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피에서 알파고까지…기술 개발, 정부 몫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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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국형 알파고’ 정책이 발표됐을 때 한숨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방관론에서부터 “정도껏 하라”는 비아냥까지 분노한 목소리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한번에 터져나왔다. IT 종사자들은 ‘한국형’이라는 접두어만 들어도 소스라칠 정도로 정부 주도 기술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높다.

관료가 주도하는 기술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신은 정부의 불개입론과 연결되면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민간 사업자에게 그냥 맡겨두기만 하면 된다는 시장근본주의로 귀결되곤 한다. 정부 주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국가라는 역사(안정배, 2014. p.33), 인터넷 인프라 투자 덕에 1세대 창업붐이 일어난 전례 등은 까마득히 잊곤 한다. 그러면서 조용히 정부의 자금이나 소프트웨어 외주를 기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동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기술 정책과 관련해 정부와 시장의 역할 배합은 난제 중의 난제다. 어떤 선택지에 ’V’를 표시할 것인가에 따라 진영이 갈리면서 소모적인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위피, 액티브X, 아이핀, 샵메일 등 정부 주도 기술이 실패로 잇달아 돌아서면서 정부 기술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고 있지만, 전적으로 정부를 배제하는 방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 개발 정부 불관여론은 현실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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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상의 해법은 정부와 시장의 적절한 균형이다. 이 원론적인 명제는 각론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공허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면서 누구도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지 관리 정책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 정부와 시장의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신제도학파 정치학자다(안도경. 2011). 그의 저서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는 공유지(commons) 이론을 언급할 때마다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과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수작이다. 특히 공유경제와 디지털 공유지에 대한 담론이 넘실되는 요즘, 오스트롬의 이 저서는 디지털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교범처럼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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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세계 공유자원을 관리 모델을 경험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시장의 절묘한 역할 배합 공식을 도출해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촉진적 정치 체제‘로서 정부의 역할론이다. 그가 주목했던 역할 모델은 공유자원인 지하수 관리를 현명하게 풀어나간 캘리포니아 주정부였다.

오스트롬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트로폴리탄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지하수 분지의 주요 지역들은 1900년대 초·중반부터 지하수의 용출량을 놓고 개발 경쟁에 빠진 상태였다. 어느 한쪽 지대가 더 많이 지하수를 퍼올릴 경우 다른 지역은 역류한 바닷물을 마셔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심지어 지하수 상부의 토지를 소유한 쪽이 지하수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는 다소 모호한 관습법이 적용되면서 갈등과 소송도 끊이지 않았다.

이 문제는 해당 지역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기관이 협력적 합의를 이르게 되면서 원만하게 해결된다. 이후 이해관계가 물려있는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소송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자율적으로 관리되는 혁신적인 제도를 탄생시키게 된다.

오스트롬이 주목한 캘리포니아 주정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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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전 인디애나대 교수.(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Holger Motzkau 2010, CC BY-SA 3.0)

오스트롬은 공유 자원의 협력적 해결 방안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역할을 면밀하게 살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하수에 대한 최선의 활용 방식을 권장했다. 지역별 분쟁 해소 차원에서 소송 비용의 3분의 1도 보조했다. 각 지역별 적정 지하수 양수량을 계측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기술적 비용이 요구되는데 이 비용도 캘리포니아주가 부담했다.

이해 주체들의 자율적인 협상과 합의, 자치적인 관리 규칙의 탄생에는 캘리포니아주의 합의 촉진적(facilitative) 역할이 주효했다는 것이 오스트롬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촉진적 정치체제의 존재 여부를 혁신적 제도 탄생의 주요 변수로 바라봤다.

정부-시장의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한 오스트롬의 대안은 관료 주도 기술 정책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특히 정부의 기술 정책의 관여 정도와 범위에 대해 유익한 제안을 가능케 해준다. 예를 들어 민간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에 대한 탐색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고 특허에 따른 거래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영역에서 정부의 개입 공간이 열린다. 오스트롬은 캘리포니아 주정부처럼 거래 비용의 감소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협력적 산출의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Ostrom, p. 378).

거래 비용 감소에 개입하면 새 기술 탄생에 긍정적 기여 

지금의 한국 정부는 신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유망 기술의 선정, 설계, 생산, 유통, 보급 모든 단계에 개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형 알파고 사업이 단적인 사례다. 정부는 민간연구소라는 주체의 설정, 투자 유도 및 직접 투자라는 개발 방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 산업자원부와 미래부가 나뉘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촌극까지 재현될 조짐이다.

정부가 주도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비판을 의식해 주체를 ’민간연구소‘라고 명시하긴 했지만 정부와 민간연구소의 실질적 관계는 오스트롬의 다중심적(poly-centric) 모델이 아닌 국가 집중적 모델이 될 공산이 높다. 일부 언론도 “정부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기업과 연구자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스트롬 모델을 국내 인공지능 기술 개발 정책에 적용하게 되면 우리 정부의 역할은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 영역 외곽에서 정보나 거래 비용을 덜어주고 민간의 기술 개발 행위자들은 자율적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하면서 협력하는 청사진이 그려지게 된다. 관료 주도 기술 개발 정책의 실패 위험도 분산되는 형태가 가능해진다.

