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속도 낸다" 금융위 이억원, 정책 실행 국면 진입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금융정책의 속도를 강조하며 정책 기조를 실행 중심으로 전환했다. 이 위원장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임 2개월 차를 맞아 기틀 마련 이후의 과제를 언급하며 정책 추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난제가 한국 경제를 계속 짓누르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실물경제가 뚫고 올라가야 하고, 결국 금융이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금융의 3대 전환(생산적·포용적·신뢰금융)' 구상을 다시 꺼내며 산업·벤처·미래형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야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첨단전략산업기금 50조원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에 투입될 계획이라고도 언급했다.
포용금융은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청년·신혼부부 대상의 주택대출, 생애 최초 대출 지원은 유지하면서 연체 채무자의 신용회복 지원 방안을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강조해온 포용정책이 제도 설계와 운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는 "신용대출이 전체적인 가계부채 증가를 견인하거나 건전성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10·15대책 이후 관계부처와 협업하며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제도 정비는 여전한 과제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장기투자 세제 인센티브 확대는 국회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장기투자 문화를 뒷받침할 운용 규제 완화와 투자자보호 제도도 미비하다.
혁신산업 자금 유입을 위한 모험자본 공급 체계도 손질이 필요하다. 정책펀드와 민간펀드 간 운용 기준이 엇갈리면 투자금이 중복되거나 한쪽으로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전략산업기금이 민간자본의 흐름을 끌어내려면 운용 기준 정비가 필수적이다.
포용금융 제도화도 숙제로 남아 있다. 채무조정과 신용회복 지원은 확대됐지만 현장의 자율 참여율은 낮다. 채무감면 위주의 단기 조치로는 지속가능한 재기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재기의 금융'이 작동하려면 신용정보 관리와 채권회수 절차를 포함한 일관된 제도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뢰금융을 위한 감독체계 개편 역시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2금융권 익스포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통합 체계가 구축되는 단계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과제다. 금융위가 '시장 신뢰'를 정책 핵심에 둔 배경에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디지털전환의 와중에 법적 기반도 미비하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고 데이터 활용 기준 정비도 지연되고 있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AI 기반 리스크 관리 체계가 본격화되되려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개인정보보호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금융위는 주요 법안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동시에 다음 달 10일 첨단전략산업기금 출범 준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이 위원장은 "금융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단계는 지났다"며 "이제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