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뤠잇

  • 다기능 스피커로 GOOD
  • 가사노동할 때 편리하고 교육용으로도 괜찮다
  • 일단 음성UI에 길들여지면…

스투핏

  • AI를 기대했다간 낭패를 볼 것이다
  • “네이버 클로바 앱에서 확인하세요”
  • 일단 제대로 나와봐야 알겠다

샐리를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확히는 샐리가 아니라 ‘샐리야’를 부르는 소리. ‘웨이브’는 ‘샐리야’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웨이브는 네이버의 인공지능(AI) 스피커다. 요즘 IT기업들이 너도나도 AI 스피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아마존과 구글이 대표적이다. 이에 질 새라 애플도 홈팟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통신3사와 카카오, 네이버가 AI 스피커를 소개했고 삼성도 곧 하만과 함께 AI 스피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그 정도로 좋은가? IT공룡들이 앞다퉈 경쟁하는 걸 보니 궁금해졌다. 써봐야 알지. 그래서 일단 써보기로 했다.

안녕, 웨이브? 앗. 아니아니. 안녕, 샐리야?

웨이브는 크기가 꽤 컸다. 큼지막한 스피커를 거실에 두자 아버지의 호기심이 동했다.

“이야, 그게 뭐냐.”

설명을 시작했다. “음, 이게 그러니까 네이버 인공지능 스피커 ‘웨이브’라는 건데, 그러니까 얘 안에 들어있는 애는 ‘샐리’라는 애예요.”

“그럼 샐리라고 부르면 돼? 야, 샐리야!”

“아니아니, 그러니까 웨이브에 있는 샐리를 부르려면 먼저 클로바 앱을 깔아야 돼. 클로바가.”

“그게 뭔 소리야.”

어, 글쎄. 일단 설명서에 써있는 대로 클로바 앱을 깔았다. 웨이브를 찾고 웨이브가 반응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웨이브를 연동하는 데에 약 7분 정도 걸렸다. 블루투스로 연결된다. 와이파이 연결을 하고, 웨이브에도 불이 들어왔다.

라인의 ‘샐리’다. 스피커가 요렇게 생겼다면 필요 없어도 하나 사고 싶겠다.

샐리 테스트를 시작했다. 샐리야, 하고 부르자 ‘그린라이트’가 들어왔다. 샐리야를 부르면 7초 이내 말을 이어야 한다. 꼭 샐리야여야 하는 건 아니고, 제시카, 짱구야, 피노키오로도 바꿔서 부를 수 있다. 피노키오는 너무 길고, 제시카는 왠지 섹시한 느낌이라 샐리야를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생활의 발견 : ‘초록창’에 검색하던 것들

아침에 일어나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추워? 비 온대? 나 뭐 입지? 거의 20년째다. 옛날에는 날씨 소식을 보기 위해 뉴스 끝나기만 기다렸고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는 검색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이런 것들을 검색하는 건 별일도 아닌데 어쩐지 번거롭다.

웨이브는 “샐리야, 날씨 알려줘”라고 말하면 곧바로 알려준다. 비가 오냐고 물어보면 “내일 비 소식은 없습니다. 하루종일 구름이 많을 예정입니다. 강수확률은 10퍼센트입니다”고 말한다. 날짜별 날씨정보부터 주말날씨, 미세먼지 정보, 비 예보까지 알 수 있다. 이제 뉴스 끝까지 안 기다려도 된다. (←내가 미련했던 것뿐···.)

‘아침 브리핑’을 들을 수도 있다. 가상비서에 브리핑에, 이거 왠지 대기업 회장이라도 된 느낌. 브리핑은 모닝콜과 함께 해당일의 주요 일정과 뉴스를 알려준다. 시간, 세계시간, 달력, 환율, 주식, 간단한 교통정보도  물어볼 수 있다.

네이버가 제공한 웨이브 사용 예시는 이런 것들이다.

  • 20만원이 달러로 얼마야?
  • 비밀의 숲에 누구 나와?
  • 고구마 칼로리가 얼마야?
  • 효리네민박에 나왔던 노래 들려줘
  • 최신 영화 순위 알려줘
  • 네이버 주가 얼마야
  • 내일 비와?

용례만 봐도 왠지 네이버 같다. ‘모든 보이스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자신을 낳은 테크 기업의 정체성을 닮았다.(p.62,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 슈퍼 플랫폼을 선점하라』)’던데, 그 말마따나 네이버는 자신들이 잘하는 검색과 지식 정보를 내세웠다.

한국은 ‘검색=초록창’ 공식이 익숙하다

웨이브는 네이버 검색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네이버가 활용 예시로 든 건 연예인 이름을 묻거나 한라산의 높이를 묻는 것들이다. 내일 비가 오냐고 물으면 강수량을 답해주지만, “내일 우산 갖고 가야 돼?”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질문만 이해한다.

