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로 전세계 책 보는 시대 온다"
2006-09-02 이희욱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인 필립 렌쎈(Philipp Lenssen)은 구글 관련 블로그 '구글 블로그스코프(blog.outer-court.com)'의 운영자다. "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의 80%는 구글 얘기"라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그는 구글에 푹 빠져 하루의 대부분을 바친다.
자연히 검색엔진이나 웹 기술과 관련된 내용도 블로그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e메일로 들어오는 각종 뉴스들에서 얻는다고 한다. 블로그와 함께 운영하는 구글 관련 포럼에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구글 관련 각종 정보들을 올린다. 거대한 구글 정보 네트워크는 이렇게 형성됐다.
렌쎈은 지난 5월말 온라인 DIY 출판서비스인 룰루(www.lulu.com)를 이용해 <구글을 재미있게 사용하는 55가지 방법>(55 Ways to Have Fun With Google)을 출간했다. 한 달여 뒤인 6월말에는 자신의 책 전문을 PDF 파일 형태로 온라인에 공개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책이 룰루에서 16달러 50센트에, 아마존(www.anazon.com)에서 19달러 66센트에 버젓이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 대신 PDF 파일을 내려받는 사람은 최소한의 규약만 적용된 자유로운 공유방식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따라야 한다. 최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책 전문을 웹사이트에 공개한 사연을 들어보았다.
▲ 책 전문을 공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책을 출간한 뒤 처음 몇 주 동안은 PDF 파일 공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셀프 출판(self-publishing)'이라는, 남들과 다른 방식을 택하기로 결정했기에 책 전문의 자유로운 다운로드 방식을 선택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편집자주 참조)의 저작권 규약이 좋다. 사람들이 손쉽게 온라인으로 저작물을 유통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 '구글 블로그스코프'도 CCL을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도 누구나 내 블로그 글을 어느 곳이든 퍼나를 수 있다. 원저작자를 표기하고 비상업적 용도로 사용한다면 말이다.
CCL의 또다른 파급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지금 책 내용을 뒤섞고 혼합할 수 있다. 이미 중국어 번역본 작업이 꽤 진행중이다. 한국 독자들도 지금이라도 어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시라!
▲ 당신의 결정이 책 판매량을 감소시킬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가.
책 전문을 공개하는 일은 확실히 나에겐 실험이다. 나도 알고 싶다.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그래도 사람들이 책을 사 볼 지. 물론 리스크는 상존하고 있다. 나 역시 쓰는 데 6개월이나 걸린 이 책이 팔리길 원한다. 하지만 책을 사본 내 경험으로는 책 전문이 복사된 온라인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종이책 구매를 막는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적어도 내겐 진실이다. 나는 '내 식욕을 당기는' 책들에 대해서는 온라인 풀버전을 구매한 경험이 많다. 로렌스 레식 교수의 <자유문화>(Free Culture)가 대표적 예다.
만약 누군가 내 책을 사는데 정말로 돈을 쓰지 않는다 해도 뭐, 상관없다. 그들은 온라인 버전을 읽을 수 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도 내 책은 독자들을 발견한다.
▲ 룰루도 당신의 결정에 동의했는가.
그렇다. 룰루닷컴은 CCL 조건아래 당신의 책을 출판할 곳을 찾을 때 굉장히 좋은 옵션을 갖추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 또한 이 점은 언젠가는 구글 책검색 서비스만으로도 책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할 지도 모른다. 그 과정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 책을 출간한 지 대략 3개월이 지났다. 책은 얼마나 팔렸으며,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판매 추세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약 70여권을 팔았다. 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초기 독자들은 지금부터 책을 리뷰하고 마음에 들면 소문을 낼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100권의 벽을 돌파하길 바란다. 그런 다음에는 1000권 장벽에 달려들 준비도 돼 있다. :)
<편집자주>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지적재산권 보호와 정보 공유라는 두 명제의 조화를 위해 활동하는 전세계 비영리단체. 스탠포드대학의 로렌스 레식 교수와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제임스 보일 등이 주도해 2001년 탄생했다. 레식 교수는 옛 클린턴정부 시절 미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 혐의로 기소할 때 법적 기반을 마련해 준 인물로 유명하다. CC가 도입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는 저작권자가 웹상의 자기 저작물에 대해 특정한 조건과 범위 안에서 이용을 허락하는 일종의 표준약관이다. 렌쎈이 채택한 CCL2.0은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을 전제로 자유롭게 복사, 수정, 배포 가능한 저작권 규약이다. CC측은 CCL을 가리켜 기존 저작권인 'All Rights Reserved'와 완전한 정보 공유 진영의 'No Rights Reserved' 사이에 위치한 'Some Rights Reserved'라고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