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규제안 분석] '국감서 재점화' 기간산업 투자 두고 '갑론을박' [넘버스]
국가기간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통해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논란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점화됐다. 또 PEF의 국가기간산업 진입에 허들이 있어야 한다는 규제 논의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어디까지를 기간산업으로 봐야 할지 경계가 불분명한 데다 규제가 시장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14일 열린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PEF인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전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의 중요한 기술을 해외자본에 매각하게 되는데 이를 국민들이 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느냐"며 "기업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사모펀드가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하는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방책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 극대화를 우선시하는 PEF가 기간산업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국가 핵심 기술이 외국 자본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다. 김 의원은 "MBK는 이미 사모펀드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 기업사냥으로 매각 이익을 극대화하는 펀드가 됐다"며 "차입매수로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과 현금흐름을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빌린 뒤, 그 빚을 기업에 떠넘기고 자산을 매각한 후 고액 배당으로 단기 차익만 챙긴다"고 설명했다.
MBK 측은 고려아연이 국가기간산업임을 고려해 신중히 투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광일 MBK 부회장은 "고려아연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영풍과 함께 투자한 기업"이라며 "국가기간산업임을 유념해 투자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목소리를 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장 자율에만 맡기지 않겠다"며 "사모펀드가 머니게임식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고액배당 규제 등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사안과 관련해 PEF 전반을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산업별로 접근하겠다는 방향성을 밝히며 선을 그었다. 권 부위원장은 "안보·기술 유출 문제는 개별 산업법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이는 PEF 업계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한 PEF 관계자는 "SK텔레콤(SKT)이나 대한항공 등은 이미 전기통신사업법·항공사업법 등을 통해 외국인의 지분투자 제한이 존재해왔다"면서 "PEF의 법적 형태를 이유로 인수를 막는다면 실효성도 낮고 PEF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기간산업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논쟁거리다. PEF 관계자는 "핵심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국가기간산업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라 이에 대한 정의와 기준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 적용 범위와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내 PEF는 국민연금·공제회 등 국내 자금으로 운용되는 만큼 무분별한 규제가 자칫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PEF들이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해온 볼트온 전략과도 연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가 지나치면 산업 전반의 자본순환과 구조조정 기능이 약해져 결국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PEF에 대한 규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0인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상장회사 범위에 사모펀드를 포함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개정안에는 '금융업·보험업 회사는 계속 제외하되 사모펀드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상장회사에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상장 PEF의 공시의무 회피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