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정현호]⑤ '인사 태풍' 예고 삼성, '세트·반도체' 사장단 거취 촉각
삼성이 그룹 2인자로 불린 정현호 부회장의 용퇴와 맞물려 임시 조직이던 사업지원 테스크포스(TF)를 상설 기구인 '실(室)'로 격상한 가운데 연말 사장단 인사 폭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 부회장이 스스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모양세를 택한 만큼 안팎에선 이재용 회장 역시 자신의 '뉴삼성' 구상을 실현할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며 전면 쇄신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 가운데 세트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경우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 중이다. 이에 따라 노태문 사장의 부문장 승진이 주목된다.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경우 전영현 부회장이 겸임 중인 메모리 사업부장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임명될지 관심이다.
3부회장 체제 가능성…노태문 '직무대행' 꼬리표 떼나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개편하고 정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용퇴하면서 박학규 사업지원 TF 담담 임원(사장)을 초대 사업지원실장에 위촉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그룹 수뇌부에 대한 인사가 이뤄진 만큼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사장단에 대한 경영 평가 역시 조만간 마무리 짓고 빠르면 이달 중순쯤부터 내년도 사장단·임원 정기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삼성전자는 12월 초 인사를 발표했는데 최근 2년간 11월 말로 앞당겼다. 특히 미국 관세 정책 등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확대로 조기 인사가 재계 트렌드가 된 만큼 지난해(11월27일)보다 시점을 한층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장단 인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점 중 하나는 '3부회장 체제' 구축 여부다. 그간 삼성전자는 정현호-한종희-전영현 등 3인 부회장이 각각 그룹 전략, 완제품, 반도체를 맡아 회사를 이끌어 왔다.
이 가운데 DX부문은 올 4월 한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인 노 사장이 직무대행으로서 리더십에 공백을 채우고 있다. 이에 노 사장이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DX부문장을 맡게될지 주목된다.
경영 성과 측면에선 충분하단 평가가 나온다. 노 사장은 그간 스마트폰사업을 맡고 있는 MX사업부를 이끌며 회사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실적 버팀목으로써 역할을 톡톡히 해났다. 실제 노 사장은 취임 전인 2020년 99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MX사업부(네트워크 포함)의 매출은 지난해 117조3000억원까지 성장했다.
특히 애플은 물론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힘들던 시기 노 사장은 갤럭시S 시리즈를 비롯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개발에 참여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 부회장의 용퇴 역시 노 사장의 승진에 힘을 실고 있다. 그간 삼성은 2인자의 용퇴 선언 후 세대교체가 뒤따랐다. 앞서 권오현 회장(DS부문장)이 2017년 10월 경영 일선에 물러나자 당시 윤부근(CE부문장)·신종균(IM부문장) 부회장도 동반 퇴진했다. 2022년에도 김기남 회장(DS부문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김현석(CE부문장)·고동진(IM부문장) 사장도 사퇴했다.
실제 연말 인사에서 노 사장이 승진하게 된다면 모바일사업에서 성공한 DNA를 영상·가전(VD·DA) 등 세트사업 전반으로 확대해 이 회장의 '뉴 삼성' 구상에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노 사장이 DX부문장으로서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겸임 중인 MX사업부장에서 물러날 지도 관심이다. 현재 노 사장은 DX부문장 직무대행을 포함해 MX사업부장, 품질혁신위원장까지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후임에는 지난해 원포인트 인사로 승진한 최원준 MX사업부 개발실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신상필벌 기조…메모리·VD 사업부 '분위기 대조'
신상필벌 기조 속에 실적이 부진한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사업부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성과를 보인 메모리사업부에는 상반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올 3분기에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사업에서 1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증권가에서는 추산했던 3000억원대의 영업이익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매출도 전년 동기 14조1400억원에서 13조9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번 실적에 대해 삼성전자는 "TV사업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는 견조했으나 글로벌 TV 수요 정체와 시장 경쟁이 심화하며 실적이 하락했고 생활가전사업 역시 에어컨의 계절적 비수기 진입과 미국 관세 영향 등이 겹치며 실적이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4분기 역시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대외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연말 성수기 시즌을 겨냥한 마케팅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용석우 사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앞서 용 사장은 지난 2023년 연말 인사에서 한 부회장에 이어 VD사업부장에 올랐다. 이후 AI 기술을 TV에 접목하는 '비전 AI' 전략을 내걸고 마이크로 RGB,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으로 실적 반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TV 출하량이 4975만대로 집계됐다. 3분기 출하량이 5000만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년 같은 분기 대비로는 4.9% 감소했다.
다만 일부에선 용 사장이 내부 신임이 두터운 만큼 유임쪽에 무게가 실린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용 사장은 최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회장 자격으로 '제20회 전자·IT의 날 기념식' 등을 참석하며 대외 활동을 넓히고 있다. 이 자리는 20년 넘게 삼성전자 부회장들이 맡아온 자리다.
생활가전(DA)사업부장 역시 김철기 부사장이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직 보임한지 반년 정도로 된 만큼 좀 더 역할을 하면서 노 사장을 보좌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DS부문에선 메모리를 비롯해 부진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LSI(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연달아 성과를 보이며 경영 능력을 입증한 인사들이 대거 등용될 것이란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전 부회장이 겸직 중인 차기 메모리사업부장에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사장)과 HBM 개발을 이끈 황상준 D램개발실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송 사장은 지난해에도 하마평에 올랐으며, 황 부사장은 HBM 개발을 총괄하는 TF를 이끌며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의 경우 박용인 사장이 거취가 주목된다. 박 사장은 그간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엑시소스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갤럭시Z 플립7에 이어 갤럭시S26 시리즈에 탑재시킨데 성공한데 이어 최근에는 애플 이미지센서 납품을 따내며 적자 탈출을 눈앞에 뒀다.
다만 2021년부터 사업부를 이끈 박 사장이 1964년생으로 올해 만 61세인 만큼 세대교체 바람 속 한 번 더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파운드리사업부의 경우 지난해 승진한 한진만 사장이 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를 잇따라 고객사로 확보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만큼 변화보단 안정화를 통해 내년 가동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의 생산 전략 수립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간 이재용 회장 최측근에서 보좌해온 정 부회장의 용퇴로 새로운 리더십을 구출할 명분이 생겼다"며 "취임 3년차를 맞은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뉴 삼성' 구상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전면에 세울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