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중순 오후 5시쯤, 중국 베이징 시내 전자제품 판매상가들이 몰려 있는 중관촌. 도로 옆 길가에서 여러 사람이 컴퓨터 주기판과 프린터∙모니터∙키보드 등을 쌓아 놓고 무게를 재어 돈을 주고 받고 있었다. 낡거나 못 쓰게 된 중고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거래하고 있었던 것.
컴퓨터를 봉고차에 싣고 있던 수집상은 "이중에서 컴퓨터 칩의 값을 많이 쳐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아진 폐컴퓨터는 수집상을 거쳐 전문 처리업체로 넘어간다. 하지만 영세한 작업장으로 넘어가는 폐 전자제품들이 훨씬 많다. 심지어 지방 시골에서 원시적인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농민공의 손을 통해 값 나가는 금속을 분리한 뒤, 쓸모 없는 부품들은 땅에 묻거나 길가에 방치하고 있다. 이는 토양과 수질 오염으로 이어지면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국 '세계 최대 전자 폐기물 처리장 되나' 우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전자제품 폐기물 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중국 내부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해한 전자제품 쓰레기들의 처리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대 전자제품 소비시장이자 생산국가로 올라선 반면, 폐 전자제품의 회수와 재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 중국가전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전산업은 6000억 위안(7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냉장고 보유량은 1억3000만대, 에어컨은 1억대, TV 수상기는 4억대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전자제품 교체 물량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정보산업부와 통계국 통계에 따르면, 최근 수 년 동안 민간 부문에서 한 해 200만톤 가량의 폐 전자제품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환경보호총국은 한 해 동안 TV 수상기 500만대, 냉장고 400만대, 세탁기 600만대 가량의 교체 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PC 폐기 물량은 이미 2004년에 500만대를 넘었다. 앞으로 2010년까지 폐기될 PC 수량도 25~3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1월 현재 약 4억4000만명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이동전화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산업부는 한 해 평균 7000만대의 휴대폰이 교체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한 해 폐기되는 휴대폰은 1000만대 정도.
더욱이 폐 전자제품이 앞으로도 매년 15~25%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중국 정부에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대략 8년~10년인 가전제품의 수명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몇년 내 폐가전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 중국 정부의 전망이다. 휴대폰의 경우 2010년께 폐기물량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중국으로 불법적으로 밀반입되는 전자 폐기물들도 늘고 있어서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2년 전자 폐기물의 수입을 법으로 금지시킨바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신쟝∙쿤밍∙톈진∙닝보∙상하이∙광저우∙쟝먼 등 남동부 해안과 내륙 국경지대를 통해 수입 금지된 전자 폐기물들이 밀반입 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환경보호총국은 최근에도 여전히 불법적으로 선진국으로부터 컴퓨터∙모니터∙TV수상기∙팩스 등 전자 폐기물이 해안 지방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수년 동안 자국 전자 폐기물의 70% 가량을 중국으로 내보냈다고 중국 일간 차이나데일리가 전했다.
세계적인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의 중국지부는 "중국은 전자 폐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일본∙유럽은 자국환경 보호 명목으로 전자제품 폐기∙처리비용이 적게 들고 폐기가 용이한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불법적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제품 폐기물 원시적 처리=중국은 전자제품 폐기물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 반면, 폐 전자제품에 대한 처리는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 못한 실정이다. 불법적이고 원시적인 회수∙처리가 횡행하고 있다. 또 다수의 재처리 전문업체들이 있긴 하지만, 규모가 영세한데다 보상도 적어 폐전자제품의 부족에 직면해 있다.
중국전자상회 왕닝 부회장은 "현재 폐 전자제품의 회수 처리는 주로 사영업자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처리 방식은 (사용 가능한) 전자제품을 중고시장에 판매하는 것과 함께, 사용불가능한 전자제품을 남동부 광둥성 일대의 영세 사업장에 보내 값나가는 금속을 분리하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전자 폐기물 처리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은 광둥성 구이위진이 꼽힌다. 구이위진에 있는 시골 가정집들이 다름아닌 작업장이다. 이곳에서 폐전자제품의 처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원가를 절약하기 위한 것. 따라서 제대로 된 설비는 없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쟝쑤∙안후이∙쓰촨∙신쟝 등지에서 온 '농민공'들은 전자제품 회로기판을 태우거나 망치로 때려 재사용할 수 있는 금속과 반도체 칩을 분리하고 있다. 작업장인 집 주위와 공터, 냇가에는 수은∙납∙카드뮴 같은 유독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폐컴퓨터∙폐TV∙폐휴대폰∙전선 등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분리작업이 끝난 폐기물들은 땅에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있다. 이들은 토양과 식수, 하천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수질∙대기∙고체폐기물 오염으로 인해 2004년에 GDP의 3.05%에 육박하는 5118억 위안(미화 64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중국 일간 상하이데일리가 최근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국가환경보호총국의 판 웨 부국장은 지적했다.
◆전자제품 폐기물 처리 법규 제정 추진= 중국 정부는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전자제품 폐기물의 환경오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자 폐기물 수거·재처리 관련 법규를 제정할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조만간 전자폐기물 처리를 강제화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제정할 예정이라고 중국 관영 뉴스통신사인 신화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국무원이 2006년 입법 계획에서 전자 폐기물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측은 "관련 법규가 TV수상기∙냉장고∙컴퓨터와 같은 전자제품 폐기물을 재생하고 처리하는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자원의 재사용과 환경 보호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법규 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일단 새 법규가 제정되면 정부 인가를 받은 재생∙처리 전문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중국내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 이 법규가 제정될 경우, 중국내 가전제품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애프터서비스 제공업체들은 폐기물과 중고 제품을 재생하고 인가된 재처리 업체에만 팔도록 의무화 된다. 전자제품 폐기물을 불법적으로 팔거나 구매하는 행위 모두 금지된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차이나모바일과 모토롤라, 노키아는 폐휴대폰∙부품회수 연합 행동’활동에 착수한바 있다.)
소비자들도 전자제품 폐기물을 유통업체 또는 재처리업체에 넘기거나 팔아야 한다.
중국가전유지보수협회는 "정부의 감독과 관련 법규의 부족으로 인해 거대한 양의 전자 폐기물들이 낡은 영세 사업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며 "이에 따라 폐기물을 제대로 사용하고 못하고 엄청난 공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법규 제정을 반겼다.
그린피스 중국지부 측은 "무독과 회수는 전자업체들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제조업체들은 유독물질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고 환경친화적인 안전한 대체품을 채택해야 하며, 제품 회수와 안전한 처리 단계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12월 2~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8차 한∙중∙일 환경장관회의에서는 유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문제도 협의했다. 이치범 환경부장관, 저우성시앤 중국 국가환경보호총국 국장, 와카바야시 마사토시 일본 환경성 장관 등 3국 장관들은 유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관리하기 위해 자국 내에서 발생한 유해 폐기물의 관리체계 구축 노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또 폐기물의 국가간 불법 이동 통제에 관한 3국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주창하고 있는 새 정치이념 '조화사회 건설'의 원칙인 '과학적 발전관'과도 맥이 닿는다.
얼마 전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부의 후안강 교수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케 한 덩샤오핑의 유명한 '흑묘백묘론'에 비유해 '푸른 고양이, 검은 고양이론'을 들어 중국 성장모델의 변화를 주장했다. 이제 중국에서 공해∙오염∙검은연기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는 필요 없고, 녹색 환경을 떠오르게 하는 '푸른 고양이'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