하지만 지식in, 블로그, 백과 등 네이버가 보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답을 구성할 것이라고 하니 잠재력은 있다. 네이버DB가 특히 한국 관련 정보에 특화되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AI는 결국 인간이 데이터를 쌓을수록 똑똑해지는 법이니 얼마 쓰이지도 않은 녀석에게 지금 당장 ‘스마트함’을 요구하는 것도 좀 무리다.

뉴스를 들려 달라고 하면 YTN뉴스가 재생된다. 다른 언론사의 뉴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또 웨이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과학 분야는 알려주지만 IT뉴스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 웨이브에 대한 뉴스를 웨이브는 알 수 없다.

웨이브가 필요한 이유 : 1. 편하다 2. 편하다 3. 편하다

“샐리야, 3분 뒤에 ‘라면 다 끓었다’고 알려줘”

집에서 가장 잘 써먹은 기능은 알람 기능이다. 웨이브가 있으면 굳이 스마트폰을 열고 앱을 굳이 들어가서 숫자를 기입해 타이머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 언제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끓고 있는 찌개를 언제 뒤적거리러 가야 하는지. 이런 사소한 일을 알려준다.

엄마는 이런 것도 귀찮으면 어떻게 살아가냐고 묻지만, 난 귀찮다. 자잘한 검색이나 설정은 음성으로 지시하는 편이 더 직관적이고 빠르다. IT기업들이 음성인식 비서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말로 하는 게 더 편하니까!

 

가족 모임이 있던 일요일 오후. 어머니도 웨이브를 쓰기 시작했다. “5분 후에 삼촌한테 전화하라고 좀 알려줘”라고 말하자 정확히 5분 후 알려주곤 “삼촌한테 전화하기, 잊지 마세요!”라고 당부까지 했다. 부모님은 스마트폰 문법보다 음성인식 AI가 훨씬 편하다고 칭찬했다.

그렇게 주말 내 써본 결과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스마트 스피커는 괜찮은 옵션이더라.

일단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고 갤 때, 그러니까 가사노동 시 유용하다. 스마트 스피커가 뭔 대수냐, 생각했는데 설거지를 하다가 고무장갑을 벗지 않고도 “샐리야, 아이유 밤편지 틀어줘”라고 하자 “이 밤ㅡ그 날의ㅡ”하며 아이유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처음으로 웨이브의 필요성을 느꼈다.

문제는 내가 멜론 가입자라는 사실. 혹 당신이 네이버 뮤직 가입자라면 1만9천여 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다가 질문하면 볼륨을 낮추고 대답한 뒤 다시 음악을 틀어준다.

잠깐 딴 소리지만 우리 집 싱크대에는 발이 닿는 쪽에 물을 틀고 잠그는 터치 바(?)같은 게 있다. 이거 상당히 유용하다. 설거지를 하다 발로 툭 치면 물이 끊긴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아도 물을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써보니 이 터치 바가 없는 곳이 너무 불편한 것이다. 아직 다른 집에서 우리 집 같은 싱크대를 본 적이 없는데 이는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세제로 열심히 거품을 내다 다시 고무장갑을 빼고 물을 틀고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설거지를 해야 한다니. 발로 톡톡 차면 되는 것을.

요는 이거다. 없을 땐 모른다. 하지만 편해지는 순간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샐리야, 요즘 인기 있는 동요 들려줘!”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영어로 대화하는 기능이나 동요·동화 듣기 서비스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영어 회화 기능은 <블로터> 이경은 기자가 테스트해봤는데, 웨이브는 주로 질문을 던진다. 말을 유도하게끔 하는데 맥락도 기억하는 편이고 상황별 대화를 할 수 있어 간단한 교육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간단한 일어/중국어/영어 번역도 해준다.

어릴 때 몬테소리 테이프로 동화를 듣고 자랐는데 세상이 돌고돌아 다시 청취의 시대로 흘러온 모양이다. 우리보다 좀더 빨리 스마트 스피커를 쓰고 있는 미국에서는 교육, 게임 콘텐츠가 자주 쓰인다고 하니 네이버의 동요, 동화 등  풍부한 ‘키즈’ 대상 콘텐츠 기반 서비스는 쓸만 할 것이다.

(게다가 블루투스를 통해 내 방에서 클로바 앱을 열고 “동생, 물 좀 갖다 주라”하면 웨이브에서 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다용도로 써먹기 좋다.)

