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사 모니터] SKC, '피아이씨' 매각 시나리오 셈법은
설비통폐합 등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의 재무현황을 짚어봅니다.
SKC가 프로필렌옥사이드(PO), 프로필렌글리콜(PG) 등을 생산하는 SK피아이씨글로벌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번 매각이 완료되면 SKC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사실상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이는 석유화학 업황 회복이 늦어진데 따른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내수 시장에선 SK피아이씨가 관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공동 출자자인 쿠웨이트 화학사 페트로케미칼(Petrochemical Industries Company K.S.C, PIC)에 SKC 보유 지분을 넘기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시장 냉기 속 그나마 양호한 다운스트림
현재 SKC는 SK피아이씨 지분 매각을 위해 물밑에서 인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업황 다운 사이클이 길어지면서 원매자 물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앞선 리밸런싱 차원 매각 때 보다 진척이 더딘 걸로 안다"며 "단순 사업부 매각이 아닌 경영권 통매각을 검토하고 있어 단순한 딜은 아니다"고 귀띔했다.
SK피아이씨는 2020년 SKC의 석유화학 부문에서 파생돼 출범한 기초 화학원료 제조사다. 핵심 제품군은 프로필렌옥사이드(PO), 프로필렌글리콜(PG), 스티렌모너머(SM) 등이다. 포트폴리오가 대체로 석유화학 밸류체인상 기초유분과 최종제품을 잇는 중간 가공단계에 몰려있다. 프로필렌에서 파생된 PO를 거쳐 PG가 생산된다. 또 SM은 벤젠과 에틸렌을 원료로 제조되며 각종 플라스틱·합성고무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처럼 미드·다운스트림 부문은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등 업스트림 제품 대비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여파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NCC 설비 등 기초 유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공급과잉이 덜한 편에 속해 매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SK그룹 내부에서 원료를 조달해오고 있어 공급망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실제로 PO, SM 원료인 프로필렌, 벤젠, 에틸렌 등은 SK지오센트릭에서 받아오고 있다. 연간 SK지오센트릭에서 구매하는 원료만 약 8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SK네트웍스, 피유코어 등에 일부 제품을 판매해왔다. 피유코어는 원래 SKC 자회사였으나 2023년 사모펀드 회사인 글랜우드PE에 매각됐다. 매각 이후에도 이러한 수직계열 구조가 유지된다면 협상은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유력 원매자는 쿠웨이트 PIC
구조조정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더라도 현재는 매각에 불리한 환경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워낙 강하고 해당 회사가 수년 전부터 적자를 내고 있다"며 "투자금 회수 사이클이 빠른 사모펀드 회사 상대로 인수 의사를 타진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SK피아이씨는 2023년, 2024년 각각 728억원, 526억원의 영업손실을 나타냈으며 올해 역시 상반기까지 344억원의 손실을 입어 적자 상태가 지속됐다. 가동률은 90%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물량은 꾸준히 소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료값 하락과 맞물려 판매가격이 떨어지면서 스프레드가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관계사나 이해관계가 깊은 제3자에게 매각하는 편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장은 SK피아이씨의 지분 49%를 보유한 쿠웨이트의 PIC를 유력 원매자로 꼽고 있다.
PIC는 KPC(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의 자회사로 현지 대표 석유화학사다. SK피아이씨가 출범한 2020년 투자에 참여한 이후 5년간 SK그룹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지분 양도 계약 당시 풋·콜옵션 행사 조항이 포함됐지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채무불이행(EOD) 사유가 발생한 경우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드래그어롱, 태그어롱 등 동반 매각 관련된 옵션은 언급되지 않았다.
쿠웨이트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려 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쿠웨이트 정부는 국가 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석유화학 증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쿠웨이트 프로필렌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4.4%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PO는 가장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됐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회사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SK 측도 PIC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