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투자 A to Z] 한국 기업, 환경 인허가 리스크에 주목해야
이승민 외국변호사·이지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중동부 유럽 투자 정보를 전합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성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며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중동부유럽(Central and Eastern Europe) 지역은 전략 산업의 생산기지로 주목받는 동시에 까다로운 환경 인허가 제도가 기업 활동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CEE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환경 인허가 리스크를 EU 및 각국의 규제 체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실무적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최근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CEE 국가가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핵심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EU의 전략 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이에 따른 환경 인허가 리스크 역시 점차 부각되고 있다. 특히 EU 차원의 통합환경관리 지침과 각국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는 한국 기업에 실질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국내와는 다른 법적 구조와 언어 장벽, 공공 의견 수렴 절차 등으로 환경 인허가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지연이나 비용 증가를 경험할 수 있다. EU는 단순한 오염 방지를 넘어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자원 효율성과 제품 설계, 공급망 구조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 인허가를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닌 사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EU 차원의 환경 인허가 프레임워크
EU의 환경 인허가 제도는 산업배출지침(Industrial Emissions Directive, IED)와 환경영향평가지침(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Directive, EIA),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 포장재 및 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2024년 8월 발효된 IED 2.0은 기존의 IED(2010/75/EU)를 대체하며 대기·수질·토양 등 주요 오염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최선의 이용가능기술(BAT)' 기준을 인허가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물·에너지·자원 사용에 대한 정량적 자원 효율성 요건을 도입하고 배터리 기가팩토리와 금속 채굴, 폐기물 매립장, 집약적 축산시설 등도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정기 현장 점검(1~3년 주기)과 기업 매출의 최대 3%에 달하는 벌금 등 강력한 제재 체계도 마련됐다.
EIA(2011/92/EU 및 2014/52/EU 개정)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에 대해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공공 참여와 정보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강화한다. 특히 자연보호구역이나 문화유산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생물서식지지침(Habitats Directive) 등과의 연계를 통해 더 엄격한 검토가 요구된다. 국경을 넘는 영향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인접국과의 협의 절차도 포함되며 회원국은 위반 시 효과적이고 억제적인 제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2024년 7월 발효된 ESPR은 기존의 에너지 관련 제품에 국한됐던 규제를 확장해 거의 모든 물리적 제품에 대해 내구성, 수리 가능성, 재사용성, 재활용성 등 환경 성능 기준을 적용한다. 또 디지털 제품 여권(DPP)을 통해 제품의 수명주기 전반에 걸친 정보를 디지털화해 소비자와 기업이 지속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참고로 향후 2025부터 2030년까지 작업계획을 통해 우선 적용 대상 제품군이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PPWR은 2026년부터 적용된다. 이는 포장재의 설계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규제하는 강력한 제도다.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는 실질적으로 재활용 가능해야 하며 플라스틱 포장재에는 최소 재활용 원료 함량 기준이 적용된다. 일회용 포장재 사용 제한, 재사용 비율 확대, PFAS 등 유해물질 함량 제한, 빈 공간 최소화, 통일된 라벨링 의무화 등은 기업의 제품 설계와 공급망 전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확대된 생산자책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 제도에 따라 포장재 생산자는 등록과 보고, 분담금 납부 등 복잡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등 제재가 부과된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환경 규제
CEE 국가들도 EU 지침을 반영해 자국 환경법을 강화하고 있다. 헝가리는 환경보호법(LIII of 1995)과 정부령 314/2005 등을 통해 EIA와 통합환경사용허가(IPPC)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규 사업뿐만 아니라 공정·규모 확대, 신규 오염물질 배출, 자연보호구역 영향 등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환경영향평가가 요구될 수 있으며 해당 절차는 관할 행정기관이 주도한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은 EU EIA 지침과 연계돼 운영되며, 환경영향에 대한 기초 정보 제공, 대중 참여, 사후 정보 공개 등 투명성 확보가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헝가리 정부는 지속적으로 환경규제 집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장기간 환경허가·대기오염·소음 등의 분야에서 제재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올해 초 '오염자 부담 원칙'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벌칙 강화를 발표했다. 폐기물관리 영역을 중심으로 처벌 수준이 상향되고, 중대한 위반행위자에 대한 정보공개 절차가 신설되는 등 제도의 집행력 제고가 핵심이다. 이는 단순한 벌칙 증대가 아니라 '사전 예방 및 오염자 부담'이라는 환경정책의 기본 원칙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는 전환으로 평가된다.
