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12년 만에 등기이사 복귀..알리바바 견제 직접 나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신세계·알리바바 합작법인(JV) 이사회의 초대 의장에 선임된다. 정 회장이 그룹 등기이사를 맡는 것은 2013년 ㈜신세계 및 이마트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은 지 12년 만이다. 국가 간 기업결합인 만큼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이자 알리바바 측에 경영 주도권이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12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신세계·알리바바 JV인 그랜드오푸스홀딩은 최근 이사회 구성을 완료하고 초대 의장으로 정 회장을 선임했다.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이 지분을 5대5로 나눠 갖는 JV는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올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고 출범했다.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한다”며 "JV 이사회 의장을 정 회장이 맡는 데는 알리바바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지마켓의 재도약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에 정 회장이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가 신세계그룹 등기임원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은 2013년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2020년 이마트 최대주주에 오를 때도, 지난해 회장으로 승진할 당시에도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다. 정 회장은 2011년 이마트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이사회에 참여했지만, 이듬해부터 경제개혁연대와 민주노총이 배임과 업무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그를 고소·고발하는 등 잡음이 잇따르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사퇴했다.
이사회 의결권을 갖는 등기이사는 경영상 중대 결정을 내리고 법인의 민형사상 책무도 져야 한다. 그간 미등기 임원이었던 정 회장에게 ‘책임회피’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에 단순 합류를 넘어 이사회를 총괄하는 의장으로까지 나선 데는 합작법인이 국가 차원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한중 기업 간 결합이라는 구조적 특수성으로 개인정보의 국외유출 가능성이 내재된 만큼 책임경영의 인상을 심어줄 명분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 등 당국도 기업결합 심사 당시 소비자 데이터 상호사용 금지 조건을 붙이는 등 예의주시하고 있다.
합작법인 경영의 무게추가 알리바바 측으로 쏠린 것 아니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구성원은 5인으로 현재 파악가능한 4인 중 정 회장을 제외한 3인이 알리바바 소속이거나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제임스 동 AIDC인터내셔널마켓플레이스 사장과 제임스 장(한국명 장승환) 지마켓 대표,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 등이다. 애초 신세계그룹이 전문경영인 수준으로만 이사회에 참여했다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도권이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다만 견제와 감시 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관계 그룹의 최대주주 오너가 이사회를 이끌 경우 이해충돌을 야기하고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JV는 주요 결의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삼아 이를 극복할 방침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윈윈’ 모델 구축에 방점을 두고 대표이사도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측 인사를 공동으로 내세워 균형을 맞췄다.
실무진 배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에는 이마트 재무담당이었던 장규영 상무를 선임했다. 장 상무는 이사회 멤버는 아니지만 투자집행과 자금운용 등 실무를 총괄할 예정이다. 그랜드오푸스홀딩은 직구·역직구 등 해외 이커머스 시장을 겨냥한 신세계그룹의 중장기 중점사업이다. 알리바바의 글로벌 유통망과 직소싱 시스템을 활용해 5년 내 지마켓의 전체거래액(GMV)을 1조원까지 늘리고 수억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JV의 양대주주인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진이 이사회에 포함되는 것은 그만큼 양사가 긴밀한 협업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의미”라며 “국내외 이커머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