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디카,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

2007-03-06     이희욱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이 증대되는 과정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이미지의 풍성한 향연을 가져다준 IT 기술의 혜택 '디지털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카메라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보다 선명한 화질, 원본에 가까운 색상, 고배율 줌과 편리한 버튼 구성 등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현실이다. 이용자의 세심한 요구를 재빨리 간파한 개발자들은 기술경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캐논은 사람의 눈 깜박임을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용 소프트웨어를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SW가 탑재된 카메라는 피사체가 눈을 감고 있으면 셔터가 작동하지 않도록 제어한다. 이런 디지털 카메라만 있으면 멋진 포즈를 잡고 찍었는데 눈을 감는 바람에 사진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체사진의 '나홀로 장님'도 사라질 전망이다. 피사체가 웃지 않으면 셔터가 작동하지 않는 '스마일 샷' 기능도 머잖아 나올 것이라고 한다. 

▲ 사진 찍을 때 눈 감지 마세요

지난해 후지필름과 캐논, 니콘과 펜탁스 등은 이미 '얼굴인식' 기능을 내장한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촬영시 카메라가 피사체의 얼굴을 인식해 자동으로 초점과 노출을 맞춘다. 초보자도, 열악한 촬영환경에서도 실수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다 '완벽한' 사진을 향한 개발자들의 노력은 박수칠 만 하다. 그러나 뒤끝이 영 개운치 않다. 촬영자인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침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은 카메라가 셔터를 허용할 때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눈을 부릅뜨고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눈을 감는 실수는 모면할 지 모르지만, 대개는 부자연스러운 웃음과 판에 박은 듯한 표정으로 도배한 단체사진이기 십상이다. 중요한 장면을 급히 찍어야 할 땐 더욱 난감하다. 일단 여러 장을 찍고 나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일은 '똑똑한' 디카의 방해로 물거품되기 일쑤일 테다. 촬영자는 피사체의 표정이나 초점, 노출과 촬영 순간까지 카메라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물론 이런 디지털 카메라의 새로운 기능들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제어 가능하도록 제공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용자가 기능을 켜거나 끄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심코 켜둔 기능 때문에 결정적인 장면을 놓쳤을 때 과연 준비성 없는 자신만 탓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디지털 카메라는 이미 긴 셔터랙으로 이용자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셔터랙은 셔터를 누른 직후부터 실제 촬영이 이뤄질 때까지의 반응시간이다. 순간을 포착하려 할 때 긴 셔터랙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놓치고 낙담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터. 그렇다면 원하는 장면을 원하는 순간에,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찍도록 돕는 게 카메라의 가장 충실한 임무가 아닐까. '정석'에 맞는 판박이를 찍어내는 게 아니라.

 

문제는 이것이다. 기술 발전이 인간 의지를 제어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충돌 지대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 '스마트'한 디카가 마냥 반가울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