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필통', 박수와 여운 사이
2007-04-01 이희욱
한겨레 '
몇 달 전부터 한겨레의 블로그 개편 준비 소식을 들었습니다. 3월31일 서비스 오픈과 함께 회원가입을 하고 서비스를 두루 훑었습니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한겨레가 온라인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앞세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뉴스 나까마'들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란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통'에 대한 첫인상을 주관적으로나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필통'은 '파격을 꿈꾼 한겨레 서비스'라 하겠습니다. 파격을 꿈꾸었으되, 끝내 한겨레의 선을 넘지 못한 서비스라는 뜻입니다.
우선 '파격의 꿈'부터 더듬어보겠습니다. '필통'은 언론사 사이트로선 보기 힘든 종합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입니다. 대개의 언론사 사이트가 기존 신문기사 외에 블로그나 카페 정도를 덧붙이는 수준이었다면, 한겨레 '필통'은 다양한 UCC를 한데 모으고 분류해둔 종합 정보창고라 하겠습니다. 기존의 한토마(한겨레토론마당)나 필진네트워크 등 한겨레만의 강점이었던 온라인 여론형성 공간이 이번에 '필통'으로 통합된 덕분입니다.
여기에 새로 문을 연 한겨레 블로그가 날것 그대로의 신선한 콘텐츠를 공급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능도 언론사 서비스로선 만족스러운 수준입니다. '관리자' 기능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로 블로그를 가공할 수 있는데다 외부 RSS 구독기능도 더했습니다. 'I-미디어'란 새로운 기능도 눈에 띕니다. I-미디어는 '필통' 속 콘텐츠 가운데 원하는 것만 골라 나만의 웹진을 꾸미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e메일로 전송할 수 있는 '맞춤발행' 서비스입니다. 예컨대 환경문제에 관심 많은 이용자라면 '필통' 속 환경 관련 기사나 정보들을 모아 나만의 환경웹진을 발행할 수 있는 것이죠. 개인을 편집의 주체로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기능이라 여겨집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기사로 전송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은 미디어다음의 '블로그 기자단'을 연상케 합니다. 기사 생산자를 기자에 국한시키지 않고 블로거까지 확대하고자 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번 '필통' 오픈으로 한겨레는 그동안 분산돼 있던 한토마와 필진네트워크를 묶은 통합 콘텐츠 포털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자금의 한계와 내부 사정으로 미디어 환경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한겨레의 한계를 고려하면 '필통'의 변화는 파격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필통'은 포털 서비스를 연상시킵니다. 메인화면은 각 메뉴들이 적절히 박스 형태로 배치된 화면구성입니다. 이용자는 입맛에 맞는 메뉴들로 첫 화면을 꾸밀 수 있습니다. 개인화 기능에 역점을 둔 인상을 주는 대목입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역시 '소통의 부재'입니다. 한겨레는 어떤 사람들이 '필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한겨레 콘텐츠 가운데 원하는 것만 골라먹는 이용자일까요, 아니면 열린 장터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용자일까요. 지금의 '필통'은 전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필통'은 정보분류와 섭취에 꽤나 공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대부분의 정보는 한겨레라는 울타리 안에 고여 있는 정보들입니다. 예외라면 'RSS 구독' 메뉴 정도일 테고요.
소통이 부족하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겨레는 '한토마'와 '필진네트워크'라는 훌륭한 이용자 참여마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한겨레가 자랑하는 UCC입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겨레 필진네트워크가 국내의 어떤 언론사 사이트나 서비스보다 앞장서서 RSS 구독기능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필진네트워크와 한토마는 상호 소통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뀐 '필통'에서 두 장터의 소통기능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뉘어 있던 다양한 메뉴들을 '필통'안에 모아두고 이용자가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입니다. 포털서비스라면 이해할 만도 하지만, 정보의 생산·전달·확산을 염두에 둔 미디어라면 적극적인 정보생산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필진네트워크와 한토마는 상호 소통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뀐 '필통'에서 두 장터의 소통기능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뉘어 있던 다양한 메뉴들을 '필통'안에 모아두고 이용자가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입니다. 포털서비스라면 이해할 만도 하지만, 정보의 생산·전달·확산을 염두에 둔 미디어라면 적극적인 정보생산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필통'이 '하니'라는 인터넷 한겨레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태생적 한계라 하겠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는 한겨레신문 기사들이 주요 콘텐츠입니다. '필통'이 문을 열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한겨레 기자들의 기사와 블로거의 글은 따로국밥입니다. 이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의 블로그 개편에서도 똑같이 발생한 문제점이었습니다. 기성 언론들의 '블로그 끌어안기' 과정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기왕 블로그의 글까지 기사로 끌어안으려 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융합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하니'를 통째로 뒤엎는 것인데요.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브랜드의 독립 사이트를 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한겨레 기자가 아닌, 한겨레 독자와 누리꾼이 만드는 새로운 미디어 말입니다.
