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술주 고평가 논란…AI 거품론에 흔들리는 투자심리
미국 기술주가 급락하면서 글로벌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주식 고평가에 대한 우려가 한층 고조됐다. 월가 주요 인사들도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며 증시 조정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경제전문 매체 CNBC에 따르면 최근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2년 내 주식시장이 10~20%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솔로몬은 지난 4일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리더 투자서밋에서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이는 전체 시장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전날 CNBC 인터뷰에서 AI 버블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술기업들의 “매우 긍정적인 생산성에 대한 기여”가 향후 해당 부문의 수익 흐름 불확실성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인 마이클 버리가 이끄는 헤지펀드 사이언자산운용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테크놀로지에 대해 대규모의 공매도 포지션을 구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버리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X를 통해 “가끔 우리는 거품을 본다"며 "가끔은 이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지만 때로는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AI 인프라, 반도체, 애플리케이션 기업 전반에 투자하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주가가 급락하며 일주일 만에 시총에서 약 500억달러가 증발했다.
반면 UBS의 키란 가네시 멀티애셋 전략가는 전체적인 시장 흐름이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며 눈에 띄는 수준의 변동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네시는 “투자 규모, 향후 현금 흐름 불확실성, 일부 고평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랠리는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고 실적 시즌 동안 증시가 상승세를 보였다고 강조하며 이후 일부 변동성이 나타났지만 “큰 그림은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자산을 구축하는 스웨덴 건설 그룹 스칸스카의 안데르스 다니엘손 최고경영자(CEO)는 성장 둔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미국의 데이터센터 파이프라인은 매우 강력하며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주요 국제 고객과 협력하고 있고 이들은 중앙유럽, 북유럽, 영국에서도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증시로 자금이 몰리는 것에 대한 위험을 지적하며 투자자들에게 해외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픽텟자산운용의 루카 파올리니 수석 전략가는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에 미국 주식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흥국 시장을 선호하며 인도, 브라질 등 AI 투자와 통화 완화 혜택을 받는 신흥국 전반에 걸친 분산 투자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AI 관련 주식 급등세가 1990년대 말의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당시 인터넷 기반 기업에 대한 투기적 투자로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급등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 붕괴하며 기업가치에서 수조달러가 증발했다.
그러나 이번의 AI 열풍을 주도하는 주요 기업들이 탄탄한 수익과 실질적인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이어서 닷컴 시대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AI 붐 대표 수혜주인 엔비디아는 지난달 사상 최초로 시총 5조달러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