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버렸던 11번가 다시 품은 이유.. FI 국민연금 '달래기'
2023년 11번가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뒤 매각에 전념해온 SK스퀘어가 2년 만에 11번가를 그룹 산하에 편입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계열사 간 사업 시너지 기대라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거액의 투자금을 잃을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과의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자구책에 더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플래닛 이사회는 모회사 SK스퀘어와 재무적투자자(FI)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이 보유한 11번가 지분 100%(자사주 포함)를 취득하기로 29일 의결했다. 거래는 SK스퀘어 3810억원(지분 80.3%), 나일홀딩스 863억원(18.2%), 11번가 73억원(자사주 1.5%) 등 총 4746억원 규모로 다음 달 27일까지 진행된다.
SK플래닛은 이 중 11번가 자사주 거래분을 제외한 4673억원을 FI에 연내 지급할 예정이다. 나일홀딩스(H&Q코리아 블라인드펀드,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는 앞서 2018년 11번가 지분 18.2% 확보에 5000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그간의 배당금까지 고려하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게 된 셈이다.
11번가는 2023년 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SK스퀘어가 투자를 유치할 당시 FI와 맺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11번가가 5년 내 상장하지 못할 경우 최대주주(SK스퀘어)가 FI 지분을 되산다는 내용이다. 이후 주주간계약에 따라 FI가 SK스퀘어 지분까지 통으로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각청구권(드래그얼롱)이 발동됐지만 2년 동안 외부 원매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
SK그룹이 11번가를 다시 들이기로 한 것은 매각이 난항을 겪을수록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투자금 상환 압박이 커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투자금 5000억원 가운데 국민연금 출자금만 3500억원에 달했다. 이미 SK스퀘어가 1차 콜옵션 포기 당시 투자자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불거진 데다 ‘큰손’ 국민연금의 손실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자본시장 내 평판 리스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특히 SK그룹으로서는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SK하이닉스를 비롯한 10개 이상의 핵심 상장 계열사에 5% 이상 주주로 올라 있기 때문이다. 감시와 견제 수위를 높이거나 경영행보에 유의미한 제동을 걸 수 있는 지분구조라는 점에서 존재를 간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그룹에 대치되는 입장을 스스럼없이 표해온 그간의 국민연금 기조를 돌이켜볼 때 11번가 이슈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향후 사업 불확실성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등기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2016년, 2019년, 2022년 번번이 반대표를 행사한 바 있다.
SK그룹은 올해 계열사에 대한 FI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적극 지원해왔다. 6월 SK이노베이션은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되사왔고 7월에는 SK온과 SK엔무브 간 합병에 앞서 기존 SK온의 FI인 MBK파트너스와 한투PE의 투자금을 상환했다. 11번가 나일홀딩스의 엑시트도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SK플래닛은 11번가 인수를 계기로 핵심 사업인 OK캐쉬백과 이커머스 플랫폼 간 시너지를 도모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OK캐쉬백과 11번가의 11pay(간편결제)를 결합해 ‘결제→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구축하고, 11번가 기프티콘 사업과 함께 OK캐쉬백 앱 내 판매, 포인트 활용 마케팅을 강화해나가는 식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콜옵션 포기로 SK그룹이 금융시장에서 신뢰도 문제에 직면한 가운데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대내외 목소리가 이어졌다”며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향후 신규 거래나 투자유치 과정에서 득 될 게 없다는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11번가와 동행하게 된 만큼 수익성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