적으로 촉발시킨 당사자다. 현재 거론되는 기본소득 방식은 대체로 베르너의 주장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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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의 기본소득 시스템은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 폐지를 전제로 한다. 모든 세금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로 단일화하자는 안이다. 물론 베르너의 안은 독일의 조세제도 하에서 설계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의 연금이나 실업연금, 사회보조금, 주택보조금 등을 모두 통합해 기본소득으로 대체한 뒤 연령별로 분배하면 인당 800유로 지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뼈대다. 독일 시스템 하에서는 추가적인 재원 마련 없이 곧바로 시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곽노완(2007) 교수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당시 독일 사회복지시스템을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면 인당 105만원이 지급 가능하며, 장기적으로는 인당 1500유로(현재 원화 205만원)까지 증가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의 기본소득세 안이 현실에 적용되면 부가가치세 50%를 적용하더라도 상품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상품 가격의 일부 하락 효과로 수출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총생산도 감소하지 않는다. 노동시간도 줄어든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야근을 감내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단점은 있다. 이 점만 수용할 수 있다면 기본소득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실리콘 밸리는 기본소득에 찬성할까

샘 아틀만  Y  컴비네이터 CEO.(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Phil Glockner, CC BY 2.0)

샘 아틀만 Y 컴비네이터 CEO.(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Phil Glockner, CC BY 2.0)

실리콘밸리가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는 건 조금은 다른 맥락이다. 생태적 공동체를 고민하는 정치 사회 단체와 달리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 기술이 몰고 올 ‘실업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더 짙다. 인공지능 기술의 진화로 전통적인 일자리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될 경우 기술적 실업이 초래할 공동체의 파괴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에 투자한 세계적인 벤처캐피탈 Y컴비네이터는 기본소득 도입에 적극적이다. 샘 알트만 Y컴비네이터 CEO는 지난 1월28일 공식 블로그에 ‘기본소득’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를 불러모았다. Y컴비네이터는 향후 5년간 미국 안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의로 선정한 시민과 저소득층 시민이 어떻게 다른 반응과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 연구도 실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기술이 점차적으로 전통적인 일자리를 없애고 더 많은 새로운 부를 창출함에 따라 어느 시점에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기본소득을 전국 차원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는 페이스북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도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014년 <뉴욕매거진>과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그들의 용처를 스스로 결정하는 주장은 자유주의 철학과도 맞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에도 트위터를 통해 기본소득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피력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다른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지속적인 개발과 인간 사회의 공존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해석이다. <복스>의 딜런 매튜 기자는 지난 1월 기사에서 기본소득을 “로봇 시대를 위한 보험 정책”이라고 표현했다. 기술적 실업에 따른 21세기 러다이트의 출현을 막기 위한 테크 거인들의 선제적 조치라는 설명이다.

나단 슈나이더 교수는 2015년 1월 <바이스>에 기고한 글에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들이 설계한 기본소득은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문제는 총생산 혹은 노동 참여 의욕

자동화의 영향으로 고용은 줄어들지만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자동화의 영향으로 고용은 줄어들지만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진화가 가속도를 내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 미래 보고서는 향후 5년 간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경고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보다 오히려 기술 등에 의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 이전의 옥스퍼드대학 보고서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확률이 높은 직업군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자리 감소는 자연스럽게 실업 증가로 이어지고 이후 총수요의 하락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경제 법칙이다. 총수요의 하락은 상품의 과잉공급 국면을 초래해 총체적인 경제 공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1900년대 초 대공황을 경험해본 인류는 동일한 현상이 재현되는 것을 달가워할 이유가 없다.

실리콘밸리 기업 입장에서도 시민의 저항 없는 기술 개발, 개발된 제품의 지속적인 소비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수요자인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체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자칫 소득불평등 그리고 실업자 증대가 인공지능 로봇의 파괴로 이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직접세를 폐지하는 베르너의 안을 도입하게 되면 법인세 회피를 위해 그동안 동원했던 각종 기법들에 지출됐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기본소득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효율적 정부를 위한 규모 축소를 염두에 두고도 있다. 기본소득을 위해 기존 연금제도를 통합하게 되면 이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투입됐던 공무원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곽노완 교수는 “매일 일정한 날 모든 사회성원의 통장으로 자동입금하는 형태로 지불되기 때문”에 관료제적 행정비용이 거의 소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연히 조세체계도 훨씬 간편해지면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일정 부분 이격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지속적 이윤과 기술 개발을 좇는 실리콘밸리 기업가들과 일자리 불안에 떨게 될 비숙련 노동자들의 타협 지점이다. 노동자들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다, 러다이트와 같은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장 일자리를 잃더라도 심리적 충격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일자리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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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일부 반대론자들 사이에서 형성되고는 있다. 하지만 최근 사례들을 보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것이 입증되는 중이다. 강남훈(2013, 16쪽) 한신대 교수는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노동공급 감소는 확실히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본소득에 만족해 일자리를 찾지 않는 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바람직하다고까지 했다. 어차피 앞으로 일자리는 부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하려는 의욕이 크게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빠레이스는 “무조건적인 보편급여는 모두에게 추가적인 소득이므로 노동 유인을 크게 감소시키지 않는다”라고 주장했고 약 20년에는 흄과 심슨(Hum, D., & Simpson, W., 1993) 교수가 기본소득을 보장해도 노동 유인 감소 효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인공지능 사회, 기술과 인간 공존의 해법

실리콘 밸리의 시작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쪽과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쪽의 절묘한 절충점이다. 맑스주의자들은 기본소득 1을 자본주의 이후 단계로의 진입(코뮨주의)을 위해 제안하고 있고, 실리콘밸리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다. 그만큼 갈등의 여지가 적고 현실성이 높다는 뜻이다.

어차피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보편화하는 시대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신산업 육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제 ’모두에게 일자리를’이라는 구호는 실현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현대자본주의가 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까지 도달하고자 했던 ’완전고용’도 상징적 단어로 남을 수밖에 없다.

머신러닝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 확실시된다.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화 속도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인 반면, 인간 지능의 생물학적 진화 속도는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2040년대면 비생명 지능이 생명 지능을 10억배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불과 30년 안에 인류는 극소수만이 일하는 세상에 대한 대비책을 내놔야 할 처지다. 기본소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어도 극단적인 갈등과 붕괴를 막아낼 나름 현명한 대안으로 검토될 만하다.

참고 자료

  • 강남훈. (2013). 기본소득, 노동시간, 일자리 재구성. ’소득‘ 학술대회 자료집.
  • 곽노완. (2007). 기본소득과 사회연대소득의 경제철학. 시대와철학 제18권 2호. p.185~215
  • 권정임. (2013). 판 빠레이스의 초기기본소득론과 생태사. 시대와 철학 제24권 1호(통권 62호)
  • Hum, D., & Simpson, W. (1993). Economic response to a guaranteed annual income: Experience from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Labor Economics, S263-S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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