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정현호]② 8년만에 조직 격상…삼성 '사지실', 과거 위상 되찾나
삼성이 그간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 간 사업 조율 및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해온 사업지원 테스크포스(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시키고 박한규 사업지원TF 담담 임원(사장)을 초대 실장으로 선임하는 조직개편 및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2017년 미래전략실(미전실)의 해체 이후 사실상 그룹의 컨트롤타워로써 명맥을 유지해온 사지TF가 출범 8년 만에 임시 기구에서 상설 조직인 '실(室)'로 거듭난 만큼 향후 조직 재정비를 통해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에 더욱 속내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번 조치가 컨트롤타워 부활과는 무관하다고 회사 측은 선을 긋고 있지만, 그간 안팎에선 3개의 TF 체제가 계열사 간 시너지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사회 의견을 모으는데도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을 받았던 만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본격적인 경영 전면 복귀과 더불어 '뉴 삼성' 구상 속 과거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재계의 청와대' 삼성 컨트롤타워…'국정농단' 후 역사 속으로
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개편하고 박학규 사장을 새 사업지원실장으로 위촉하는 내용을 담은 조직개편 및 인사 조치를 발표했다.
새 사업지원실은 전략팀, 경영진단팀, 피플팀 등 3개 팀으로 꾸려진다. 전략팀장은 최윤호 경영진단실장(사장)이 맡게 됐다. 경영진단팀과 피플팀은 각각 주창훈 부사장과 문희동 부사장이 팀장으로 위촉됐다. 특히 지난해 삼성글로벌리서치(SGR) 산하 조직으로 생겼다가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 조직된 경영진단실은 이번 개편으로 사업지원TF와 통합됐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2017년 11월 출범한 사업지원 TF는 이번 조치로 8년 만에 정식 조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재계 안팎에선 그룹 전체 이슈를 모아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컨트롤타워 체계를 일부 복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 컨트롤타워의 역사는 그룹 외형을 갖추기 시작한 1959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이서구 초대 실장이 지휘하는 20명 안팎의 비서실 조직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조직관리에 강한 일본 미쓰비시와 미쓰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처음에는 회장 의전기구 역할에 중점을 뒀으나, 1970~1990년대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룹 경영 전반을 다루는 조직으로 올라섰다. 당시 비서실은 삼성전관(현 삼성SDI), 삼성코닝,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해 그룹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다 1998년 IMF로 경영위기를 맞은 삼성은 비서실을 구조조정본부로 변경했다. 특히 '재무통' 이학수 본부장이 지휘한 이 조직은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로 어려움을 겪던 삼성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주도했다.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분사와 매각을 단행해 4만7000여명의 인력을 3만8000여명으로 줄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2006년 들어 구조조정본부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며 해체 위기를 맞았다. '안기부 X파일'은 1990년대 중후반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 오간 내용이 담긴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테이프가 2005년 폭로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이 일로 삼성은 당시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1997년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제공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후 삼성은 구조조정본부를 축소 개편해 전략기획실을 만들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5개팀 147명이던 조직과 인원은 전략지원팀, 인력지원팀, 기획홍보팀 등 3개팀 1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2008년 삼성 특검 여파로 해체됐다. 비서실장부터 구조본 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등 18년간 그룹 2인자의 자리를 지킨 이학수 고문도 이때 물러났다. 해체된 전략기획실은 50여명 수준의 업무지원실로 축소됐다.
2010년에 '애플발 폭풍' 속에 업무지원실은 미래전략실이란 이름으로 다시 되살아났다. 미전실은 전략·기획·인사지원·법무·커뮤니케이션·경영진단·금융일류화지원 등 7개 팀으로 이뤄졌다. 당시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의 이학수 사단으로 불리던 이들이 대거 퇴진하고 삼성SDI 출신인 김순택 부회장이 첫 수장을 맡아 삼성의 세대 교체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미전실은 비서실 출범 58년만인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간 김순택, 최지성 실장을 거치면서 삼성전자 등의 사업경쟁력을 끌어올렸으나 이재용 회장이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미전실을 없애겠다"고 공약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전실 대신 생겨난 3개 TF…명예 회복 속 '한계' 돌파 나서나
미전실 해체 이후 생겨난 삼성은 사지 TF를 비롯해 △금융 경쟁력 제고 TF(삼성생명) △EPC 경쟁력 강화 TF(삼성물산) 등을 만들어 사실상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신해왔다.
하지만 3개 TF 체제 후 삼성이 미래 먹거리 발굴과 선점을 위한 적기 투자 및 추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계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삼성 그룹의 감시 기능을 맡고 있는 준법감시위원회의 이찬희 위원장도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회사 측에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이번 조치는 컨트롤타워 부활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업지원TF가 오랜 기간 TF로 머물러 있던 만큼 이제는 TF를 떼고 조직을 안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예전부터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사업지원실은 3개 팀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과거 미전실보다 훨씬 작다"며 "컨트롤타워 부활과는 무관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회사 측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재계 안팎에선 이번 개편을 계기로 취임 3년을 맞은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 전면 복귀와 함께 자신의 '뉴 삼성' 구상을 보좌할 그룹 컨트롤 타워 재건에 시동을 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재용 회장과 함께 올해 2월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도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개인을 넘어 그간 부도덕한 기업으로 오해 받던 시선에서 벗어나는 등 그룹 차원의 명예 회복 역시 컨트롤타워 부할에 힘을 싣고 있다.
한편 일부에선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가 자리 잡히면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점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은 오너 경영이 최선이 아닐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계열사별 자율경영과 이사회 기능을 강화시키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다시 미전실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든다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그간 TF 체제가 한계를 보인 만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인력을 충원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개편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