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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개의 ‘n번방’, 어떻게 막을까

2020.04.17

“하나를 신고해서 없애면, 열 개가 우르르 생겨나요.” 십대여성인권센터 활동가 ㄱ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ㄱ씨의 컴퓨터 화면에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띄워져 있었다. “여기가 ‘n번방’으로 추정되는 방이에요.”

‘n번방’으로 대표되는 텔레그램 성범죄는 지난해부터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올해 3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25)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성범죄 사건의 내막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난달 조주빈이 체포되기 전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찾았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미성년자 성범죄 예방과 피해 지원을 위해 2011년 설립된 단체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다는 점에 주목하고 2015년부터 ‘디지털 성착취’ 실태를 모니터링해왔다. 관련 게시물이나 영상, 사진, 대화방 등을 신고하는 활동과 더불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과 핫라인을 구축, 사이버상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에 대한 신고를 진행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랜덤채팅 앱을 비롯해 아자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트위터,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을 살펴왔다. 텔레그램 ‘n번방’은 그중 하나였다. ‘n번방’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활동가들은 묵묵한 싸움을 벌여왔다. 현장의 최전선에 있던 이들에게서 n번방을 포함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착취 실태를 듣고, 대책에 대해 물었다.

n개의 ‘n번방’

‘n번방’인지, 유사 ‘n번방’인지 알 수 없었다. ㄱ씨는 한 대화방을 가리키며 “n번방의 서브방으로 추정되는 방”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여성들의 나체 사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ㄱ씨에 따르면 서브방에서 집단강간, 1:1만남, 성범죄 사진 및 동영상 공유 등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메인방에 입장할 수 있었다. 방마다 가격은 20만원부터 최대 150만원까지 다양했다. 문화상품권, 비트코인 등이 ‘입장료’로 쓰였다. 진입장벽이 없는 ‘구매 문의방’도 많았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채널로, 파일명이나 폴더명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화방 홍보가 이루어졌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방을 ‘폭파(삭제)’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일이 잦았다. 정보는 ‘대피소’, ‘공지방’ 등 별도 대화방을 통해 공유됐다.

최근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면서 폭파 주기가 짧아졌다. 성범죄 영상을 몇 시간 동안 공유하고 다시 새로운 방을 만드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측은 “현재 텔레그램 및 디스코드, 텀블러 등에서는 여전히 영상을 판매한다는 계정과 게시글이 존재한다”라며 “가해자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잡히지 않기 위해 몸만 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성범죄물이 유통된 곳은 텔레그램만이 아니다. 랜덤채팅 앱,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트위터 등 SNS를 통해서도 퍼져 나갔다. 센터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아동·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성범죄 영상 222개를 적발했다. “(성범죄물은)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발적이지 않아요. 온라인 상담을 하다 보면 ‘샤워실에 가서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해요. 나이, 이름을 쓰도록 요구했다고 하고요.”

“용돈 필요해?” 성범죄의 시작

텔레그램 성범죄 피의자들은 신체 일부를 SNS에 노출하는 ‘일탈계’를 운영한 미성년자들을 노렸다. 랜덤채팅 앱에서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미성년자를 꾀어낸 경우도 많았다. 특히 랜덤채팅 앱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매매의 74.8%는 채팅 앱(37.4%)과 랜덤채팅 앱(23.4%)에서 이뤄졌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성매매 경로인 동시에, 기본적인 성인인증 절차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돼 있다. 지난해 원스토어, 구글 플레이 등 앱 장터들이 스스로 랜덤채팅 앱에 이용등급을 정하며 ‘땜질’에 나선 게 전부다.

일각에서는 피해자들의 ‘행실’을 꼬집기도 한다. 아동·청소년 스스로 노출사진을 올리고, 고액 아르바이트를 노린 탓이라는 것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센터장은 “아동·청소년을 성인과 똑같은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동·청소년이 옷을 벗고 뛰어든다고 해서 흔쾌히 20만원을 쥐어 주는 게 옳은 일인가요? 어른은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줘야 합니다. 그게 어른의 역할이고, 사회가 지켜야 할 시스템이죠.”

