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정현호]⑥ 사법리스크와 삼성 컨트롤타워, 부회장단의 의미

2025-11-11     김수민 기자
경기 수원 삼성전자 본사 전경.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또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섰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어진 컨트롤타워는 비자금 특검과 국정농단을 거치며 해체와 변주를 반복해왔으며 그 중심에는 늘 부회장급 전략 인사가 있었다. 사실상 컨트롤타워 역할인 사업지원TF를 이끌어온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가운데 전영현 단독 부회장 체제의 공백을 메울 추가 부회장단 카드로 박학규 사장의 승진이 거론된다. 사업지원실의 정식 조직화 이후 박 사장의 승진으로 퍼즐을 맞출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이달 7일 정 부회장이 사업지원TF장에서 회장 보좌역으로 위촉 업무가 변경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업지원TF는 사업지원실로 격상됐으며 박 사장이 초대 사업지원실장을 맡게 됐다.

 

4개의 컨트롤타워, 3번의 사법리스크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1959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회장 비서실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고(故) 이건희 전 회장 시기에는 1998년 구조조정본부, 2006년 전략기획실, 2010년 미래전략실 등으로 이어진다.

삼성 컨트롤타워의 변곡점은 모두 사법리스크와 연결됐다는 특징이 있다. 구조조정본부는 안기부 X파일로 정치권과 검찰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2006년 전략기획실로 조직을 축소 개편했다. 전략기획실은 2008년 이건희 전 회장의 비자금 특검으로 인해 해체됐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한 컨트롤타워는 2017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며 또 다시 해체됐다.

삼성전자는 미전실 해체 이후 사업지원TF를 설립했지만 공식적으로 컨트롤타워 부활과 무관하다며 늘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업지원TF는 정현호 부회장 체제로 약 8년간 운영돼왔으며 올 연말 사업지원실로 격상됐다. 정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 사장이 초대 사업지원실장을 맡게됐다.

과거부터 삼성 컨트롤타워 수장을 맡은 인물들은 그룹 내에서 2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이학수 부회장은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거쳐 전략기획실 부회장을 지냈으며 미전실은 김순택 부회장에 이어 최지성 부회장이 이끌었다. 정 부회장도 사업지원TF 초기에는 사장급 인사로 합류했지만 2021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사실상 부회장급 전략 인사를 기용해 그룹 컨트롤타워를 운영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현호 발자취, 박학규 사장 승진 임박

정 부회장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박 사장의 향후 거취를 짐작해볼 수 있다. 정 부회장이 2017년 사업지원TF장으로 부임할 당시에는 삼성 안팎에서 컨트롤타워 부활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았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도 진행중인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컨트롤타워를 부활시켜 운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 부회장은 4년 뒤인 2021년 부회장단에 이름을 올렸다. 컨트롤타워를 공식적으로 부활시키는 대신 정 부회장을 승진시켜 사업지원TF팀을 부회장급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당시 김기남 DS부문장 부회장이 회장 승진,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이재용·정현호·한종희 등 3인 부회장단 체제를 구축해 조직 안정화라는 당위성도 마련했다.

박 사장은 이번 보직 변경으로 사업지원실장을 맡게 됐다. 다만 이번 보직 변경은 삼성그룹의 정식 연말 임원인사는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의 부회장급 중 경영일선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전영현 부회장이 유일하다. 정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음을 고려하면 부회장단을 추가 보강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박 사장은 1964년생으로 1960년생인 정 부회장과 4살 터울이다. 정 부회장이 4년 전인 2021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점을 고려하면 시기적으로도 박 사장의 부회장 승진이 납득 가능하다. 여기에 사업지원실이 정식 조직으로 승격됐기 때문에 박 사장의 승진으로 부회장단급 조직으로 만들어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높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 그간 부회장급 조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박 사장의 승진은 올해가 아닐지라도 사실상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이 아직 회장 보좌역으로 남아있는 만큼 공식 은퇴 시기와 박 사장의 승진 시기를 조율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박 사장은 향후 이 회장과 함께 뉴삼성의 기반을 마련할 전망이다. 박 사장은 미전실 출신으로서 재무·관리 역량을 보유한 인물이다. 또 S/W 관련 학과였던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과학과 대학원에서 ‘대화형 시스템’의 설계 및 구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공학적 이해도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안정성은 높이면서도 정 부회장과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박 사장의 첫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