기왕 블로그의 글까지 기사로 끌어안으려 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융합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하니'를 통째로 뒤엎는 것인데요.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브랜드의 독립 사이트를 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한겨레 기자가 아닌, 한겨레 독자와 누리꾼이 만드는 새로운 미디어 말입니다.
새로 문을 연 블로그 서비스에서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무엇보다 RSS 서비스는 실망스런 수준입니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느 블로그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RSS 버튼이 한겨레 블로그에는 없었습니다. 한참을 찾은 끝에 겨우 발견했습니다. 기본설정에 RSS 버튼이 '비공개'로 돼 있더군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RSS는 트랙백과 더불어 블로그의 핵심 기능입니다. 찾기 힘든 관리자 메뉴 한 구석에 비공개로 숨겨둘 이유가 없습니다. RSS는 언론사 사이트가 포털 중심의 콘텐츠 유통구조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기능이기도 합니다. 앞장서서 RSS 주소를 퍼뜨려도 부족한 마당에, 이렇게 숨겨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RSS는 트랙백과 더불어 블로그의 핵심 기능입니다. 찾기 힘든 관리자 메뉴 한 구석에 비공개로 숨겨둘 이유가 없습니다. RSS는 언론사 사이트가 포털 중심의 콘텐츠 유통구조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기능이기도 합니다. 앞장서서 RSS 주소를 퍼뜨려도 부족한 마당에, 이렇게 숨겨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RSS 지원방식도 어딘가 미심쩍습니다. 파이어폭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7 등은 RSS를 지원하는 사이트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주소창 오른쪽 끝에 주황색 RSS 버튼을 표시해줍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RSS 주소가 뜨는 식입니다. 이 기능 덕분에 파이어폭스나 IE7 이용자는 RSS 버튼을 찾아 헤매지 않고도 손쉽게 RSS 주소를 등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필통'이나 한겨레 블로그에 접속했을 때는 이 버튼이 뜨지 않습니다. 파이어폭스나 IE7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필통'(혹은 한겨레 블로그)의 RSS 지원방식이 독특한 것일까요. 역시 개선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I-미디어도 블로그도 기능상으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많은 기능들에서 기획자의 세심함과 고민이 묻어납니다. 몇몇 기능상의 오류야 기술적으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좁은 '필통'에 쑤셔넣다보니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서비스는 단순해야 합니다. 트위터나 미투데이같은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가 뜨는 이유도 쉽고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습니다. '필통'은 이용자 입장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서비스입니다. 로그인하고 나면 무엇부터 손대야 할 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필요한 기능만 쓰면 되지 않냐고요? '선택과 집중'은 서비스 기획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필통'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분산되고 핵심 서비스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아직은 새 서비스가 낯설기 때문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필요한 기능만 쓰면 되지 않냐고요? '선택과 집중'은 서비스 기획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필통'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분산되고 핵심 서비스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아직은 새 서비스가 낯설기 때문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필통'에는 모든 걸 완벽하게 잘 하려는 한겨레식 엘리트주의가 투영돼 있는 느낌입니다. 다 잘할 순 없겠죠. 분명히 어려운 일입니다. 욕심이 좀 과하다보니 배탈이 난 모양새입니다. 이것이 '필통'이 '한겨레 서비스'로 머무르고 만 이유입니다. 저만의 느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