헝가리는 2023년 7월 1일부터 EU 지침에 부합하는 EPR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폐기물 관리의 책임을 정부가 아닌 민간 컨세션(독점 사업권) 기업으로 이관한 것이다.
이 역할을 맡은 기업이 바로 MOHU(MOL Hulladékgazdálkodási Zrt.)다. MOHU는 헝가리 정부로부터 향후 35년간 폐기물 관리 독점 사업권을 위임받아, EPR 대상이 되는 포장재 및 기타 순환형 제품의 수거, 처리, 재활용 등 전반적인 시스템 운영을 주관한다. 이에 따라 포장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군의 생산자 또는 수입자는 △국가 폐기물 관리 당국(OKIR)에 생산자로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제품 및 포장재 관련 데이터를 보고하며 △산정된 EPR 분담금을 MOHU에게 직접 납부 등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수천만 포린트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체코에서는 환경영향평가법(Act No. 100/2001 Coll.)이 환경 및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토지·수질·대기·기후·생물다양성·경관·문화유산 등 다양한 환경요소와 이들 간 상관관계를 포함한 영향이 평가 대상이다. 대규모 투자사업이 부속서(Annex) 기준에 따라 '카테고리 I·II'로 구분되고 사전 심사 또는 전면 평가가 시행된다. 또 통합오염방지법(Act No. 76/2002 Coll.)은 산업시설의 IPPC를 통한 운영단계 배출통제를 규정하며, 허가조건은 최신의 '최선의 이용가능기술(BAT)' 기준에 기초해야 한다. 이처럼 체코의 환경법제는 EIA 단계의 사전 심사와 산업운영 단계의 배출허가를 결합한 이원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체코의 환경 규제는 요소별 개별법률(예컨대 대기질법, 수질법, 자연보호법 등)과 연계돼 있는데, 이는 산업시설이 단일 허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와 법률을 통과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업자가 규제요건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절차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라는 현실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나 외국 투자자가 체코에서 대규모 제조시설을 계획할 경우, EIA 요건과 함께 IPPC 및 각 개별 환경법상 요건을 조기에 검토하고 허가 절차와 허가 조건을 면밀히 준비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체코는 EU의 순환경제 정책에 발맞춰 확장생산자책임(EPR) 제도를 강화하고 있으며, 포장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군에 대해 생산자 등록, 데이터 보고, 분담금 납부를 의무화하고 있다. 체코 환경부는 이를 위해 EKO-KOM 등 공인된 EPR 조직을 통해 포장재의 수거 및 재활용을 관리하며, 모든 생산자와 수입자는 해당 조직에 등록하고 분기별로 포장재 사용량 및 재질에 대한 상세 데이터를 보고해야 한다.
특히 체코는 해외 기업도 자국 내에서 제품을 판매하거나 유통하는 경우, 현지 대리인을 지정하고 EPR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등록 지연이나 보고 누락에 대한 행정적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체코의 이러한 조치는 EU 전역에서 강화되고 있는 포장재 규제 흐름의 일환으로 기업들은 공급망 전반에 걸쳐 포장재의 재질, 양, 재활용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과 고려사항
이처럼 CEE의 환경 인허가 제도는 EU 규범과의 정합성을 기반으로 점차 통합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는 여전히 언어, 행정 절차, 법률 해석의 차이로 인해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특히 EIA와 IPPC 절차는 사업 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진출 초기 단계부터 환경 규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현지 법률 전문가 및 환경 컨설팅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U의 지속가능성 중심 규제 흐름에 맞춰 제품 설계, 원자재 조달, 공급망 구조를 재정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특히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춘 기업은 산업탈탄소촉진법(Industrial Decarbonisation Accelerator Act),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등 신규 규제 하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전략 프로젝트로 선정될 경우 인허가 간소화 및 재정 지원 혜택도 기대할 수 있다. 중동부유럽은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하는 시장인 만큼 환경 인허가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선제적 대응이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