오스트롬의 촉진적 정치체제 모델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거나 배제하자는 시장근본주의적 접근과는 틀을 달리한다. 그렇다고 한국의 경우처럼 정부 주도 모델과도 거리가 멀다. 그가 주장하는 형태는 정부와 자율적 기구들 간의 다중심적 파트너십이고 자치 관리 모델이다(Ostrom, p.246). 정부와 자율적 기구 간의 위계적 질서가 강요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개별 주체들의 자율적 의사결정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에 대해 오스트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는 현지 사용자들의 효율적인 제도 설계 능력 제고를 돕는 여러 형태의 편의 장치를 마련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인프라로서 오픈소스 그리고 정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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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그 속성상 지식 공유지에 가깝다. 그 지식이 코드로 응축된 소프트웨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소프트웨어는 더 많은 개발자들이 개선에 참여할 때 가치가 상승한다. 리눅스,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익히 알려진 오픈소스의 성장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지식을 나누고 공유되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기술력의 증진을 유발하는 것이다.

오스트롬의 관점을 소프트웨어 기술 영역에 대입해보자. 한 사회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라는 지식 공유지의 관리는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게 된다. 지적재산권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독점과 사회적 비용은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지나치게 정부 기획에 의존할 경우 부정확한 정보와 비전문성에 따른 실패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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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가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지식을 공여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가 직접 오픈소스 개발에 기여하게 될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 영역에서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비용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특허 등 소유자산에 따른 거래비용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오픈소스 공급에 기여할 수만 있다면 공동체의 산출물로서 기술은 더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게 된다.

오픈소스는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Technology Economic Paradigm)에서 ’사회적 인프라‘라는 위상도 갖고 있다. 구 산업시대 도로나 철로 같은 물리적 기반 시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경제 시스템에선 비물질적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그 기반이 되는 코드를 오픈소스로 정부가 제공할 수 있다면, 기술은 기대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 산업의 육성을 위해 정부가 고비용이 요구되는 주요 기술을 오픈소스화를 전제로 개발한다고 가정해보자. 1차적으로는 비용의 절감으로 진입의 문턱이 낮아질 뿐 아니라 2차적으로는 인공지능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생성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여러 커미터의 참여로 정부는 해당 기술의 생산 및 유지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오스트롬이 강조했던 거래 비용의 감소 측면에서 오픈소스 커뮤니티 참여는 정부의 의미있는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오픈소스공개 사례

미국 정부의 오픈소스 공개 사례 타임라인.(이미지 출처 : )

미국 정부의 오픈소스 공개 사례 타임라인.(이미지 출처 : http://gov-oss.org/)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국가가 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다. 오바마 정부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소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스스로가 오픈소스 커뮤니티화하는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12월 공표된 ‘제2차 정부 개방 실행 계획’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학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컬리지 스코어보드‘, 부동산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파인드 하우징 카운슬러‘라는 웹사이트를 모두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찬사를 받을 바 있는 ’애널리틱스 USA’는 웹사이트 코드뿐 아니라 데이터까지 공개한 사례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오마바 정부의 18F라는 팀이 주도하고 있다. 이 팀의 오픈소스 정책 원칙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소프트웨어는 국제 퍼블릭 도메인으로 배포한다.
  • 모든 팀 멤버들은 외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다시 기여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 우리는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공개적으로 개발한다.
  • 소스코드가 지연되거나 철회될 수 있는 일부 문서화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혁신적인 기술은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로부터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DARPA의 역할이 오스트롬의 이론과 부합하고 아니고를 떠나 미국에서조차 신기술 탄생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거래 비용을 감소시키고 진입 문턱을 낮추며 위험을 분산시키는 역할로서 정부의 존재는 기술 분야에서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다만, 정부가 어떤 철학으로 기술정책에 관여할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촉진적 정체 체제로서 거래 비용 절감을 도모하는 정부의 역할은 설득력이 있다. 완전한 배제도 지배적 통제도 아닌 다중심적 협력모델로 필요한 성과를 꾀하는 방식은 우리 정부도 검토해볼 만한 대안이다.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ㄱ’부터 ‘ㅎ’까지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는 자율적 기술 개발 주체의 등장과 성장을 독려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의 성과주의, 부처 이기주의가 가져올 폐해를 미리 예측한다면, 바로 지금부터 기술정책에 대한 정부의 역할론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 안도경.(2011). 시장-정부 이분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 R. H. Coase와 E. Ostrom의 제도 연구 방법을 중심으로. 정부학연구 제17권 제1호(2011): 35-56.
  • 안정배.(2014). 한국 인터넷의 역사. 블로터앤미디어.
  • 이철남.(2002).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위한 법률적 기초: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 분석 및 각국의 지원정책을 중심으로. 정보통신정책 14(4). p.18-31
  • Ostrom, E. (1990). Governing the comm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윤홍근·안도경 옮김. 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지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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