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서 만난 인터넷

2006-09-05     ksw1419

지난 여름, 오랫동안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잉카문명과 아마존 정글을 다녀왔다. 온 가족이 미국에서 공부중인 기회를 이용해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 가보기 힘든 남 아메리카를 11박 12일의 일정으로 둘러본 것이다. (우리 부부는 현재 펜실베니아 주립대 매스컴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다.)



문명의 세계와는 전혀 다를 것 같은 대자연의 세계,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울창한 숲속에 푹 파묻혀 며칠간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꿈 꿔왔던 것이고 드디어 이번 여름에 큰 맘먹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아마존 정글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여행출발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사항이 몇가지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아마존정글이 보건상 여행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이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몇 가지 예방주사와 약을 먹어야 한다. 우선 여행을 떠나기 여흘 이전에 반드시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또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기 일주일전부터 말라리아 약의 복용을 시작해 여행후 4주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말라리야 약을 먹어야 한다. 이 두가지 사항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사항이며 그 외에도 간염 및 장티푸스 예방주사 등은 선택사항이지만 이 곳 의사들은 가급적 예방접종을 하고 예방을 떠날 것을 권하고 있다. 



사실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존정글 여행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표와 숙소 등을 다 예약해 놓은 후에 이 사실을 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지출을 감수하며 예방접종을 하고 약을 구해야만 했다.




모든 번거로운 준비작업을 마치고 페루 수도 리마를 거쳐 도착한 아마존정글은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다니는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발 디딜틈도 없이 온갖 나무와 풀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숲속에서는 하늘조차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한낮에는 40도를 육박하는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우리가 아마존정글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약 35미터 높이의 전망대(Canopy Tower)에 올라 아마존정글의 전경과 형형색색의 앵무새들을 구경하는 첫날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첫 날밤, 잠자리도 바뀐 데다 ‘드디어 아마존 정글에 도착했구나’하는 작은 설렘에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불길한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며 더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울창한 숲에 갑자기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특별히 대피할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괜찮을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며 밤을 보낸뒤 다음날 새벽 두번째 날 일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이드에게 “아마존정글에서 불이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가이드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아마도 뾰족한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황당해 하는 내 표정을 보며 가이드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제서야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며 “아마존정글은 건기에도 습도가 매우 높아 불이 날 확률이 거의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에야 비로서 아마존정글에 화재가 발생해 큰 피해가 있었다는 뉴스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며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문명의 세계와 동 떨어져 보이는 아마존 정글조차도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끔 해주는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실 인터넷이 워낙 보편화되다 보니 이제는 인터넷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연결한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아마존 정글에서 만난 인터넷은 나에게 충분히 색다른 경험이었으며 그야말로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전 우리는 ‘아마존정글에서는 인터넷도 안될테니 오랜만에 며칠간 속세를 등지고 한번 살아보자.’ 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사, 예상치 못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 듯 이번 여행에서도 생각치 못했던 일로 인해 그 같은 작은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아마존 정글로 가기 위해 중간 경유지인 푸에토 말도나도(Puerto Maldonado)란 도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얼마 전, 집 사람이 여행후 있을 종합시험 구두테스트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급박한 일정에 쫒겨 연락을 취하고자 했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못한채 숙소인 아마존정글의 통나무집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 곳에도 전화는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이게 웬 걸, 우리가 도착한 숙소는 푸에토 말도나도라는 작은 도시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아마존강의 원류 가운데 하나인 탐보파타강 (Tambopata River)을 약 1시간 거슬러 올라간후 약 10분간 무성한 숲속을 걸어야만 도착 할 수 있는 곳으로 전기도 없고(소형발전기를 이용, 최소한의 전기사용은 가능)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은 그야말로 아마존 정글 한가운데 오지였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전화좀 쓸 수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통나무 집 매니저는 “여기에는 전화 없다”는 대답으로 일말의 기대를 여지없이 꺾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실망도 잠시, 매니저의 다음 말은 내 귀를 의심할 만큼 반가운 소식이었다. “근데 인터넷은 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없는 아마존 정글에서도 위성을 이용해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집 사람은 위성인터넷 덕분에 아마존정글에 머무는 4일동안 틈틈히 이메일로 후배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필요한 서류를 학과 사무실에 마감시간 전에 무사히 제출 할 수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네”라는 말을 되뇌이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마존 정글에서 인터넷에 접속한걸 이야기거라고 하나.”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기도, 전화도 없는 아마존정글에서 만난 인터넷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동시에 ‘인터넷이 세상을 하나로 묶어가고 있다’는 말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한 소중한 경험이 된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지 열흘이 지난 지금도 문득 문득 칠흙같은 아마존 정글의 밤을 촛불로 밝히고 그 아래서 인터넷에 접속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