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연구한 수학자…삼성이 키운 '과학의 전환점' [현장+]
'성과보다 방향을 믿는다'는 철학으로 출범한 삼성의 미래기술육성사업이 민간 연구개발(R&D)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를 지원한 결과 연구가 실제로 상용화되며 공익연구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삼성은 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미래기술육성사업 2025 애뉴얼 포럼'을 열고 주요 연구성과를 공유했다. 이는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호기심에 따라 도전적인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국가 과학인재 생태계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은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뒷받침해왔다. 김재경 카이스트 교수는 원래 대수학을 전공한 순수 수학자로, 학문적인 깊이 외에 연구가 사회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수학자가 심장작동 원리를 연구해 심장마비를 예방했다'는 해외 사례를 접한 뒤 수학으로 생명과학의 난제를 푸는 길을 택했다. 이후 10여년간의 연구와 유학을 거쳐 카이스트에 부임해 수리생물학 연구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수리생물학은 국내에서 생소한 분야였다. 연구 기반이 충분하지 않아 오랜 기간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갖추지 못하다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을 알게 됐다. 이에 김 교수는 연구의 본질적인 성장을 위해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김 교수는 연구과제를 구상하는 과정 자체가 성장의 기회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시계열 데이터 분석을 위한 새로운 수학적 방법론'을 주제로 지원서를 제출해 2019년 최종 선정됐다.
그는 이 과제를 수행하며 수차례 실패를 겪었으나 초기 연구 때 작성했던 논문을 되짚는 과정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했다. 학부생들과 함께 이를 발전시켜 인간의 생리적 리듬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 결과 기후변화가 생체리듬에 미치는 인과관계와 수면·우울증 간의 상관성을 규명하는 성과를 냈다. 이 연구는 인간의 수면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알려주는 인공지능(AI) 수면관리 기능인 'AI 수면코치'로 개발돼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8에 탑재됐다.
김 교수는 올해 미국수학회(AMS) 연례총회에서 '수학과 AI가 인간의 건강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식'이라는 주제발표를 하며 학회 75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 초청 연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그는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은 단순한 연구비 지원이 아니라 연구자가 새로운 길을 설계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한편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은 2013년 출범 이후 12년간 880개 과제, 1만6000여명의 연구자를 지원하며 민간이 주도하는 공익형 R&D모델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