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떨리는데? 괜찮아, 그냥 찍어!
어느 것부터 맛을 보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밥상이 있다. 입맛에 딱 맞는 정갈하고 깔끔한 반찬이 올라와 있는 밥상은 배를 채워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이 맛깔스런 빛깔과 풍미를 타고 입을 지나 마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 것이 어디 밥상뿐이랴. 만든 이의 정성과 능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물건도 그것을 쓰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소박하더라도 눈과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밥상. 마음속을 읽어낸 듯 꼭 필요한 재주로 실속 있게 채운 물건. 이런 것들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 깃들어 있다.
여기 새 얼굴을 내민 카메라가 있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겉부터 속까지 이렇게 옹골질 수가 있을까 싶다. 1919년부터 카메라를 만들어온 펜탁스의 장인정신과 손재주가 그대로 녹아있는, K10D. 고객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낸 것이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자꾸 지갑으로 손이 가게 만든다.
자화자찬인가 싶어 그러려니 하고 셔터를 눌러 본 순간. 어라, 요란한 말잔치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우선 흔들림 보정(Shake Reduction)부터가 그렇다. 흔들림 보정 기능은 말 그대로 사진이 흔들려서 찍히는 것을 최소화시켜주는 기능을 말한다.
흔들림 보정 기능을 탑재한 디지털 카메라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요즘에는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에도 흔들림 보정 기능이 기본으로 내장되는 추세인 만큼 익숙한 기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K10D의 흔들림 보정 기능은 이 보다 한 수 위다.
K10D의 제품 설명을 보면 흔들림 보정 기능을 이용할 경우 약 2.5~4단계 정도 느린 셔터 속도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예를 들면, 1/60초 보다 느린 셔터 속도에서 사진을 촬영했을 때 흔들린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 사용자라면 이 보다 셔터 속도가 최대 4단계나 느린 1/4초 정도까지 흔들림 없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촬영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흔들림 보정 기능이 모든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각대나 플래시가 없을 때 흔들림 보정 기능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꽤나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특히 K10D에 탑재된 흔들림 보정 기능은 본체 안에 내장된 CCD를 움직이는 CCD 쉬프트(shit) 방식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용자의 손떨림 정도를 감지해 CCD가 탑재되어 있는 센터플레이트 부분을 고속으로 움직여 피사체가 떨리는 현상을 보정한다.
이렇게 본체 안에 흔들림 보정 기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된 구형 렌즈를 사용하더라도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K10D처럼 렌즈 교환이 가능한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의 매력이 다양한 렌즈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란 것을 감안하면 렌즈 호환성이 높은 흔들림 보정 기능을 탑재한 K10D를 눈 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감도 우선(Sv)과 셔터와 조리개 우선(TAv) 노출 모드를 탑재한 것도 마니아들에게는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감도 우선 모드를 선택하면, 지정한 감도에 따라 셔터 속도와 조리개가 자동으로 설정된다. 셔터와 조리개 우선 모드에서는 지정한 셔터 속도와 조리개에 따라 감도를 자동으로 설정해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초보자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DLSR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ISO 감도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 화질이나 느낌을 충분히 알고 있는 전문가나 마니아들이라면 제법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능이다.
빗방울, 습기, 먼지 등과 같은 불청객들로부터 카메라 내부를 보호할 수 있는 방수, 방진 처리를 한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K10D는 버튼과 조작 다이얼, 각종 이음쇠와 틈이 있는 72개 부분을 물기와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고무 실링으로 촘촘하게 막았다.
또한 CCD 표면의 특수 코팅(Super Protect)과 진동 기능으로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먼지제거기능(Dust Removal)도 사용할 수 있다. 습기와 먼지에 약한 디지털 카메라. 이런 단점 때문에 늘 애지중지하면서 다뤄야 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촬영하는 데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얼마나 선명하고, 원색에 가까운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디지털 카메라라면 좋은 화질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인 까닭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K10D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유효화소 1020만 화소인 크기 23.5x15.7mm의 CCD 센서는, 22비트 A/D 컨버터와 새로 개발한 프라임(PRIME)이라는 화상 처리 엔진과 함께 제법 만족스런 수준의 고품질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CCD에서 잡아낸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이미지 프로세서로 보내주는 A/D 컨버터 부분이다. K10D에는 22비트 처리가 가능한 A/D 컨버트가 탑재되어 있어, 훨씬 풍부한 계조(420만) 표현이 가능하다.
12비트 A/D 컨버터를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하면 1024배나 계조 표현이 우수하다는 것이 펜탁스의 설명이다. 이것은 곧 화상처리엔진이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A/D 컨버터의 성능이 우수하더라도 이를 빠른 시간에 처리할 수 없다면 굼뜬 디지털 카메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K10D에는 이론적으로 초당 800MB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신형 이미지 처리 엔진을 개발해 탑재했다.
1,020만 화소의 CCD와 22비트 A/D 컨버터를 탑재한 펜탁스 K10D. 흔들림 보정, 감도 우선 촬영 모드, 방수 및 방진, 먼지제거 기능 등을 제공한다. 연속 촬영은 초당 3매까지 가능하고, 옵션으로 판매하는 세로 그립을 장착할 수 있다. |
지난 11월 17일에는 펜탁스의 디지털 카메라 국내 유통을 맡고 있는 동원시스템즈에서 마련한 K10D의 제품 발표가 있었다. 그 동안 DSLR 카메라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던 K10D가 드디어 11월 30일부터 국내 판매에 들어간다.
K10D의 첫 인상은 소문만큼이나 성능이나 기능 모두 매력적인 부분이 적지 않았다. 가격은 번들 렌즈를 포함하면 약 100만원대 초반, 본체만 구입할 경우는 90만원대 후반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K10D는 11월 15일 삼성테크윈에서 출시한 GX-10과 거의 동일한 모델이다.
디자인이 약간 다르고, A/S를 어디서 받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GX-10은 기본렌즈를 포함한 가격이 99만 9,000원으로 K10D에 비해 저렴하다. 가격이나 A/S를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GX-10의 경쟁력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원시스템즈 카메라사업팀의 이정춘 팀장은 K10D는 세로 그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차별화 포인트로 꼽는다. K10D는 출시와 동시에 세로 그립을 옵션으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지만 GX-10은 아직 세로 그립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펜탁스 브랜드라는 것도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과연 그 정도로 가격이나 성능에 민감한 실속파 고객들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고객들이 어느 쪽 제품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지는 아직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가 높은 DSLR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펜탁스 로고가 새겨지고, 당장 세로 그립을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K10D에 대한 동원시스템즈의 기대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업체의 입장에서는 한바탕 결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매력적인 성능과 기능, 나쁘지 않은 가격, 그리고 두 가지 브랜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고려하면 DSLR을 고를 수 있는 폭이 그 만큼 넓어진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