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플', 길가던 '지식iN' 걷어차다?
영화 <괴물>의 상승세가 무섭다고 합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토록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먼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혹시 영화 <괴물> 보셨어요?" "아 그거요, ○○○ 나오는 영화는 다 재미있잖아요." 그렇지만 평소에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다른 반응이 돌아옵니다. "난 별로였어. 개인적으로 우리 스타일은 아냐."
자, 여러분이라면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길 가던 낯선 사람일까요, 친한 친구일까요?
물론 대부분은 두말 할 것 없이 친구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의 말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데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터.
써플은 정보를 스스로 더해간다는 의미의 '써치 플러스'(Search Plus)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조우를 상징하는 '써치 피플'(Search People)의 약자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써플의 두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정보를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생산·평가하고 ▲정보를 통해 지인들이 만나고 교류하는 채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잠시 검색서비스의 발전사를 되짚어보겠습니다. 써플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검색기술의 발전은 정답에 한 발씩 다가서는 여정"
검색기술의 발전은 정답에 접근하는 과정과 같은 궤적을 그립니다. 누군가 검색엔진을 통해 뭔가를 찾고자 할 때, 그가 찾는 대상을 정확히 보여준다면 최고의 검색엔진이겠죠. 쇼팽의 '왈츠'를 검색한 사람에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찾아줘선 말이 안 될 것입니다.
검색의 첫 번째 혁명을 일으킨 이는 엠파스였습니다. 1999년 11월, 엠파스는 야후의 디렉토리 검색에 맞서 '자연어 문장검색'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꺼내듭니다. 아는 정보를 모아 문장으로 만들어 물으면, 그에 가장 맞는 답을 찾아주는 식이죠. '신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이라고 물으면 야후처럼 '신대륙', '발견', '사람'을 각각 찾는 게 아니라 '콜럼버스'를 찾아주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었죠. 이후 자연어 문장검색은 검색서비스의 주류로 자리잡습니다.
이런 국내 검색의 방향을 일시에 튼 것은 뭐니뭐니 해도 2002년 10월에 등장한 네이버의 '지식iN'입니다. 문장검색이 문장 속 정보들의 공통점을 찾아낸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정답을 콕 찍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문장검색의 불확실성을 지식iN은 누리꾼의 답변으로 뛰어넘고자 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궁금증이 생기면 웹사이트를 뒤지기 전에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올려놓아라, 그러면 답을 아는 누군가가 곧장 대답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한글을 만드신 분이 누구예염?"이라고 물으면 바로 아래에 다른 사람이 "그것도 모르셈? 세종대왕이3~"이라고 답을 다는 식입니다. 일일이 문장 속 형태소를 분석해 답에 근접하는 방식에 비하면 훨씬 쉽고 간단합니다. 지식iN은 단박에 네이버를 검색서비스의 절대강자로 올려놓으며 '지식까지 찾아주는 검색'이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검색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식iN의 답변에 지나치게 믿고 의존하게 되면서, 잘못된 답변들로 인한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답변 아래 누군가가 오류를 수정해 새로운 답변을 달곤 했는데요. 지식iN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면서 참여자가 줄고, 이는 답변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답을 콕 찍어주겠다던 발상이 거꾸로 오답을 콕 찍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죠. 이 때부터 검색업계에선 '검색도 양이 아니라 품질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2005년 7월, '첫눈'이 등장합니다. 검색업계에도 새로운 기술이 화두로 떠오릅니다. 첫눈도 새로운 발상을 내놓습니다. 검색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첫눈이 참고한 것은 구글의 '페이지랭크'입니다. '많이 연결된 페이지가 중요하다'는 페이지랭크의 철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첫눈은 '중복된 정보가 가치 있다'는 철학을 담은 '스노우랭크' 기술을 꺼내듭니다.
검색 과정은 이렇습니다. 이용자가 검색어를 입력하면 인터넷 전체를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한 후 이를 분석해 주제를 찾고, 다시 이용자들에게 주제에 따라 결과를 묶어 보여줍니다. 결과 화면만 보면 검색 주제별로 몇 안되는 결과만 보일 지 모르지만, 이 1개의 정보는 최대 1만개의 검색결과를 모아 함축한 결과라는 게 첫눈의 주장입니다. 즉 중복되는 정보를 검색시스템 내부에서 열심히 분석해, 가장 정답에 가까운 정보만 골라 보여주는 것이죠. 첫눈을 미국 '구글'과 종종 비교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써플'을 내놓았습니다. 써플은 다양한 문장 속 정보를 분석하지도, 모르는 여러 사람에게 막연히 질문을 던지지도, 중복되는 정보를 분석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친한 사람, 혹은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합니다. 다소 맹랑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1800만 지인들에게 묻는다…"내게 답을 줘"
써플이 물어보는 친구는 다름아닌 싸이월드의 '1촌 기반의 강력한 1800만 지인 네트워크'입니다. 싸이월드의 경쟁력은 회원수가 아니라 '관계'에서 나옵니다. 싸이월드의 1800만 회원은 단순한 1800만명의 가입 회원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단순한 친구부터 가족이나 친척, 동창과 직장 동료로 얽혀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한 다리 건너 다른 이를 소개받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인맥 네트워크는 훨씬 넓어집니다. 이렇게 모인 1800만 회원은 다른 서비스업체 3천만 회원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인 네트워크를 떠도는 수많은 정보를 평가하고 가치를 매깁니다. 누군가 궁금한 내용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그의 주변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매긴 정보를 먼저 보여주는 것입니다.
앞의 비유로 되돌아가볼까요. 네이버 지식iN의 답변자가 '길 가던 낯선 사람'이라면 써플에서 답변을 하고 검색결과의 중요도를 매겨주는 사람은 친한 친구(혹은 그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사람)인 셈입니다. 끈끈한 결속력이 빛을 내는 순간입니다.
한 가지 더. SK커뮤니케이션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폐쇄적 서비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1인 미디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코드명 'C2'라 불리는 프로젝트인데요. 미니홈피나 블로그, 홈페이지나 게시판 등 현존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이 될 전망입니다.
이 'C2'에도 써플이 탑재됩니다. 이 경우 써플의 진가는 더욱 확실히 드러날 전망입니다. 검색포털인 네이트 엔진으로 탑재되는 것과, 지인 중심의 1인 미디어 네트워크에 얹는 것은 그 효과면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실어나를 수 있는 전용 고속도로를 놓는 셈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싸이월드의 지인 네트워크 환경이 무척 부럽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기에 써플 같은 독특한 검색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아무리 서비스가 좋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업상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자들이 서비스에 동참하도록 미끼도 던져야 하고, 이를 수익으로 연결할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써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돈'으로 바꾸는 건 이제 온전히 싸이월드의 몫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