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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노조해요” 판교 IT노조의 외침

2020.10.19

“우리 같이 노조해요.” 19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광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산하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지회장들이 모여 ‘팻말’을 들었다. 이날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판교 IT노동자 실태조사 및 노조가입 캠페인 돌입 민주노총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들은 판교 IT노동자들에게 “서로의 울타리가 되자” “우리는 쓰고 버리는 아이템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노조 참여를 독려했다.

사업장 넘어 ‘업종’ 노조 만들어야”

IT업계는 ‘노조 불모지’로 불린다. 업계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밤샘노동은 일상이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조직개편·권고사직 등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노조가 필요한 이유지만, 노조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이직이 잦고 업무가 개인별로 쪼개져 있어 ‘뭉치기’도 어렵다. 대부분 중소영세사업장으로 꾸려져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최정명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수석부본부장은 “IT업계 종사자들은 사실상 포화상태”라고 지적하며 “특히 이직률이 높아 ‘너 말고도 사람 많으니 나가려면 나가’라는 식이다. 퇴사하고 다음날이 되면 대체인원을 바로 채울 수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4월, 네이버에서 민주노총 화섬노조 산하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 출범하면서 업계에도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9월 넥슨(스타팅포인트)·스마일게이트(SG길드)에 이어 같은해 10월 카카오도 노조(크루유니언)를 발족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요구했고 사측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유연근무제·전환배치 제도도 개선했다. 흐름을 타고 올해 7월엔 카카오지회 엑스엘게임즈분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장의 노조 유무에 따라 여전히 처우가 엇갈리는 데다가 중소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문제로 지목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IT기업 가운데 300인 이상 사업장은 0.4% 수준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55.8%를 차지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95.6%로,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43.9%다. 배수찬 넥슨 지회장은 “넥슨에서 포괄임금제 폐지를 이끌어낸 이후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 다른 대기업들도 잇따라 폐지를 발표했다”며 “대기업끼리 인력 경쟁을 하기 때문에 한 곳이 변하면 다른 곳도 변한다. 하지만 중소사업장은 여전히 ‘우린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변화의) 속도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서승욱 카카오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등 숱한 문제제기에도 없어지지 않던 문제들이 노조 출범 이후 해결됐다”며 “아쉬운 것은 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가 노조 없는 사업장에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결책은 사업장이 아니라 업종 전반으로 노조의 테두리를 넓혀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우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무노조 사업장’ 실태파악에 나서는 배경이다. 경기도본부와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지는 공동 논의테이블을 구성하고 △IT노동자 실태조사 홍보 △포괄임금제 폐지 및 공짜야근 금지 △노조가입 및 상담 채널 홍보 △판교 일대 현수막 부착 사업 등에 나설 계획이다. 상담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는 카카오톡 채널(IT노동자119) 및 민주노총 상담전화 1577-2260 등이 열려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노조활동에 동참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지회장은 “업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이직 등 다양한 상황에서 노조활동에 대한 우려나 부담이 큰 것 같다”며 “그래도 다함께 기업의 문을 두드려야 업계 전반을 바꿀 수 있다. 기업 하나하나를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서승욱 카카오 지회장은 “2~3년마다 이직한다는 특성상 노조 조직 여건을 갖추기 어렵고 사업장을 바꾸기 쉽지 않다”며 “게다가 IT기업에선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특히 중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은 다른 것보다 노동자들이 문제를 쉬쉬하지 않고 대화를 터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IT노동자들의 말벗이 되고 싶다. ‘우리’ 얘기를 하는 것이 모든 일의 출발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수찬 넥슨 지회장은 노동자들에게 노조 참여를 설득하면서 했던 말을 들려줬다.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