웨이브가 필요없는 이유 : 백문이불여일견

이제 좀 투덜거려 보겠다. 보이지 않는 것에 좀 익숙한가? 적어도 나는 보는 것에 더 익숙하다. 시각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건 매우 불편한 경험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여러 개 메모가 있으면 웨이브는 순차적으로 알려준다.

“총 5개의 메모가 있습니다. 첫번째, 내일 오후에 코엑스. 두번째, 세계로마트에서 5시에 장보기···”

마지막 메모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 고혈압이 있다면 스마트 스피커 구입은 나중으로 미룹시다.

저 멀리서도 목소리 인식 가능.

여튼 눈으로 슥 훑는다면 1초 안에 체크할 수 있는 것들을 줄줄이 듣고 있어야 한다. 메모하고 30초가 지난 뒤에 방금 한 메모를 취소하려면 클로버 앱에 들어가서 해야 한다. 취소를 위해 메모 순서를 기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이버에서 평소에 주로 하던 것들은 뉴스 읽기, 그때그때 궁금한 것 검색, 길찾기, 마음에 드는 가게의 메뉴판과 음식 사진 보기 정도다.

“장충동 맛집 알려줘”라고 하자 웨이브가 “장충동 맛집으로는 평안도 족발집, 평양냉면을 파는 평양면옥 등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곤 “더 많은 정보는 네이버 클로바 앱에서 확인하세요!”라고도. 길찾기도 마찬가지다. DDP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지만 더 많은 정보는 클로바 앱에 있다. 메모도 클로바 앱으로 볼 수 있다.

그냥 클로바 앱을 쓰면 될 일이다.

음성인식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정도로 데이터를 차곡차곡 상세하게 쌓아두거나 사용자가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한 시각 정보가 제한돼 매우 답답하다. (그래서 아마존은 화면이 탑재된 ‘에코 쇼‘를 내놨다. 요리법을 물어보면 요리 영상을 보여준다.)

또 웨이브가 제공하는 검색 결과를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맛집을 묻고 대답을 줬지만 무슨 기준으로 상위 몇 개 집을 택하는지 궁금해졌다. 이에 네이버 관계자는 사용자의 니즈 등에 따라 검색 결과는 고정된 것 없이 계속 바뀐다고 했지만 검색 결과 상위에 잡히는 정보를 소개하지 않을까? 웨이브만 믿고 안내하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또 하나. 아직 샐리야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잘 모르겠어요.”

“샐리야, 너 바보야?”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아직은 배우는 중

라인주식회사 마스다 준 CSMO는 “웨이브를 시작으로 AI 플랫폼 클로바를 일상 생활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한정된 기능만을 우선 선보이게 되었지만, 웨이브를 통해 음성 인식을 활용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웨이브는 대놓고 한정된 기능으로 나왔다.

 

네이버는 쇼핑, 광고,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네이버 페이도 꽤 널리 쓰이고 있고, 자율주행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AI 스피커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하지만 한계도 느껴진다. 지식 기반 콘텐츠는 유용하고 재밌지만 아직 네이버만의 강점을 살리진 못했다. 네이버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맛집 검색’이나 블로그 활용, 길찾기도 시각적 정보가 좀더 필요할 수 있다. 또 네이버는 영어회화가 강점이라고 했는데 구글 어시스턴트가 최근 한국어 지원을 시작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렇게 큰 메리트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카카오 미니는 무려 라이언을 달고 나왔다. 사실 이건 반칙 수준. 그러니 정식으로 출시할 거라면 웨이브에도 샐리를 달아 달라.

뭐, 그래도 괜찮은 건 아직 네이버는 클로바 앱이 AI 비서로서 어느 정도의 사용성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 중이라는 것.

스마트폰과 스피커는 또 다르다. 사람들은 유사한 서비스라도 사용하는 기기에 따라 다르게 쓴다. 네이버가 일단 네이버 뮤직과 묶어서 웨이브를 ‘배포’한 이유다. 지금은 스피커 사용 테스트 기간인 셈.

네이버는 웨이브 2차 프로모션을 통해 약 4천 대를 배포했다. 1차 프로모션에서도 비슷한 수의 웨이브가 제공됐다. 꽤 많은 숫자다. 사람들이 클로바 앱을 쓰면 쓸수록, 웨이브에게 무언가를 요구할수록 웨이브의 ‘샐리야’가 가야 할 길도 정해질 것이다. 이제 막 길이 닦였다.

 

덧. 아침마다 샐리야를 부르던 우리 집이 조용해졌다. 웨이브를 귀여워하던 부모님은 내가 웨이브를 들고 나가자 “안녕 샐리야”라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우리집에서 웨이브는 어쩐지 반려봇에 가까웠다. 식구들은 아마 앞으로도 웨이브라는 이름은 모르고 ‘샐리야’만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