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업하려면 10년 계획 세우고 오라"

2006-09-26     황치규

2003년 10월 중국에서 열린 보안 행사인 '인포시큐리티차이나'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보안 업계에는 이른바 '차이나드림'이 넘쳐흘렀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중국은 포화 상태에 도달한 국내 보안 시장의 한계를 극복해줄 기대주로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인포시큐리티차이나'에는 중국 시장을 향한 국내 보안업계의 열기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보안 업체 대부분이 부스를 마련하고 현지 홍보에 열을 올렸고, 글로벌 업체들과 한판 붙어보자는 강한 자신감이 넘쳤다. 만리장성에 깃발을 꽂아보자는 의지로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중국을 향하던 투지는 약화됐고, 한때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왔던 중국 고객 확보 소식도 뜸해진지 오래다.


무슨일이 생긴 것일까? 한동안 보안 업계와 떨어져 있었던 터라, 정확한 내막이 궁금했다. 3년전 인포시큐리티차이나에서 보았던, 그 넘치던 열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순간 머리속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3년전 인포시큐리티차이나에서 그 누구보다 중국 진출에 열정을 보여줬던 사람, 바로  안철수연구소 황효현 중국 법인장이다.


그는 지금도 중국에 있었다. 서둘러 e메일을 보냈다. 중국 시장의 현황과 향후 가능성 등 궁금한 점을 실어 보냈다. 그리고 장문의 답변서을 받았다. 



비록 e메일이었지만 그는 크게 달라진게 없었다. 술한잔 앞에 놓고 얘기했다면 '밤을 세울 만큼 할말이 많구나'란 느낌이 그의 글에서 강하게 풍겨나왔다.



e메일에 담긴 황 법인장의 결론은 '그래도 희망은 중국'이라는 것이다. 황 법인장은 "중국 생활이 3년반 정도 됐는데, 한국의 IT기업협의회나 친목모임에 가보면 3년전에 참석하던 분들중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다른 분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새로운 얼굴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많은 벤처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던 중국 사업에서 상처만 입고 쓸쓸하게 돌아갔다는 얘기다.


황 법인장은 지금까지의 중국 사업 성과가  당초 스스로 세웠던 목표에는 못미쳐 아쉽지만  한국 애플리케이션 업체중 그나마 매출을 이정도 내는 업체는 안연구소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싶다면서 중국 사업을 하려면 "10년은 계획을 세우고 현지 법인에 전권을 위임하는게 좋다"고 강조했다.


"10년은 계획을 세우고 중국에 와야 한다. 중국에서 돈벌려면 적어도 5년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중 이정도 시간을 기다려 줄만한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확실한 제품과 서비스를 갖고 중국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덧붙인 말이다. 



다음은 황 법인장과 나눈 e메일 인터뷰 전문이다. 문맥을 약간 다듬은 것을 제외하면 그가 보낸 e메일 내용은 대부분 그대로 전제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중국 사업 현황은.


안철수연구소의 중국시장 개척은 크게 3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1단계는  사전 조사를 위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공안부 인증을 받는 동시에 시장 가능성을 연구하던 시기다.  이 기간 안연구소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중국 진출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기도했다. 중국 시장의 기회와 위험에 대한 깊이있는 시뮬레이션도 진행했다. 대략 2000년부터 2002년말까지가 아닐까 한다.

 

2단계는  북경과 상해에 각각 대형 파트너를 확보하고 시장 개척을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는 OEM 파트너를 통해 제품을 공급하면서 중국 시장을 연구하는 단계였다.  OEM을 택한 이유는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기반으로 안연구소는 2003년 법인 설립 첫해부터 매출이 나오고 수익도 실현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펼쳤다. 



3단계는 OEM이란 그늘을 벗어나 본격적인 안연구소브랜드로 사업을 전개하는 시기다. 2005년 상반기부터 현재까지다. 독자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것은 당초 예상보다  6개월 정도 빨리 실현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 시작하려던 독자 브랜드 영업을 2005년 상반기가 끝날 무렵 개시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정상 상황에서 마케팅, 세일즈, 고객지원 등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우리돈으로 약 25억원이다. 이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안연구소가 지금까지 중국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중국 소프트웨어 시장은 '룰이 없는 아수라장'이라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런 가운데서도 안연구소는 중국에서 고객층을 두텁게 확보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다소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저가 공세로 인해 등록 고객숫자는 엄청난데 매출이 나오지 않는, 또 비용은 많이 발생하는 중국 특유의 구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예산에 의해 움직이는 중국의 기관들에게는 안연구소가 외국기업이라는 한계가 있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시장도  최근 중국군의 인증을 확보하는 등 착실하게 장애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총평을 하자면 개인적으로 당초 세웠던 목표에는 못미치는 결과라 아쉽게 생각하지만 한국 애플리케이션 업체중 그나마 매출을 이정도 내는 업체는 안연구소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싶다.


▲ 중국 사업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선 중국 시장에 대해 충분히 몰랐던 것을 들 수 있다. OEM을 하면서 이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부분이 속출, 애를 태운 적이 많았다. 이제는 하도 '맨땅에 헤딩'하다보니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두번째는 앞서 얘기한 것과 비슷하지만 수용할 수 없는 현지 관습들 때문에 어려웠다. 상식적으로 수용이 안되는 시장의 관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아마도 외국인으로서 중국에서 느끼는 혼란은 이점이 아닐까 한다.



