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엘바이오, '8조 LO' 허상…재무 리스크 여전
에이비엘바이오가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기술이전(LO) 계약을 맺었다고 공개했다. 총액은 8조원에 달하지만 실제로 회사가 손에 쥐는 현금은 588억원이다. 이에 대부분이 임상과 허가 단계에서 성과형 구조로 설계돼 단기 유동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계약을 자금조달의 전환점이 아니라 내부 유동성 실험의 연장선으로 평가한다. 이와 동시에 외형보다 실질에 주목해야 할 '성과형 거래'의 대표 사례로 지목했다.
총액 98% 불확정 계약…외형 대비 현금 유입 '미미'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이비엘바이오는 최근 일라이릴리와 이중항체(BsAb) 플랫폼 '그랩바디-B'의 LO 계약을 체결했다. 총계약금은 26억200만달러(약 3조8072억원)로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의 1만1398%에 해당한다. 선급금은 4000만달러(약 588억원)이며 나머지는 임상·허가·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과 판매 로열티로 지급된다. 이는 올해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맺은 4조원대의 계약 이후 두 번째 대형 플랫폼 딜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계약을 '성과형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사례'로 본다. 외형상 8조원대의 초대형 거래지만 실질 현금유입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체 금액의 98% 이상이 불확정성과형으로 구성돼 단기 재무개선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승인절차를 마쳐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도 유입 시점을 늦추는 요인이다.
이번 거래와 관련해 실질적 '조달'보다 상징적 '기술검증'에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도 많다. 성과형 계약 구조는 글로벌 LO 시장에서 일반적이지만 그만큼 자금인식 속도가 더디다. 현실적으로 향후 수년간 추가로 현금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마일스톤이 임상과 허가 단계별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약사와의 협업은 신뢰도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회계상 현금인식은 보수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는 이번 계약으로 재무구조 전환을 이뤄낼 여지는 작다고 진단한다. 에이비엘바이오의 확정현금이 총액의 1.5%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공시상 금액은 8조원대로 부각됐지만 실제 현금화 속도가 더디다는 점도 한몫 한다.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3분기 기준 1243억6000만원)을 고려하면 이번 선급금 유입에 따른 재무적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여겨진다.
선급금도 내부 유동성 순환에 머물러
이번 계약으로 확보한 선급금은 규모보다 자금의 성격이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형상 외부 자금 유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 유동성 순환 구조의 연장선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회사는 선급금이 모회사인 에이비엘바이오로 귀속되며 자회사인 네옥바이오에는 직접 유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이 단기 유동성 방어보다 연구개발(R&D) 자금 보강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자금 유입보다 사용 경로가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R&D 중심의 폐쇄적 현금흐름이 지속될 경우 재무 체질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들 것으로 내다본다. 구체적으로는 '유증-현물출자-선급금'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외연 확장에는 의미가 있으나, 자금순환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풀이된다. 외부 자금이 유입돼도 내부에서 순환하는 한 재무구조 전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유증으로 1400억원을 조달했고 올해 9월에는 미국 자회사 네옥바이오에 420억원을 현금출자했다. 이어 10월에는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ABL206'과 'ABL209'를 143억원 규모로 현물출자하며 내부자금 운용을 이어갔다. 이 같은 자금흐름은 그룹 내 자금 재배분으로 외부 조달 없이 자체 유동성으로 R&D 투자에 나서는 방식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유증 자금이 ADC 개발 목적에 맞춰 네옥바이오 출자금으로 쓰였으며, 이번 선급금은 면역항암제와 그랩바디 플랫폼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자금의 용처가 명확히 구분돼 있다는 점은 회계투명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목적이 한정된 R&D비 중심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현금흐름 완충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금흐름 방어력, 다음 과제로 부상
이번 계약 이후의 핵심 변수로는 현금흐름의 '방어력'이 언급된다. 선급금이 일시적으로 완충 역할을 하더라도 R&D가 본격화되면 현금 소진 속도는 다시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이번 단기 유입보다 중장기 유출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재무안정성의 관건은 확보된 현금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다.
시장은 이번 거래의 실질적 과제가 '조달'보다는 '소진 속도 관리'라고 본다. 추가 자금 유입이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R&D 지출이 늘어나면 회사는 다시 내부자금 운용이나 신규 조달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계약이 '외부 유입의 전환점'이 아니라 '현금흐름 방어의 시험대'로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올해 들어 네옥바이오를 중심으로 임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ADC와 면역항암제를 병행 개발하는 구조가 강화될수록 임상비와 기술료 선투입 부담이 커진다. 여기에 달러결제 기반의 해외 임상시험위탁(CRO) 비용까지 감안하면 선급금으로 확보한 현금이 내년 상반기 중 상당 부분 소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일라이릴리 계약 선급금 588억원은 행정절차가 끝나고 10영업일 뒤에 들어오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증 및 최근 현물출자 자금의 용처 구분에 대해서는 "지난해 유증으로 조달한 자금은 ADC 개발에 쓰였고 네옥바이오 출자금도 그 돈에서 나간 것"이라며 "선급금이나 마일스톤을 받게 되면 면역항암제나 그랩바디 개발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