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스타트업, 계약서는 쓰고 로켓에 올라타자

2016.06.28

“다음 주 중에 정리해서 나가주면 좋겠다.”

창업 6년차 스타트업인 A 기업은 얼마 전 신규 서비스 출시를 맞아 경영 효율화와 역량 집중 차원에서 조직을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A 기업은 DB 관련 업무를 맡던 L씨와 J씨에게 사직을 요구했다. J씨는 정직원으로 들어와 수습 3개월 이후 8개월간 근무했고, L씨는 인턴 6개월을 거쳐 정직원 수습으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차였다.

사회초년생이었던 L 씨는 권고사직인력을 정리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권고사직이고, 다른 하나가 흔히 아는 해고다. 권고사직은 말 그대로 ‘회사를 나가달라는 요청에 직원이 응했다’는 의미다. 서로 합의 하에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별 다른 요건이 필요없다. 권고사직을 직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사용자는 해고라는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 해고는 법적으로 ‘정당한 이유’와 요건이 있어야 한다. 일주일 전 통보라는 방식이 조금 지나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어쨌든 '권고사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적다.close을 받아들였다. 그는 “여기서 사직요구를 거부한다고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일단 나가서 외부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번 일이 사실상 해고였다고 생각한다. A 기업은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으로서 빠르게 조직개편을 실행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권고사직을 실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저희의 역량 부족을 통감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물론 외부의 시선으로 내부의 속사정까지 모두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번 일의 배경에는 A 기업이 스타트업이라는 특성도 있다. 회사의 조직과 업무 유지 여부나 사람의 고용 여부를 30일 전에 미리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조직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스타트업이 장기적으로 계획해가며 회사를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서 전체를 없애는 형식의 감원이 종종 있다”라며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를 피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내보낼 때도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startupFail (1)

표준근로계약서. 이거라도 내려받아 활용하자.(출처=고용노동부)

근로계약서는 어디에?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퇴사자 3명 중 2명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을 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J도 고용촉진지원금 대상자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 계약서를 쓴 사람이 몇 없고 잘 안 쓰는 편인데, J만 예외적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J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 A 기업은 “일부 직원에 대해 근로계약서 작성이 늦어진 경우가 있었을 뿐이며, 해당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L씨 역시 인턴기간을 거쳐 정직원으로 계약할 때 근로계약서 작성할 것을 대표로부터 확언받았지만, 결국 작성하지 않은 채로 퇴사했다. 또 다른 퇴사자 S씨도 마찬가지다. 퇴사자들은 “더 오래 일한 정규직 직원들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A 기업은 이에 대해 “일부 직원에 대해 근로계약서 작성이 누락된 경우가 있었다. 명백한 저희의 잘못이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6월24일 오후7시까지 누락된 건에 대해 모두 계약서 작성을 완료했다”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담당자를 지정해 같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블로터>에 알렸다.

블로터아카데미

당연한 이야기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건 불법이다. 근로기준법 제17조(근로조건의 명시) 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의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또한 2항에 따르면 해당 항목이 명시된 서면을 근로자에게 내주도록 돼 있다. 아무리 직원 수가 적어도 근로계약서는 써야 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근로계약서는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을 명확하게 확정하고, 노동자가 안정적인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게 보장하기 위해 작성한다.

퇴사자들은 야근이나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서비스 출시 등의 기간에 아무리 일을 더 하더라도 이에 대한 보상이 없었으며, 처음에 구두로 약속받은 월급만 받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에 A 기업은 “근로에 대한 연장수당 관련 사항은 연봉계약서에 명시돼 있으며, 지급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물론 근로계약서를 안 썼으니 직원 입장에서는 야근수당이 월급에 포함됐는지 아닌지는 알 수는 없다. 이 역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Building

경영자도 초보인 경우가 많다. flickr, Randen Pederson, CC BY

스타트업이라도 지킬 건 지키자

이번 사태가 A 업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타트업의 인력관리 문제는 업계 전반에 걸쳐 있다. 스타트업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는 회사다. 대개는 인력을 관리하는 체계화된 시스템도 없다. 거기에 비용을 투자하기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초보인 경우가 많다. 국내 벤처업계 관계자는 “경험이 있는 사업자들은 근로계약서 문제를 잘 챙기는데, 젋은 창업자들의 경우 사업 경험이 부족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라며 “‘(이게 문제라는 걸) 어떻게 모르나’ 싶은데 진짜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라고 말했다.

잦은 인력 변동도 원인으로 꼽히곤 한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스타트업이 인력이 많이 변경되는 편이고, 나가겠다는 사람도 많아서 근로계약서 작성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인한 리스크가 크지 않은 것도 문제다. 노동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세금을 안 내면 찾아오지만, 근로계약서 안 쓴다고 잡으러 오진 않는다”라며 “음주운전 단속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운 나쁘면 걸리는’ 일로 치부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벌금 500만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니 경영자도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근로계약서 작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얘기다.

보통 스타트업계에선 ‘로켓에 올라타라’라고 표현한다. 스타트업에 함께할 때는 앞뒤 재지 말고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물론 타겠다고 한 것이 로켓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겠지만.) 로켓에 올라타는 건 좋지만, 그래도 안전띠는 매야 하지 않겠나. 최소한 근로계약서는 쓰고 시작하자. 기본은 지켜야 로켓도, 승무원도 제대로 항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chaibs@bloter.net

뉴스, 콘텐츠, 미디어, 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