다음은 한국과 달리 안연구소의 지명도가 낮다보니 대리점 발굴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경우 고객기반을 갖고 있는 대리점들은 이를 무기로  저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게 되는데, 우리는 '디스카운트 브랜드'가 되지 않기위해 정말이지 많이 싸웠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마지막은 아마도 모든 회사가 안고 있는 고민이겠지만 서울의 관점으로 중국을 판단하려고 하는 문제다. 대개 한국 본사에서 보면 중국 현지에서 보고하는게 이해가 안되고 말도 안되는 것들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전장에서 전투하는 장수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대포쏴라, 소총쏴라, 돌격해라, 후퇴하라는 것을 전황을 모르는 후방에서 말하기 시작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어려운 점들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 정도선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 중국 시장의 향후 가능성과 안연구소가 갖고 있는 목표는



중국 시장이 거대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총론이 그렇다는 것일 뿐 각론에서도 그런지는 각자 처한 입장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차이나드림'을 품고 왔다가 '쪽박'차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이 뿌려놓고 가는 달러로 중국이 먹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보수적이고 확실한 사업계획과 이미 확보된 매출을 갖고 중국에 와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 거대한 시장에서 기본적인 체력싸움이라도 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 거대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중국에서 1등을 하면 세계에서 1등을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제대로 하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4, 5년 전에 비해 중국은 몰라보게 법체제가 정비돼 가고 있다. 빌링 시스템을 포함, 인터넷 환경도 안정돼 가는 추세다. 신용카도 보급도 좋은 신호다. 반면 아직도 외국계 기업들이 진입할 수 없는 분야도  많이 있다. 그런 분야는 서서히 개방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안연구소의 목표를 얘기하면 중국 친구들이 웃는다. "기도 안찬다"는 뭐 그런 뜻인데, 그러나 나는 확신이 있다. 안연구소는 2010년 중국에서 반드시 1등한다. 그게 내 목표다. 안연구소앞에는 지금 시만텍, 트렌드마이크로, 라이징, 지앙민, 진산 등의 회사가 있고 그외에 안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회사가 3군데 더 있다. 우선 5대 회사에 들어가는게 중요하다. 



지금 안연구소는 중국에서 8위 정도 하고 있는데 6~8위 회사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5위와 6위의 차이는 상당하다. 5대 기업중 지앙민은 뒤로 밀리고 있는 추세고 나머지 4개 회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회사들을 이길 수 있는 안연구소만의 비법이 있다. 그것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는 중인데 일단 첫번째 결과가 2007년 상반기쯤 나올 것이다. 2010년에 안연구소가 과연 중국에서 1등을 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기자는  2010년  어느날 황효현 법인장과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인터뷰로 공개할 것이다.)



▲ 몇 년전부터 많은 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지.



중국 생활한지 3년반 정도됐다. 한국 IT기업 협의회나 친목모임에 가보면 3년전 참석했던 분들중 대기업을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분들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새로운 얼굴들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많은 실패사례를 접한 뒤 중국 진출에 신중해졌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제한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게임의 룰이 없기 때문에 이기는 사람의 방법이 룰이 된다. 그것을 학습할 만하면 본사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니 노하우가 축적될 수도 없다. 정말이지 어려운 시장이 중국이다. 특히 한국과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현찰위주, '꽌시'가 중심이 된 거대한 유통망, 허약한 신용관계, 언제나 빠지지 않는 블랙딜, 우선 찔러보는 상관습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우리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실패한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없이 강한 분들도 많다. 이미 실패를 경험한 분들이야 어떻게든 실패의 이유를 찾아야 하니 중국은 사업할데 못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분들은 성공이다 실패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환경이 비뀌어 언제라도 사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 그저 지금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분들도 꽤 있다. 그런 분들의 말씀을 듣다보면 그야말로 일기당천의 무용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아 저정도는 돼야 비로소 중국에서 사업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중국 시장에서 벤처 기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조건을 꼽는다면



10년 계획은 세우고 중국에 와야 한다. 특히 은근과 끈기를 강조하고 싶다. 중국에서 돈벌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한국 벤처기업중 그 정도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또 서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확실한 제품과 서비스 모델을 갖고 중국에 와야 한다. 한번 가서 해보지, 다들 가는데 나도 가야지하는 자세로는 달러만 뿌리고 또 하나의 실패사례를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우선 중국 진출전 고객을 미리 확보한 뒤 수익성을 바탕으로 진출하는게 좋다. 이를 위해서는 OEM을 비롯한 대형 장기 계약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전권을 현장에 맡기는게 최선이다. 일단 투자를 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현장의 지휘관은 매출이 늦어질때마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뭐라고 하면 정말이지 '뻬갈'없이 잠을 못잘 정도다.



▲ 앞으로 중국에 진출할 업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에서 한말과 비슷한 말이 되겠는데 참고 견디는게 제일 중요하다. 매출도, 사람관리도, 대리점 및 고객 관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버티는 정신이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중국인들이 두리뭉실해 졌는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떻게 끝까지 버틸 것인가, 그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알아서할 문제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