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첨단 AI 칩 부족 사태 심화…美 수출통제 통했나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압박을 받는 자국 기술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첨단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가 자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의 생산 물량 배분에 개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SMIC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AI) 칩을 생산하는 화웨이에 우선순위를 주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중국 기술기업들은 이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AI 스타트업인 딥시크는 칩 부족으로 올해 초 최신 모델 출시를 연기해야 했다. 또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은 수천개의 칩을 결합해 대규모 AI 학습이 가능한 전력 소모형 시스템을 구성하는 등 우회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칩의 중국 수출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는 안보 담당 보좌관들이 첨단 기술이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가장 낙관적인 전망을 기반으로 해도 자국 수요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진보연구소의 사이프 칸 “생산량을 다섯 배로 늘려도 내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국 수출도 금지하고 있어서 중국은 효율이 떨어지는 구식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불량률이 높고 수율은 낮다. 모건스탠리는 SMIC 기술로 화웨이의 첨단 910C 칩을 제조할 경우 실리콘 웨이퍼 100장 중 95장이 불량품일 것으로 추산했다.
진보연구소는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칩 B300급인 미국의 최상위급 칩의 올해 생산량이 중국의 약 25배에 달하고 내년에는 그 격차가 40배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칸은 이러한 칩 부족이 미국의 수출통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중국 당국도 자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미국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인정하는 한편 빠른 성장 속도와 국가 주도의 생산 체계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국영 데이터센터들에 엔비디아 칩 사용 중단을 지시했고 일부는 이미 기존 엔비디아 제품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당국은 일부 기업들에 구형 엔비디아 제품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많은 중국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익숙해졌고 자국 칩은 발열, 시스템 불안정, 소프트웨어 지원 부족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 엔비디아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을 밀수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 측은 “밀수입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고 중국 내 수요나 생산 격차에 대한 일부 수치는 과장됐다”며 반박했다. 회사는 또 “중국 산업계가 이미 군사 목적을 포함한 어떤 용도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AI 칩과 서버를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이 자체 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화웨이는 중동 등으로 칩 수출을 추진하고 올해 엔비디아와 경쟁할 AI 슈퍼컴퓨터도 공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이미 반도체 생산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고 전 세계 AI 개발자의 절반이 중국에 있다며 중국 시장 전용으로 개발한 자사 블랙웰 칩을 수출해야 화웨이 칩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그는 “중국은 AI 분야에서 미국보다 단 몇 나노초밖에 뒤처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AI 담당관 데이비드 삭스는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기술 진전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투자가 결국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6월 의회에서 “화웨이가 연간 약 20만개의 AI 칩을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화웨이 관계자들은 실제 생산량이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고 회사는 내년까지 생산 능력을 두 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미 정부도 화웨이의 생산량이 내년에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화웨이가 올해 80만5000개의 어센드 프로세서를 생산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이 중 일부만 엔비디아의 최고급 제품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1~2년 안에 대중국 일부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히는 한편 대상을 엔비디아의 최첨단 제품보다 몇 세대 뒤처진 칩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