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포스코 ‘회계통’ 최정우, ‘부실의 사슬’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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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포스코는 ‘곳간’이 두둑한 기업입니다. 곳간이 두둑하다는 건 보유 현금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포스코의 올해 상반기 현금화가 용이한 자산(현금성 자산, 기타 금융자산, 이하 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12조원이 넘습니다. 포스코의 현금 자산은 삼성전자(보유 현금 27조원)와 현대자동차(13조원) 다음으로 많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경영합니다. 하지만 포스코는 국민연금공단이 최대주주로 사실상 주주가 주인인 회사입니다.

포스코는 현금이 많은 반면 빚이 적어 재무구조가 우량합니다.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부채비율은 26%(연결 72%)입니다. 이 때문에 포스코 회장은 임기 동안 본인이 회사 생활 동안 포스코의 넉넉한 현금을 활용해 꿈꿨던 ‘청사진’을 실현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정준양 전 회장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포스코호’의 선장을 맡았는데 비철강 부문에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습니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한 2009년 부채비율은 22%였는데, 2013년 84%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금융부채-현금성자산)은 4조원에서 19조원으로 급증했습니다.

당시 철강 산업은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비철강 산업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빚이 지나치게 많아져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면서 과잉투자를 한 셈이 됐습니다.

실제 정준양 전 회장은 에너지와 신소재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로 했고, M&A(인수합병)에 약 7조40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케미칼은 정 전 회장이 육성해 현재 포스코의 성장동력으로 우뚝섰습니다. 하지만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등은 실패한 M&A로 꼽혀 포스코에 손실을 입혔습니다.

최정우 회장과 권오준 전 회장은 임기 동안 전임 회장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 적잖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부실 사업들을 정리하고, 빚을 갚아 사업 및 재무구조를 개선했습니다. 정 전 회장이 권 전 회장에게 ‘바통’을 넘긴 후 최 회장 때까지 19조원이었던 순차입금이 올해 상반기 8조원대로 낮아진 게 한 예입니다.

포스코 유형자산 손실 및 이익 현황./자료=사업보고서

포스코의 사업보고서 상 ‘영업외이익’ 항목을 통해서도 최 회장이 구조조정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업외이익 세부 항목에는 ‘유형자산 손상차손’, ‘유형자산 처분손실 및 이익’ 계정 등이 있습니다. 손상차손이란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검사해 회수 가능한 금액이 장부가액보다 낮을 경우 차액을 반영하는 걸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포스코가 100만원에 생산설비를 구입했는데, 자산가치를 검사했더니 70만원밖에 안 됐다고 가정해봅시다. 차액인 30만원은 손상차손으로 인식해 손익계산서에 반영합니다. 이때 실제 현금의 유출은 없지만 당기순이익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권오준 회장이 임기를 시작한 201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손상차손 등을 분석한 결과 최정우 회장 임기 때 손상차손 규모가 급증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권 회장 임기 때는 유형자산 손상차손의 합계가 1768억원에 불과했는데, 최 회장 임기 때 1조1851억원으로 6.7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최 회장 임기가 내년 3월까지인 만큼 손상차손은 추가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포스코 회장 유형자산 손익 인식 현황./자료=사업보고서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포스코가 최 회장 임기 동안 유형자산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검사해 회계에 선제적으로 반영했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은 자산의 손상여부를 회계에 반영할지 임의적으로 선택해선 안 됩니다. 자산의 손상 징후가 발견되면 평가 절차를 통해 반드시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손상차손 항목이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주는 만큼 이를 보수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정우 회장 임기 동안 손상차손 규모가 커진 건 크게 두 가지로 파악됩니다. 포스코는 2018년 합성천연가스(SNG·Synthetic Natural Gas) 사업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이 사업은 정준양 회장 때인 2011년 시작됐는데, LNG와 석탄가격 상승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2018년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포스코는 SNG 사업중단으로 8777억원을 손상차손으로 인식했습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페로실리콘(Fe-Si) 생산공장과 압축연속주조압(CEM) 등을 매각하거나 중단하기로 하면서 약 2200억원의 손상차손을 추가로 반영했습니다. 이 사업도 철강부원료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2011년 시작됐는데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결국 매각됐고, 포스코는 1400억원의 투자금 대부분을 손실로 떠안았습니다.

종속 및 관계기업의 보유지분에서도 1조6000억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했습니다. 주로 인도네시아 제철소(PT. Krakatau POSCO)와 베트남 생산법인(SS Vina),  태국 생산법인(Thainox) 등 해외법인의 실적 악화 등으로 인해 손상차손을 인식한거죠.

포스코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연임이 가능합니다. 임기가 한정된 만큼 포스코 회장은 임기 동안 우수한 경영 실적을 내고, 배당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이 손실을 감안하면서까지 SNG 사업과 Fe-Si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사업들의 손실을 반영하지 않으려고 계속 운영할 경우 포스코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SNG 사업은 2016년부터 포스코에 합병되면서 이후의 실적은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없습니다. 2015년 이전에는 ‘포스코그린가스텍’이라는 별도 법인을 통해 운영됐습니다. 포스코그린가스텍의 2014년 영업손실은 36억원, 2015년 126억원에 달해 적자가 커졌습니다. 현재까지 SNG 사업을 계속 운영했다면 원가 부담으로 인해 적자가 불어났을 겁니다.

최정우 회장 임기 중 인식한 주요 손상차손 사례./자료=사업보고서

포스코는 적자로 자본잠식된 베트남 생산법인을 살리기 위해 지분 49%를 일본 철강사 야마토 그룹에 넘겼습니다. 베트남 법인은 현지 시황 악화로 지난해 4100만 달러(한화 48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합작사로 지배구조를 전환하면서 베트남 법인은 일본 회사의 자본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체질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최 회장이 2018년 7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유형·투자자산 손상차손’ 및 ‘유형자산 처분손실’로 인식한 규모는 3조1000억원에 육박합니다. 손실분은 포스코의 당기순이익을 감소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인식할 손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하면서 오히려 손실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사진=포스코

포스코그룹 회장은 임기가 제한된 전문경영인과 같습니다.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포스코의 체질을 개선한 셈입니다.

포스코를 잘 아는 관계자는 최정우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한 이래 줄곧 재무 분야에서 근무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정도경영실장을 맡았고, 2015년부터 2018년 2월까지 가치경영센터장을 맡아 회사 전반의 체질을 개선했습니다. 2018년 6월 회장으로 임명된 이후 그동안 포스코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사업들을 순차적으로 구조조정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최정우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입니다. 내년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차기 포스코 회장 선출에 들어갑니다. 최 회장이 재신임된다면 포스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바꿀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