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게임박람회 '지스타 2023'의 폐막을 하루 앞두고 뒤늦게 출사표를 던진 게임 기업이 있었다. 방탄소년단, 세븐틴, 르세라핌, 뉴진스 등 엔터사업을 영위하는 플랫폼 기업 '하이브' 산하의 법인 '하이브 아이엠(IM)'이었다. 당시 하이브IM은 자사를 하이브에서 게임 등 인터랙티브 미디어 부문을 전담하는 곳으로 자체 게임 개발과 IP(지식재산권) 라이선싱,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정우용 하이브IM 대표, 미드낫,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 (사진=하이브)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정우용 하이브IM 대표, 미드낫,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 (사진=하이브)

지스타 2023에 참석한 만큼 하이브IM은 퍼블리싱을 맡은 게임 '별이되어라2: 베다의 기사들'에 대한 내용으로 간담회를 채웠다. 하지만 하이브IM은 게임 사업 외에도 AI(인공지능) 등 선행 기술 연구도 매진하고 있다는 내용도 꾸준히 언급했다. '기술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경계를 확장하겠다'는 포부가 담긴 내용이었다. 하이브의 주력 사업이 엔터테인먼트인만큼 엔터, 특히 음악 사업과 관련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해당 기술은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았기에 사업 내용은 물론 이로 인한 하이브IM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후 6개월 뒤 하이브는 하이브IM의 '기술'을 본격 공개했다. 지난 14일 하이브의 '프로젝트 L', 음악과 기술을 접목한 아티스트 '미드낫(MIDNATT)'을 공개하면서다. 미드낫의 첫 디지털 싱글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빅히트 뮤직과 하이브IM의 합작 프로젝트로, 동시에 하이브IM이 연구 중인 기술을 어떻게 음악 사업에 접목했는지도 공개됐다. 아티스트 미드낫 뿐만 아니라 하이브IM 역시 베일을 벗은 셈이다. 
 

드디어 구체화된 게임 외 엔터 융합 기술

하이브IM의 기술은 미드낫의 데뷔곡 마스커레이드 작업에 있어 시각과 청각 부문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이브IM은 지난해 엔터테인먼드 영역에서 어떻게 관여할 것인지 다소 뜸을 들인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했고, 그 결과 만족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프로젝트 L에 활용된 기술들은 하이브IM과 인공지능(AI) 오디오 기업 수퍼톤, 리얼타임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리얼타임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미드낫의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사진=미드낫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리얼타임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미드낫의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사진=미드낫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인공지능(AI) 오디오 기업인 수퍼톤은 다국어 발음 교정 기술과 보이스 디자이닝 기술을 담당했다. 다국어 발음 교정은 마스커레이드 음원을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6개 언어로 만드는 기술이다. 미드낫이 음원을 영어 등 5개 국어로 연습해 녹음하면, 다국어 발음 교정 기술로 더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교정하는 것이다.  한국어 외 5개 국어에서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 아닌 미드낫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돕는 장치다. 

또 보이스 디자이닝 기술을 통해 남성인 미드낫에게서 여성의 목소리를 새로 만들어냈다. 미드낫의 원천 보이스에 기반해 '프로젝트 L'의 사운드 및 비주얼에 최적화된 여성 보이스를 디자인한 것이다. 이날 미드낫은 "(보이스 디자이닝 기술을 통해)향후 듀엣 등 더 새롭고 다양한 도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리얼타임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과의 협업으로는 시공간과 날씨, 계절 등의 제약이 적은 뮤직비디오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XR은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모두 아우르는 시스템으로,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속 숲 로케이션을 제외한 전체 영상 구간을 제작했다. 또 확장현실 시스템이 합성된 가상 화면을 제작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리비주얼 기술도 도입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기자간담회에서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하이브)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기자간담회에서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하이브)

이 기술들은 일회성으로 미드낫의 새로운 도전을 지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이브 전체 레이블의 변화를 예고했다. 간담회 현장에서는 해당 기술을 활용해 향후 아티스트 동의 하에 2~3차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 제고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일본, 미국 등 하이브 레이블이 주로 진출했던 곳이 아닌 또 다른 국가로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는 활로가 열렸다.

미드낫의 원천 보이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여성 보이스는 실제 미드낫의 공연과 관련한 제약도 줄였다. 통상 듀엣 곡의 경우 한 명이 자리에 없으면 AR(All Recorded) 음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미드낫의 마스커레이드는 이제 미드낫 홀로 모든 공연을 소화할 수 있다.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는 "(다음달 열리는 하이브 위버스 페스티벌에서)미드낫이 마스커레이드를 라이브로 부르면 여성 보컬 파트로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브IM가 지닌 솔루션 기업이라는 정체성

하이브 '솔루션 부문'의 한 기둥을 하이브IM가 어떻게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해소됐다. 하이브는 사업적인 면에서 △레이블 △솔루션 △플랫폼 3단계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하이브IM은 이 중 솔루션을 담당하는 계열사다. 하이브의 솔루션 부문은 아티스트를 담당하는 레이블 부문의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음악에 기반한 공연, 영상 콘텐츠, IP, 게임 등의 사업을 맡고있다.

이날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자사에 대해 "아이엠(IM)은 인터랙티브 미디어의 약자다. 음악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영역"이라며 "(하이브IM이)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며, 인터랙티브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엔터테인먼트 제작 또한 맡고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기자간담회에서 정우용 하이브IM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하이브)

정 대표가 언급한 '인터랙티브(interactive) 미디어'란 일종의 도구로서의 역할로도 풀이된다. 게임 제작과 퍼블리싱 등 기술 위주의 사업과는 달리 아티스트 및 음악 콘텐츠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정 대표는 "프로젝트 메인 프로듀서 히치하이커가 음악 방향성을 최초로 제시하면 하이브IM은 아티스트 고유의 서사와 진정성,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 하이브IM의 명확한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향후 하이브의 기업 인수 행보도 주목된다. 이번 프로젝트 L에서 핵심 기술을 맡은 수퍼톤은 하이브가 2021년 투자로 시작한 인연으로 지난 1월 초에는 지분을 인수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이브는 2021년 수퍼톤에 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진행했고 이후 지난해 3분기 수퍼톤의 지분 31%를, 지난 1월에는 지분 7%를 매입했다. 하이브 1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퍼톤의 지분은 56.1%다. 

다만 하이브가 프로젝트 L을 구상하게 된 시점은 수퍼톤 인수와는 거리가 있다. 정우용 대표는 이들의 인과관계에 대해 "지분 인수 이전부터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수퍼톤 인수 지점을 특정할 수는 없다"며 "프로젝트 L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수퍼톤 활용 계획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라고 답했다. 

정 대표는 또 하이브 및 하이브IM의 인수합병(M&A)이 계속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라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면서도 기업 추가 인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그리움을 품은 희망이라는 것이 비단 미드낫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확장현실, 크로마, LED 등 기술적 도전이 단순히 성취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팬들에게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됐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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