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정용진은 한화 김동선의 ‘귀인’이 될 수 있을까
“김동관에게 이재용이 있었다면 김동선에게는 정용진이 있을 것이다.”
10년 전 한화가 삼성테크윈을 비교적 값싸게 사들이며 탄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그룹을 이끄는 대장 계열사로 성장했다. 한화그룹의 숱한 인수합병(M&A) 역사에서도 '신의 한 수'로 평가되는 이 빅딜이 한화그룹의 장남 김동관(당시 한화솔라원 영업실장) 부회장과 이재용(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회장 간 친분을 바탕으로 성사됐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10년이 흐른 2025년, 한화그룹 삼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업적 인연이 유독 부각되는 데 대해 큰형의 스토리가 떠오른다는 얘기가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과거 김 실장에게 이 부회장이 그랬듯이 정 회장이 김 부사장의 ‘귀인’이 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영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 부사장은 그룹 내 유통 부문을 총괄한다. 이 가운데 핵심 축으로 꼽히는 계열사는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다. 이들 기업은 올해 단행한 총 네 번의 M&A와 신사업 론칭 중 세 번에 걸쳐 신세계그룹과 굵직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우선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슨이다. 5월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 베러스쿱크리머리는 김 부사장이 직접 맛보고 컨펌한 20가지 메뉴를 내세워 벤슨을 선보였다. 벤슨은 곧바로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판매를 개시하더니 8월에는 온라인 플랫폼 중 처음으로 SSG닷컴에 입점했다. 지난달 다섯 번째 정규 매장을 연 곳은 쇼핑몰 스타필드 수원이었다. 이들은 모두 신세계그룹 계열이다.
호텔과 단체급식 사업에서도 인연이 이어졌다. 8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인수한 5성급 리조트 안토(옛 파라스파라서울)는 삼정기업 소유였지만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실질적 운영을 도맡아온 곳이다. 이는 협상이 수개월 만에 타결될 만큼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시장가치 대비 약 2000억원가량 저렴하게 지분이 거래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인수자와 운영자 측 최고결정권자 간의 의중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후일담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달 말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신세계푸드로부터 급식사업 부문까지 넘겨받으며 화룡점정을 이뤘다.
1989년생으로 30대 중후반인 '경영 초보' 김 부사장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냉혹하다. 아직 성과를 입증하지 못했고 비즈니스 노하우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프리미엄'을 겨냥한 그의 의지다. 벤슨과 안토, 신세계푸드의 급식사업은 모두 고급 수요를 공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큰형의 방산 외길이 빛을 발했듯 막내의 프리미엄 뚝심도 두고 볼 일이다. 시간이 흘러 이들이 효자사업으로 거듭난다면 정 회장과의 관계가 시장에서 다시 회자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