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40일 만에 멈춘 카카오게임즈 ‘가디스 오더’, 불 꺼진 사무실이 남긴 질문

2025-11-12     최이담 기자

카카오게임즈의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 ‘가디스 오더’가 출시 40일 만에 종료됐다. 퍼블리셔인 카카오게임즈는 개발사 픽셀트라이브의 경영상 어려움으로 업데이트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환불도 진행하고 있다. 

조치는 신속했다. 그러나 ‘출시 40일 만의 종료’는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수집형 RPG의 흥망이 초기 지표에 좌우되는 것은 익숙하지만, 통상 3~6개월의 조정기간을 거쳐 업데이트·이벤트·광고 등을 병행하며 손익을 점검한다. 이번에는 이 같은 조정기간도 없었다. 시장에서의 성과보다는 구조적 한계가 게임을 멈춰 세웠다. 특히 대형 퍼블리셔와 유망 중소 개발사의 조합에서 벌어진 일이라 파장이 컸다.

픽셀트라이브는 지난해 로드컴플릿에서 인적분할로 분사한 법인으로 독립 이후 인력·자금을 분리 운영해왔다. 다만 '가디스 오더'의 출발점이 로드컴플릿 내부 프로젝트였고 개발 DNA를 공유한 제작진도 포진돼 있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두 회사를 사실상 '같은 뿌리'로 인식해왔다. 로드컴플릿은 2022년 출시한 방치형 RPG '레전드 오브 슬라임'으로 주목받은 회사다. '가디스 오더'는 그들의 대표작인 '크루세이더 퀘스트'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시장의 기대도 높았다.

이번 사태로 픽셀트라이브를 넘어 로드컴플릿으로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리스크 차단을 위한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해석부터 '법으로는 별개라도 결국 같은 회사 아니냐'라는 지적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업계는 이번 사안을 ‘버닝코스트’의 문제로 본다. 버닝코스트는 매출이 거의 없어도 매달 필수적으로 드는 비용이다. 인건비(개발·아트·QA·운영), 서버, 미들웨어·라이선스, 커뮤니티·CS, 그리고 최소한의 이용자확보광고(UA) 테스트 비용까지 포함된다. 

수집형 RPG는 라이브 운영을 전제로 설계돼 고정비 비중이 높다. 업계에서는 60~70명 규모의 스튜디오인 경우 월 5억~6억원이 든다고 말한다. 월매출이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현금흐름은 곧바로 ‘마이너스’가 된다.

한 전직 게임사 본부장은 "사실 수집형 RPG의 경우 일주일만 서비스하면 결과가 예측되지만, 보통 한두 달은 추이를 지켜본다"며 "다만 기준선에 못 미치고 결제전환이 약하면 2~3주 차부터 손익표가 '불가능'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이용자 지표가 꺾이고 매출이 기준을 넘지 못하면 매달 적자가 누적돼 개발사가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40일 만의 중단은 내부 자금사정이 상당히 악화됐다는 뜻이다.

또 다른 현업 관계자는 업황 악화를 변수로 짚었다. 국내 게임 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수익성 없는 게임을 장기운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과금 이용자의 배신감을 고려하면 최소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관례에 가깝다"며 "한 달 만의 중단은 매우 빠른 결정이고 그 배경에는 퍼블리셔도 더는 지원하기 어려운 환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이번 선택은 누군가의 일방적 일탈이라기보다 빠른 회수와 손실 최소화를 전제로 한 현재의 퍼블리싱 구조로 인한 결과에 가깝다. 소프트론칭을 길게 가져가며 지표를 다듬는 서구식 방식과 달리 국내 시장은 ‘출시-초기 피크-판정’으로 사이클이 짧다. 초기 데이터가 문턱을 넘지 못하면 버닝코스트 앞에서 결론은 빨라진다. 

현재 카카오게임즈는 퍼블리셔로서 책임을 지고 이용자 환불에 나섰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만 '왜 갑자기 종료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불이 꺼진 판교테크노밸리의 픽셀트라이브 사무실 /사진=최이담 기자

픽셀트라이브는 결국 파산절차를 밟게 됐다. 배정현 픽셀트라이브 대표는 12일 공식 입장문에서 "(회사의) 파산 관련 법적 절차를 앞두게 됐다"고 밝혔다.

<블로터>는 배 대표의 입장문이 나오기 전인 이달 10일 픽셀트라이브, 로드컴플릿 사무실이 소재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빌딩을 찾았다. 3·4층의 픽셀트라이브 사무실은 불이 꺼진 반면 5·9층에 있는 로드컴플릿 사무실은 환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가는 직원들도 다수 보였다. 기자가 물어보면 “저희는 로드컴플릿 소속이며 픽셀트라이브와 무관하다”고 답했다. 배 대표는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회사에 오기도 한다”는 전언을 들었다. 두 회사의 사무실은 1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온도 차가 극명했다. 불 꺼진 층에는 책임이 없었고 불 켜진 층에서는 말이 없었다.

다행히 배수정 로드컴플릿 대표와는 연락이 닿았다. 그는 “물적분할이 아닌 완전분사”라며 “법인·인력·자금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돼왔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외부에서는 '가디스 오더'를 만든 같은 팀으로 본다. 이 지점에서 오해가 생긴다. 법적 구분은 깔끔하지만 브랜드와 신뢰는 그렇게 명확히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판교테크노밸리 소재 로드컴플릿 사무실 외관 /사진=최이담 기자

게임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개발사는 이용자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라이브 서비스는 기술이 아니라 소통으로 유지되는 사업이다. 이에 이용자는 법적 관계보다 태도와 설명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한 작품의 실패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빠른 회수와 손실 최소화를 전제로 한 산업구조가 이용자의 신뢰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내 게임 시장은 이제 ‘출시-초기 피크-철수’로 이어지는 짧은 사이클에서 게임을 소모품처럼 소비하고 있다. 개발사의 자금난, 퍼블리셔의 리스크 관리, 조기 판정 구조가 맞물리며 ‘출시-실패-철수’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가디스 오더'가 종료된 가운데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또 한 번의 실패를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실패를 바탕으로 산업의 체질을 바꿀 것인가. 게임 산업은 이제 단기성과의 프레임을 넘어 실패를 기록하고 복기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이용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음 세대의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