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관세 직격탄]① 수출 '15% 장벽'…최악 면했지만, 바이오시밀러 리스크 현실화
한미 관세협상에서 제네릭 의약품이 무관세를 유지한 가운데 의약품 전반에 15% 관세가 부과됐다. 바이오시밀러가 관세 대상에 포함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수출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악의 관세 폭탄은 피했지만, 글로벌 시장 중심이 북미로 기울어진 산업 특성상 이번 협상은 구조적 리스크를 드러낸 전환점이 되고 있다.
15% 관세 여파, 시밀러 최대 변수 부상
3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최근 관세협상을 통해 의약품에 15% 관세를 부과하고, 제네릭에는 기존대로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15%는 의약품 최혜국 대우 관세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릭은 이전 자유무역협정(FTA) 합의안을 이어간다. 이번에 도출된 합의안은 7월 이후 이어진 실무협의의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문은 관세청 고시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을 이번 조치의 최대 변수로 지목한다. 제네릭이 면세로 확정된 반면, 바이오시밀러가 '의약품' 범주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가 관세 적용 품목에 포함될 경우 수출단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내년부터 적용이 본격화되는 만큼 당장 내년 수출계약분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바이오시밀러 수출은 통상 연 단위 계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세 반영 시점 이전에 체결된 물량이라도 손익계산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특히 계약 구조상 환율과 원가까지 반영되면 실제 수익성 하락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제네릭이 무관세로 유지되면서 바이오시밀러는 관세 대상이 된다면 동일 제품군 내에서 과세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적 성격이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바이오시밀러에만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산업 구조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꼴이라는 불만도 제기된다. 이는 수출단가 조정과 가격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리쇼어링 가속화 中 수출 구조 흔들림
시장에서는 이번 사안을 산업 구조 전반의 '리스크 현실화'로 본다. 그동안 자유무역체제 속에서 유지돼온 저비용 수출 구조가 흔들리고 있으며, 관세를 계기로 생산기반이 각국 내부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세 체계가 유지될 경우 기업들은 수출 중심 전략을 조정하고 공급망을 다면화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협상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제조질서 변화의 시작점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산업 경쟁력의 격차를 드러낸 결과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의약품 공급망을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관세는 사실상 리쇼어링(생산 회귀)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북미 의존적 수출 구조를 유지하는 데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세 부담보다 시장 접근성 자체가 제한되는 것이 더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기업들은 대응책으로 현지 생산기지 설립이나 위탁생산(CMO) 계약을 검토하고 있으나,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인건비, 시설비, 규제비용 등이 높아 단순히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는 관세를 피하려다 고정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도 본다. 이 때문에 단기적 대응보다는 장기적 비용 효율화를 중심으로 한 구조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자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하며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도 변수다. 화이자, 머크, 암젠 등 주요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비중을 높이고 있어, 수입 바이오시밀러의 입지는 점차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관세 체계가 유지되는 한 기술력이나 품질 경쟁력만으로는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품목관세 발표 전 산업 체질 전환 시험대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바이오시밀러의 관세 적용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의약품에 대한 품목관세가 발표돼야 구체적인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 분류 결과에 따라 향후 수출 전략이나 계약 구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수반된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수출 중심 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관세 체계가 고착화될 경우 제네릭 기반의 단순 제조·수출 모델로는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따른다. 특히 북미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아시아 지역과의 생산 협력 네트워크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단기 충격이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촉발할 것으로 내다본다. 관세 부담은 일시적으로 해소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리쇼어링과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기술력과 생산 효율을 모두 갖춘 기업만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산업계의 초점도 이제 '저비용 수출'에서 '공급망 분산곽 기술 혁신'으로 옮겨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면서도 "이 경우 인건비 등 경제성이 맞을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글로벌 빅파마가 미국 내 생산을 해버리면 피곤해진다"며 "오리지널 의약품이 특허만료된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이들이 진출하면 경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