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우대는 플랫폼 갑질?…네이버 쇼핑 '알고리즘 파기환송'이 제시한 기준은
대법원이 네이버 '쇼핑 알고리즘 조작' 과징금 소송을 파기환송하면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 기업의 자사우대를 무조건 불공정행위로 간주할 수 없다는 기준이 생겼다. 공정시장 경쟁을 목적으로 한 플랫폼 알고리즘 규제에 대한 논의도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2부는 이달 16일 네이버가 쇼핑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변경해 자사 제품을 상단에 노출한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이 정당했다는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2020년 10월 공정위는 네이버의 알고리즘 조정·변경을 문제 삼아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65억원을 부과했다. 자사 스마트스토어 상품을 상단에 노출하고 G마켓·11번가 등 경쟁 오픈마켓 상품이 뒤로 밀리도록 조정했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공정위의 처분에 반발해 2021년 3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서울고법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깨고 심리를 다시 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문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지배적 지위를 보유한 시장 또는 다른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제한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쇼핑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해 스마트스토어 상품이 먼저 보이도록 자사우대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이를 불공정 경쟁으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선 지킨' 자사우대는 정상 기업활동
이 사건에서 핵심 쟁점이 된 자사우대는 플랫폼 기업 규제 논의의 단골 소재다. 일례로 공정위 주도로 입법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플랫폼법)'도 자사우대를 주요 규제행위 중 하나로 삼았다. 자사우대는 자사 서비스·상품이 돋보이도록 부각시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행위다. 이에 대해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는 평가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자사우대는 경쟁기업의 활동을 저해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축시키는다는 지적이 공존한다.
대법원은 플랫폼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자사우대를 무조건적인 불공정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먼저 대법원은 네이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사 서비스·상품과 경쟁사 제품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법령상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알고리즘 조정·변경이 검색 결과 노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은 정당한 영업활동이며 이 같은 노력 자체로 경쟁제한 의도와 목적을 추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공정위는 네이버의 자사우대로 인한 경쟁저해의 영향을 충분히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해 자사우대가 과도할 경우 제재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와 관련해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유통 매장도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잘 보이도록 배치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플랫폼 기업의 자사우대도 사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프라인의 자사우대를 허용하고 온라인에서는 불허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플랫폼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데, 대법원이 합당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마트는 매장에 PB인 노브랜드 진열 공간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다. 이에 노골적으로 경쟁사를 배재하지 않는 한 자사우대는 정당한 기업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대법원은 공정위가 네이버의 자사우대에 따른 경쟁저해의 영향을 충분히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해 자사우대가 과도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광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번 파기환송 취지는 경쟁제한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자사우대로 다른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경쟁에서 배제하려는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제지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플랫폼 시장 규제를 논의할 때 획일적인 제한을 지양하면서 피해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성수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알고리즘 기술과 서비스가 변화무쌍한 플랫폼 시장에서 자사우대가 나쁘다는 식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며 "시장 질서를 지키는 사후 규제와 함께 구체적인 피해 구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자사우대를 규제하는 획일적인 법안을 만들지 않는 대신 다른 기업의 매출이 급락하는 등 손해가 명확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
AI 확산으로 더 어려워진 플랫폼 규제…'알고리즘 투명성'으로 균형
인공지능(AI)이 플랫폼 서비스 전반에 적용되면서 이번 사건과 같은 알고리즘 규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네이버의 알고리즘 조정·변경은 2012~2019년에 일어난 일이다. 2022년 생성형AI 열풍이 시작된 후 AI기술은 플랫폼 기업의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네이버의 쇼핑 알고리즘도 공정위 제재 대상이 된 2010년대와 달리 AI 적용으로 고도화했다.
이 때문에 자사우대 금지 등 플랫폼 기업 규제를 위해 알고리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플랫폼법 추진을 논의할 때마다 알고리즘 공개 의무는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막기 위해 포털 알고리즘을 공개해야한다는 주장도 불거졌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사실상 불가능한 주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보기술(IT) 기업의 한 관계자는 "규제하려면 알고리즘의 실태부터 파악해야 하지만, 알고리즘은 영업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고 갈수록 복잡해면서 수시로 조정·변경되기도 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AI 확산으로 자사우대 제지, 알고리즘 공개 요구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규제 우선주의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키워 플랫폼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광욱 변호사는 "알고리즘이 불공정행위를 유발하도록 설계돼도 이를 사실상 입증할 수 없다면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를 확대해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사우대를 적용한 경우 이를 소비자에게 밝히는 식이다. 경쟁당국의 자료 제출 요구 시 플랫폼 기업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공정위는 이번 대법원 판결과 향후 플랫폼 시장 규제 방향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판결을 분석 중이며 다시 진행될 고등법원 심리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