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법 수정안의 아이러니
2006-10-02 ksw1419
현재 입법이 추진중인 미국의 '통신법 수정안' (The Communications, Consumer’s Choice, and Broadband Deployment Act of 2006와 Communications Opportunity, Promotion and Enhancement Act of 2006)의 기본 방향은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모두 탈규제 및 시장우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 중립성 (Network neutrality)의 폐기가 추진되는 동시에 통신사업자의 비디오 프랜차이즈 사업 (IPTV사업)을 허용하거나 케이블사업자와 통신사업자간 시장경쟁을 유도한다는 목표가 추진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통신사업자와 케이블업계의 경쟁이 본격화 될 경우 영상서비스의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물론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져 '소비자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결국 '시장경쟁 확대를 통한 소비자 복지 극대화'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통신법 수정안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종국적으로 통.방융합시대를 맞아 통신사업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이란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네트워크 중립성이 폐기될 경우 통신사업자들의 인터넷 비즈니스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통.방융합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IPTV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신회사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번 수정안 가운데 유독 통신사업자들에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하나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더욱이 이 조항은 사실상 통신법 수정안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탈규제' 및 '시장우선주의'와도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편적 서비스 (Universal Service)'에 관한 조항으로 현재 상원에 계류중인 통신법 수정안은 보편적 서비스 기금의 확대를 통해 보편적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편적 서비스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보편적 서비스란 사실 '반시장적 정책'으로 누구에게나 적정한 수준의 요금으로 기본적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통신사업자를 강제하는 정책이다. 이런 탓에 현재 미 상원 상거래위원회 위원장인 바톤(Barton) 등 일부 시장주의 정치가 및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보편적 서비스 제도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야할 시장질서를 왜곡한다고 강력 주장하며 보편적 서비스의 완전 폐기 또는 최소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바톤의 경우 공개적으로 보편적 서비스 정책을 증오(hate)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탈규제'및 '시장 우선주의'에도 부합하지 않고 강력한 로비력을 갖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은 보편적 서비스 조항이 어떻게 이번 통신법 수정안에서는 오히려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어느 지역 출신인가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의 스티븐스 (Stevens) 의원은 알라스카 출신이며 이 법안의 발의에 공동 서명한 민주당의 이노우에 (Inouye) 의원은 하와이 출신이다. 대충 짐작이 가능한 것 처럼 미국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알라스카와 하와이는 지역적 특성상 유니버설 서비스 정책의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탈규제'와 '시장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통신법 수정안에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보편적 서비스는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통신법 수정안이 전면에 내세운 대의명분(이게 옳으냐 그르냐는 별개의 문제지만)조차도 지역 이기주의의 벽은 넘지 못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통신법 수정안의 아이러니가 시사하는 바는 지역주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에게는 지역구 이익의 극대화가 (사실은 그들의 재선이) 자신의 가치관 및 세계관보다 앞서는 최우선의 과제임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