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도 현지화하면 안되겠니..."
요즘 발표되는 IT 관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유독 '어색한' 단어들을 자주 접한다. 롱혼(Longhorn), 블랙콤(Blackcomb), 콘로(Conroe), 메롬(Merom), 몬테시토(Montecito), 털사(Tulsa), 바이퍼(Viper) 등등. 이 단어들에 대해 그 뜻과 제품명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코드명이 너무나 많다(하지만! 코드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거~).
IT 관련 기술 용어들이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발생하고 제품의 발생지도 영어권이다 보니 영어 용어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이겠지만, 그렇다고 영어에 유독 '알러지' 반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코드명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본 제품이 나오기까지 일련의 네이밍(Naming) 과정이 은근히 귀에 거슬리는 것은 뜻도 모르고 그 단어를 써야하는 답답함 때문이리라.
사실 코드명은 오래전부터 쓰여 왔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개발 중인, 또는 시작할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자나 관계자들끼리 불리어졌던 것이 최근에 와서는 제품에 대한 일반 사용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또는 제품 출시 전 업체의 '바람몰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많이 사용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 어떤 CPU가 등장하고 어떤 운영체제가 등장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러니 코드명이 일반인들에게 불릴 이유도 없었겠지만, IT와 컴퓨터가 대중의 관심사로 자리 잡은 최근에는 코드명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니 '코드명 인플레' 현상이 이해는 간다. 또한 복잡한 제품명보다는 간편한 코드명으로 부르면 기억하기도 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그리 어려운거야?
코드명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홍보되기 시작한 것은 32비트 운영체제의 시작을 알린 윈도우 95부터일 것이다. '시카고'란 코드명을 가졌던 윈도우 95는 제품에 대한 사용자들의 관심도 높았지만, 코드명이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한 기자는 태어날 아기 이름을 코드명으로 짓기까지 했으니 코드명의 유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이전 코드명은 나름대로 쉬웠다. 윈도우 95의 코드명 시카고(동명의 유명한 팝그룹 덕에 익숙할 것이다), 멤피스(윈도우 98), 카이로(윈도우 2000), 밀레니엄(윈도우 ME) 등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CPU를 비롯해 다른 제품군에서도 코드명이 양산되면서 코드명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클라매스 (Klamath), 카트마이 (Katmai), 멘도시노 (Mendocino), 윌라멧 (Willamette), 휘슬러(Whistler), 블랙콤(Blackcomb) 등 영어사전을 뒤져보지 않고서야 이것이 어느 지방의 지명이거나, 어떤 공원이나 스키장의 이름인지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심지어 이 코드명의 발음에 대해 매체별로 다른 표기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차세대 제품의 코드명이 'OOO'이라는 내용이 기사화될 정도이니, 코드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이제 업체의 마케팅으로 이용되는 것이 십분 이해되지만 필자에겐 어려운 코드명이 주는 어색함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호기심을 떨어뜨리지 않나 싶다. 복잡한 것이 바로 마케팅 전략이라고 강변하면? 그럼 할 말 없고.
요즘에는 태풍의 이름을 짓는데, 영향을 받고 있는 몇 나라들이 제공한 이름을 돌려쓰고 있는데, 비록 심각한 피해를 주는 태풍일지언정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라면 정이 가는 게 인지상정인 것처럼, 제품의 코드명 역시 각 나라별로 친숙함을 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어색할까? 차세대 운영체제 '메아리', 어떤가. 그 많은 나라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냐고? 방법을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