미국 대부분의 주와 영국·호주·캐나다 등은 아이가 만 16세 이하인 경우 성관계를 무조건 범죄로 본다. 합의를 했어도, 대가를 지불했어도 마찬가지다. 아동·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만 13세가 넘으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받는다. 성매매에 연관된 아동·청소년에 대한 처분도 논란의 대상이다.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따르면 성매매에 노출된 18세 미만 모든 아동은 성매수 범죄 ‘피해자’로 명시돼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성매매에 응한 미성년자를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한다. 성착취를 당했어도 대가를 받으면 형사처벌에 준하는 보호처분을 받는다. 피해를 입어도 쉽사리 신고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십대여성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의제강간연령을 상향조정하고, 아청법을 개정해 현재의 대상 아동을 피해 아동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진경 센터장은 “아동·청소년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은 하나도 없는데, 오로지 성적 자기결정권만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성범죄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고가 쉽도록 아청법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건’은 안 되고 ‘ㅈㄱ’은 된다?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이 텔레그램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센터장은 “범죄의 속성은 한 군데를 막으면 다른 한 군데로 간다는 것”이라며 “전체 플랫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폭넓게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성행했던 ‘빨간방’은 n번방의 시초격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 공유가 난무했다. 카카오는 300여명의 인력으로 24시간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지만, 센터에 따르면 오픈채팅방에서는 여전히 불법적인 행위들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메신저인 라인(LINE)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성범죄는 아니지만 아동·청소년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구글, 유튜브 등에서도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성적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센터 측은 우려하고 있었다.

이 같은 유해게시물 삭제나 사이트 차단 조치는 방심위의 몫이다. 방심위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모니터링하는 한편, 신고를 검토하고 인터넷 사업자에게 자율규제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구글, 트위터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의 경우에는 규제를 강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해외 인터넷 사업자들은 방심위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체 디지털 성범죄물의 30%가량만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가 ㄱ씨는 “국내라고 해도 작년까지는 신고를 하면 다음달에야 결과가 나왔다. 인력이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처리가 빨라졌지만, 방심위 심의가 내려지기 전에 게시물이 삭제되면 헛수고였다”라고 말했다.

센터는 방심위의 제한적인 심의 기준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예를 들어 랜덤채팅 앱의 경우 성행위 묘사와 금액이 제시돼야만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액만 제시되면 ‘증거불충분’이다.

조건이 충족돼도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 있다. 직접적인 단어가 아니라 초성이나 은어를 사용할 때다. “조건만남을 초성으로 ‘ㅈㄱ’이라 쓴다는 것을 방심위가 수용하는 것도 오래 걸렸어요. 작년부터 허용됐어요. 기준 자체가 보수적이에요. 예를 들어 ‘빤다’는 단어는 앞뒤 맥락상 성행위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빨대를 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고 되묻는 거죠. 키스알바나 소위 ‘대딸(유사성행위)’ 알바를 올려 놔도 성기 삽입이 없으니 증거불충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n번방 사태 이후 정부는 방심위의 모니터링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활동가 ㄱ씨는 “방심위는 플랫폼에게 ‘시정요구’ 조치만 할 뿐, 소극적으로 임해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각 플랫폼에서도 별도로 신고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신고 기능이 마련돼 있어도 후속처리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유튜브에 신고를 할 경우, 처리 결과를 따로 알려주지 않는다. 유튜브의 가이드라인에 위반이 되는 사안인지, 삭제가 됐는지 등 처분에 대해서는 고지도 하지 않고 있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IT업계 여성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IT 개발자, 서비스 기획자, 데이터 전문가 등 여성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위민두아이티(Women Do IT)’ 팀은 십대여성인권센터와 지난 1년여간 협력해 성착취 범죄 예방 가이드라인을 안내하는 웹사이트 ‘깨톡(https://teen-it.kr/)’을 개설했다. △유해사용자 신고 접수 및 차단 조치 △증거화면의 보관 및 요청 시 수사기관 전달 △성착취 피해신고자에게 피해지원 기관 정보 전달 △신고 이후 처리 절차 안내 등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담겨 있다.

디지털 추적단’을 만들자

디지털 성범죄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됐다. 조진경 센터장은 디지털 성범죄 전담 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IT기업들이 나서서 기술적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센터장은 “2015년부터 디지털로 성범죄가 옮겨왔고, 방어막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라며 “제도를 만드는 윗세대들이 사이버 세계의 현실과 그 심각성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라 범죄도 진화하고 있는데, 기술 수준에 맞춰 제도와 정책과 기술도 진화해야 한다”라며 “방심위, 경찰청, 여가부, 과기부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는 TF팀이 필요하다. 사이버 세계의 공조 시스템을 만들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전담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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