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정권의 그림자서 벗어나야 KT가 산다
KT가 다시 최고경영자(CEO) 교체 국면에 들어섰다. 김영섭 대표가 연임 도전 의사를 접고 이사회에 이를 공식화하면서다. KT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김 대표의 빈자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을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T를 비롯한 △포스코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은 최대주주가 부재한 구조적 이유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 선임 과정에서 외풍에 흔들렸다. 이번 역시 같은 장면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KT는 단순한 인사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전환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통신 중심 기업에서 인공지능(AI)·클라우드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그 변화의 궤도는 최소 3~5년 이상의 기술 주기에 맞춰져 있다. 반면 정권과 권력은 정치 주기로 움직인다. 기술 전환의 시간표와 정권의 시간표는 다르다. 문제는 그 간극을 CEO 교체라는 형태로 반복해서 비용으로 치러 왔다는 점이다.
KT는 △AI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산업용 로봇 플랫폼 △공공 디지털 전환 사업 등 기존 통신사 역할을 넘어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 상대는 더 이상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아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MS)·구글클라우드와 같은 세계적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면서도 협력한다. 이런 기업의 새로운 수장을 뽑는다면 마땅히 '자격과 전략'이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CEO 자리가 권력의 영향력 혹은 세력 확장 공간으로 해석되는 순간 KT는 또 한 번 방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소유분산기업에서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명확한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 각종 기관투자자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지만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체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이 틈은 언제나 가장 빠르게 정치를 불러들인다. 국가 기간망을 다루고 수천만 국민의 데이터와 통신 인프라를 책임지는 기업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흔들린다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된다. 서비스 품질·요금 정책·디지털 전환 속도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이번 CEO 선임 과정은 단순한 인사 절차가 아니다. 정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다. KT가 AI·클라우드 중심 기업으로 완성될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정권 주기의 흐름 속에 방향을 잃을지가 이번 CEO 선임에 달려 있다.
KT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소유분산기업의 CEO 선임이기 때문이다. KT의 CEO 선임 과정은 다른 소유분산기업 CEO 선임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다.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마음껏 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돼야 한다. KT와 같은 소유분산기업들도 마찬가지다.
AI 전환기는 정권보다 길다. KT의 미래를 결정할 사람을 고르는 일에 정치가 개입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