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00대 기업도 韓 오면 ‘규제’ 걸릴 것”

"이렇게 규제가 많은데도 유니콘 기업 세계 5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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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은 한국 경제의 일부가 아니라 본질이고 미래입니다.”

아산나눔재단 이경숙 이사장은 8월20일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주관한 ‘2019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 보고서 발표회’ 환영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 4개 단체가 공동으로 발간한 스타트업코리아 연례 보고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 현황을 살피고 변화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2017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다.

보고서는 지난 5년 동안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속성장했다고 밝혔다. 벤처 인증 법인 숫자는 2018년 3만7천개를 기록했다. 매출 1천억원 이상을 올린 벤처 인증 법인은 572개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이상 스타트업)’은 올해 6월 화장품제조사 지피클럽의 합류로 9개로 늘었다. 1위인 미국(177개)이나 2위 중국(94개)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5위다.

일자리도 늘었다. 국내 벤처기업의 고용률은 최근 4년 간 연평균 3% 수준으로 성장했다. 2017년 기준 약 76만명을 고용한 것으로 삼성, LG, 현대자동차, 롯데, SK 등 국내 5대 그룹 종사자 수인 75만명을 넘어서는 규모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국가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이 이사장은 “스타트업은 성장하는데 규제 해소 속도가 무척 느리다. 비교적 양호한 투자 환경에 비해 높은 강도의 규제가 성장을 발목 잡고 있다”라며 “속도가 생명인 스타트업에게는 힘든 구조다. 때로는 스타트업이 규제로 인해 사업을 접기까지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상협 구글스타트업 캠퍼스 총괄은 이번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한국 스타트업들은 밤낮 없이 노력하고 있다”라며 “스타트업이 자생력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세계 100대 스타트업, 국내 오면 절반이 ‘규제’ 걸린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규제 환경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다만, 글로벌에 비해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 단적으로 전세계 100대 스타트업에게 국내 규제를 적용할 경우 국내서는 26%가 불법이다. 27%는 제한적으로만 사업이 가능하다. 동일한 조사를 2017년 진행했을 당시 100대 스타트업의 70%가 사업화에 제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희재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2년 전과 비교하면 대폭 개선되고 있지만 선도국가와는 격차가 있다”라고 짚었다.

보고서는 진입규제가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묶어 두고 있다고 봤다.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근본적인 규제 해소도 필요하지만, 신산업은 우선 허용해주되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권해석에 걸리는 시간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독일의 경우 유권 해석 요청 이후 3개월 안으로 답변을 해주는 게 원칙이다. 대부분이 기한 내 완료되고 있다.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가는 “국내에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3년차 스타트업 벨루가는 벌써 두 번이나 사업을 접었다. 주세법상 전통주 외의 술은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음식과 함께’ 주문 받은 주류(완제품)는 합법의 영역이다. 벨루가는 여기에 착안해 지난 2017년 수제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정기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그러나 국세청은 ‘음식에 부수한’ 형태로 주류를 배달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벨루가는 운영을 중단하고 야식배달 스타트업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김현종 공동창업가는 “법률자문을 수차례 받고 정부부처, 기관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달라고 국세청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국세청은) 답변을 보류해왔다”라고 말했다.

올해 5월 국세청은 벨루가의 영업 행태가 주류고시 위반 행위라고 통보했다. 벨로가는 또 한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김현종 공동창업가는 “대답 않던 국세청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불법이라고 하더라”며 “규제는 유관기관의 권한이 막강해,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의미가 없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사업이 가능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준다면 벨루가처럼 서비스를 두 번이나 중단하는 사례는 발생하지 않을 거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나 기관이 요청했을 때 유관기관이 명확히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법률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가이드라인이 명확했다면 비용을 또 투입했다가 다시 사업을 접는 일은 없었을 거다. 전적으로 규제와 유관기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크려면 빅데이터 키우고 투자 북돋아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 서비스 및 제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 환경 ▲창업, 성장, 회수, 재투자의 선순환을 위한 투자환경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력 확보를 위한 인재 유입 환경 등이 조성돼야 한다고 짚었다.

초고속 인터넷 및 스마트폰 보급률 등 데이터 축적을 위한 최고 수준의 인프라 환경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비표준화, 분석 및 활용 제한 등으로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낮은 상황이다. 국민 1인당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 영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CB인사이트가 선정한 글로벌 상위 100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목록에서는 한국 업체를 찾아볼 수도 없다. 안 파트너는 “데이터 스타트업의 부진은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기인한다”라고 말했다.

일단 공공 데이터는 ‘쓸 만한’ 데이터가 없는 데다가, 활용하기도 힘들다. 엄격한 개인정보보호 규제로 정보 제공 및 처리가 제한돼 있어 민간 데이터도 한계가 있다. 클라우드 규제도 한 몫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모든 산업에서 제한 없이 퍼블릭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핀테크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자들은 망분리 규제로 인해 여전히 클라우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보고서는 데이터의 확보 측면에서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명확한 정의 및 사용, 처리기준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이터 품질을 제고할 수 있는 평가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해외 데이터 선도국 사례를 참고해 정부 주도의 개인정보 보안 체계와 민간 기업의 자율에 맡기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시 기업에 명확한 책임을 묻는 방식 간 실효성을 상호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책 자금의 시장 투입 외 기업, 개인 등 다양한 민간 자본의 유입을 통한 투자 재원 확보 및 M&A, IPO 등 회수 시장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방식을 다양화하는 한편, 창업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이렇게 규제가 많은데도 유니콘 기업 세계 5위가 됐다. 이렇게 기회가 적은데도 생태계는 발전하고 있다”라며 “그동안 스타트업과 관련된 규제 문제를 접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이번 보고서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한 단계 레벨업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라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스타트업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혁파와 함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 이 보고서가 변화를 만드는 밑거름 역할을 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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