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첫눈은 보고 싶은 친구처럼.
이럴 땐 산에 가야 하는데…….지금이라도 배낭을 메고 나설까? 토요일 밤, 11시.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던 올해의 첫눈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참을 창 앞에 서서, 눈발에 눈을 맞춘다. 찔끔찔끔 날리는 감질 나는 눈발이 아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하얀색 옷으로 갈아입은 물방울들이 하늘 가득하다.
툭, 툭, 투두둑…….여기저기 나뭇가지에서 눈 다발이 떨어진다. 어느 새 주섬주섬 옷을 입고 등산화를 신는다. ‘산으로? 아니, 그냥 눈 속으로.’ 마치 먼 산행을 떠다는 차림으로 길 위로 나선다. 그래 이 맛이다. 발을 디딜 때 마다 신발을 타고 전해오는 이 느낌, 얼굴로 달려드는 작고 차가운 알갱이들.
공원으로, 놀이터로, 뒷산 약수터로 눈 마중을 나간다. 아이들이다. 우산을 받쳐 든 아가씨도 있다. 눈을 뭉치고, 굴리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그럴까? 눈 속에 묻혀 가는, 점점 깊어가는 겨울밤은 어느 때 보다 조용하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참 반갑다. 얼굴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은 따뜻하다. 무섭고 사나운 눈이 아니라 다행이다. “하루 쯤 차가 못 다니면 어때!” 옆을 지나던 행인1의 상기된 목소리가 눈 속을 가르고 들려온다. 같이 가던 행인2가 말을 받는다. “난 첫눈을 보면 늘 첫 사랑을 만난 것 같아.”
피식, 저절로 입가에서 미소가 맴돌아 눈 속으로 사라진다. 첫사랑…….그런 게 있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겠구나. 만나면 반갑고,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언제 올까 늘 기다려지고, 마냥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람. 그러나 너무 혼자서 깊이 빠져 버리면 춥고 시리고 뼈 속까지 아파오는 사람.
문득,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 C가 생각난다. 술 보다 술자리를 좋아하고, 아픔이 많아도 언제나 따뜻했던 친구. 담배 피우는 모습이 참으로 멋있었던 C. 봄, 여름, 가을, 겨울. 참으로 많은 시간을 길 위를 걸으며 함께 했었던 친구.
언젠가 C를 만날 수 있는 우연이 찾아올까? 첫눈처럼 반갑고 따뜻하고 포근한 친구와의 만남이 지금처럼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어느 곳에선가 이 눈을 보고 있을 텐데. 소식 알길 없는 친구가 함박눈의 무게만큼이나 그리워지는 밤. 따뜻하고 소박했던 그를 기억하며, 사진 한 장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