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촉감까지 검색한다"…책마저 삼키려는 포털들

2006-09-05     이희욱

주요 포털사이트들의 책 서비스 경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네이버가 독점하다시피한 책본문검색 서비스에 다음과 파란 등이 가세한데다, 서비스 방식 또한 예전보다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선발주자인 네이버도 이에 질세라 새로운 서비스 파트너를 물색하고 한층 강화된 책 서비스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정보를 무한정 흡수하려는 포털들의 갈증은 이제 지식의 거대한 보고인 책속까지 파고든다.



네이버-북토피아 VS 다음-교보문고



책본문검색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네이버다. 네이버는 2003년 6월 전자책 전문업체 북토피아의 지분 9.5%를 10억원에 인수했다. 그리고 1달 뒤인 7월부터 책본문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북토피아가 보유한 전자책에서 본문을 텍스트만 추출해 네이버에서 검색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책본문을 검색한다고는 하지만, 책의 온전한 형태나 삽화 등은 빠져 있었다. 



그런 면에서 지난 8월 30일 다음이 내놓은 책 서비스(book.daum.net)는 새로운 경쟁을 예고하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다음은 기존의 텍스트 방식을 버리고 종이책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이용자 화면(UI)을 선택했다. 비록 PC 모니터로 보긴 하지만, 이용자는 종이책을 넘기듯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책을 뒤적이며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은 국내 최대 책 유통채널인 교보문고와 손을 잡았다. 올해 3월에는 아예 교보문고에 53억원을 투자해 지분 15%를 인수했다. 그 대가로 다음은 교보문고가 보유한 디지털 콘텐츠의 온라인 사용권과 315만종의 도서관련 DB 사용권을 손에 넣었다.



네이버도 올해 4월부터 책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 들어갔다. 북토피아에서 받아오는 전자책과는 별도로, 자체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공연수 네이버 책서비스팀장은 “오픈 준비는 이미 끝났으며, 서비스 방식과 범위에 대한 출판업계와의 합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이르면 9월 중순께 개편된 네이버 책 서비스를 보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네이버의 책 서비스 개편안 또한 책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화면구성에 주안점을 뒀다. 책은 단지 텍스트만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책의 판형과 표지 디자인, 내지 구성과 글꼴, 사진과 삽화 등이 내용과 잘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을 구성한다. 이 모든 구성요소에 기획자의 의도가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 교보문고와 손잡은 것과 달리, 네이버는 개별 출판사들과 일일이 접촉하며 저작권을 확보하고 있다. 8월말 기준으로 100여곳의 출판사가 서비스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네이버는 이들로부터 적게는 1권에서 많게는 수천권의 책을 받아 책본문검색 서비스에 맞는 형태로 일일이 변환하는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물론 북토피아가 제공하는 텍스트 기반의 전자책 5만권도 지금처럼 계속 서비스한다. 



적용된 기술도 다르다. 다음은 이노티브(www.innotive.co.kr)의 IPQ(Intelligent Pixel Query)란 파일포맷을 이용한 온라인 출판 솔루션을 가져왔다. 출판용 편집 SW ‘쿽 익스프레스’로 제작된 책 원본파일을 가져다 IPQ 솔루션에 집어넣은 다음, 자사의 온라인 책 서비스 형태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네이버는 쿽 익스프레스용 원본파일이 없는 옛날 책들도 광학식 문자판독기(OCR)를 이용해 일일이 스캔하고 있다. 국내에선 이런 작업을 처리할 만한 곳이 손에 꼽힌다고 한다. 자연히 변환 속도도 더디다. 우직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지만,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이 아니면 찾기 힘든 옛날 책들을 디지털로 변환하기엔 제격이다. 



다음 ‘UCC’ VS 네이버 ‘이용자 편의성’



다음의 책 서비스 개편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이용자 참여’다. 책을 읽고 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책 읽는 사람들’과 커뮤니티 기능인 ‘카페 소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용자가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감명깊은 내용을 다음 블로그의 ‘테마’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 이 글은 자동으로 책 서비스에 등록된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모인 콘텐츠들은 다양한 책 정보를 담은 거대한 저수지를 형성한다. 요즘 유행하는 이용자 생산 콘텐츠(UCC)를 적극 활용한 서비스다. 이는 ‘미디어 플랫폼’을 표방하는 다음의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네이버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근본적인 차이는 ‘책’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틈만 나면 자신들이 ‘검색 포털’임을 강조해왔다. 이용자들이 스스로 만든 책 정보를 돌려보는 데 주안점을 둔 게 아니라, 원하는 책 정보를 좀더 쉽고 편리하게 찾도록 하는 데 무게를 뒀다. 그래서 네이버는 이용자의 서평을 책 서비스에 덧붙이는데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 대신 한 권의 책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최대한 정갈하고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게 네이버가 추구하는 책 서비스의 밑그림이다. 



파란, 북토피아 등 틈새 서비스로 활로 모색



그동안 네이버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던 북토피아는 이런 네이버의 자체 서비스 움직임에 다소 당황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네이버를 통한 책본문검색 서비스와는 별도로, 전자책 전문업체로서의 강점을 살린 신규 서비스로 돌파구를 열겠다는 생각이다.  



북토피아는 이미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통해 ‘유비쿼터스(u)북’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면 PC로 내려받는 것과 동시에 휴대폰으로도 모바일 전용 책(m북)이 전송되므로, 책 1권 값에 2권을 구매하는 효과와 함께 이동중에도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북토피아의 u북 서비스는 현재 SK텔레콤을 통해서만 제공된다. KTF와 LG텔레콤 이용자는 PC용 e북과 휴대폰용 m북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북토피아는 앞으로 u북 서비스를 3개 이통사 전체로 확대하고, 이르면 9월 안에 새로운 개념의 책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 7월말 파란이 내놓은 ‘더 페이퍼’(paper.paran.com)도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더 페이퍼 역시 기존 텍스트 방식에서 벗어나 책의 형태나 디자인까지 그대로 살린 화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다음이나 네이버의 책 서비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일반 도서보다는 주로 잡지나 사보 등의 정기간행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차이다. 쿽 파일 원본을 드림투리얼리티(D2R·www.csdcenter.com)의 전자출판 형식인 CSD파일로 변환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오프라인 잡지나 화보의 화려한 디자인을 원본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용자 입장에선 똑같은 내용이라도 텍스트만으로 보는 것보다는 종이책 형태를 살린 화면에 아무래도 더 믿음이 가게 마련이다.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책’이라는 느낌이 와닿기 때문이다. 포털로선 책 기획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책 본문 공개 범위를 둘러싼 출판업계와 포털사업자의 갈등은 따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책 서비스를 둘러싼 포털의 이러한 변화속에는 디지털 콘텐츠가 태생부터 꿈꿨던 ‘아날로그로의 회귀 욕망’이 엿보인다. 애당초 0과 1을 조합한 문자로 책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디지털 기술의 생각은 오만이었을까. 사이버 공간의 책은 다시 종이책의 촉감과 향기를 검색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