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세이]’니콜라’의 사기의혹 해명, 그리고 ‘리플리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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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트럭 회사 니콜라가 사기 의혹에 휩싸였다./사진=니콜라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서 그걸 사실로 믿는 정신질환을 ‘리플리 증후군’이라 한다. 이를 소재로 적잖은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1955년 만들어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맷 데이먼 주연의 1999년작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가 유명하다.

별 볼일 없는 피아노 조율사 ‘리플리’는 우연히 한 선박회사 대표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망나니 아들 ‘딕키'(주드 로 역)를 데려오라는 요청을 받는다. 프린스턴 대학교 동창이라고 속여 딕키에게 접근한 리플리는 딕키의 연인 ‘마지'(기네스 펠트로 역)와도 친해지며 스스로 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동성애자였던 리플리는 디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디키는 이를 거부한다. 이에 리플리는 요트 위에서 디키를 죽인 뒤 그가 자살을 한 것처럼 유언장을 꾸미는 한편, 자신이 디키인 양 그의 돈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는 디키, 마지와 관련된 사람들마저 연이어 죽이고 만다.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주연 영화 ‘리플리'(1999) 포스터.

오래 전 본 영화 ‘리플리’가 떠오른 건 최근 유명해진 수소트럭 회사 ‘니콜라(NIKOLA)’ 때문이다. ‘힌덴버그리서치(Hindenburg Research)’라는 미국 회사가 지난 10일 리포트를 발간했는데, 그 제목이 ‘니콜라 : 어떻게 거짓말의 홍수를 활용해 미국 최대 자동차 OEM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나’이다.

이 리포트에는 그간 니콜라가 내세운 기술적 성취들을 전면 부정하는 질문들이 담겨있다. 가장 놀라운(또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2018년 1월 니콜라의 수소 트럭 ‘니콜라 원’의 주행 영상 관련 내용인데, 사실 이게 실제 차를 몬 게 아니라 내리막 언덕에서 차를 민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미국 힌덴버그리서치(Hindenburg Research)는 니콜라의 기술 진위를 묻는 53개 질문이 담긴 리포트를 공개했다./사진=힌덴버그리서치 홈페이지 갈무리

이밖에도 리포트에는 다양한 의혹들이 제시됐다. CEO 트레버 밀턴(Trevor Milton)이 2016년 공개한 니콜라 원은 사실 껍데기 상태였다는 지적, 본사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력을 100% 커버한다고 밝혔는데 사실 태양전지는 한 장도 없다는 내용, 본사에서 수소를 하루 1000kg씩 생산한다고 했는데 사실 생산시설은 없고 그 책임자는 하와이에서 막노동을 하던 동생 트레비스(Travis)라는 의혹 등이 그것이다.

2018년 ‘니콜라 원’ 주행 영상에 대해 니콜라 측에서 ‘움직인다(In Motion)’고만 했을 뿐 ‘스스로 작동한다(Powering Itself)’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힌 게 눈에 띈다./사진=힌덴버그리서치 홈페이지 갈무리

물론 니콜라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힌덴버그리서치 보고서의 53개 질문에 10개의 답변을 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2018년 니콜라 원이 실제 주행됐는지 묻는 질문에 ‘움직인다(In motion)’고만 했을 뿐 ‘스스로 작동한다(Powering Itself)’고 말하지 않았다는 해명이 바로 그것이다. 질의서에 대한 니콜라 측 답변이 얼마나 조악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니콜라의 사기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14일(현지시각)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5일에는 미국 법무부가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들 두 기관이 나서는 만큼 니콜라의 기술이 사실인지 여부가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다. 사기를 저질렀다가 탄로나 망한 ‘테라노스’의 전철을 밟을 거란 관측이 일찌감치부터 나온다.

니콜라가 그간 내세운 기술적 진보는 과연 진짜였을까. 혹여 테슬라(Tesla)의 성공에 영감을 받아 그럴싸한 회사를 만들고 투자금을 끌어모은 것 아니었을까. 니콜라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남들도, 스스로도 속이는 리플리 같은 인물은 아닐까. 진실의 조각들이 하나씩 모아지고 있다.

영화 ‘리플리’ 속 주인공은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연쇄살인까지 저지른다./사진=영화 ‘리플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