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PE 컨소, SK이노 6000억 CB 인수…"미워도 다시 한번" [넘버스]

2025-11-04     정유진 기자

 

한투PE가 다시 한 번 SK와 손잡았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SK온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하는 동시에, SK이노베이션의 60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SK온의 상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가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투PE가 주도하는 8개사 컨소시엄은 지난 22일 SK이노베이션이 발행한 6000억원의 CB를 전량 인수했다. 이들은 과거 SK온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FI로 SK이노베이션과 인연이 깊다. 2022년 12월과 2023년 3월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1조2000억원을 투자해 SK온 지분을 확보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지분 86.9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 그래픽=박진화 기자

SK온은 그동안 유증을 통해 꾸준히 외부 자금을 유치해 왔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조달한 2조원을 포함해 2022년부터 유증으로만 8조3093억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SK온의 IPO가 지연되면서 FI들의 엑시트 통로가 막혔고 이로 인한 갈등도 불거졌다. 전기차 수요가 꺾인 데 이어 시장 전반에 캐즘이 장기화한 탓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진 점도 SK온의 IPO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부터 SK그룹의 위기설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비주력 계열사 정리 등 리밸런싱(rebalancing)이 이뤄졌다. SK온의 FI 엑시트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은 지난 7월말 FI들이 보유한 SK온 지분 3조5880억원어치를 되사오겠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2023년 3월과 6월 유증에 참여한 FI들의 제1종전환우선주식이 대상이다. 덕분에 FI들은 주당 5만5000원에 인수한 주식을 주당 7만245원에 엑시트하기로 했다. 1조2000억원을 투자한 한투PE컨소시엄의 경우 1조5326억원을 회수하며 내부수익률(IRR) 13%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는 당초 공시한 대로 세 차례에 걸쳐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에 SNB캐피탈 펀드와 ENGZ홀딩스 등 해외 FI들로의 지분 2926만580주를 전량 매입했다. 오는 31일 한투PE 컨소시엄과의 거래를 끝으로 SK온 지분 매입을 마무리한다.

거래 후 한투PE는 SK와 관계를 다시 이어간다. 한투PE 컨소시엄은 오는 31일 SK온 지분을 SK이노베이션에 매각하는 동시에, 매각대금 중 6000억원을 SK이노베이션이 발행한 CB 인수에 투입한다. 지분 매각과 납입이 같은 날 이뤄지는 만큼 SK이노베이션은 지급해야 할 대금 일부를 CB로 대체해 현금 유출 부담을 줄인다.

한투PE컨소시엄-SK이노베이션 거래 구조 / 그래픽=정유진 기자

 

이번 CB는 무이자에 풋옵션도 없다. 전환가액은 12만3642원이다. 전환청구 기간은 2026년 10월 31일부터 2027년 10월 25일까지다. 한투PE 컨소시엄 입장에선 SK이노베이션 보통주 전환차익이 유일한 엑시트 통로인 만큼 향후 주가 흐름이 회수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는 여전히 자회사인 SK온이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지난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흡수합병했고, 오는 11월에도 SK엔무브를 흡수합병한다. 전지사업 중심으로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제17차 정기주주총회에서 "아무리 늦더라도 2028년까지는 SK온 상장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한투PE가) SK이노베이션과 SK온의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해 재투자를 결정했다”며 “단기적으로 SK온의 IPO 추진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