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정현호]⑨ 다시 도는 M&A 시계?…'안중현' 배치에 담긴 삼성의 계산법
삼성전자가 사업지원실 조직을 개편하면서 전담 M&A팀을 신설했다. 삼성이 M&A를 팀명으로 명시한 전담조직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대 팀장에 기술·전략·투자를 모두 경험한 안중현 사장을 선임하며 곧 본격적인 M&A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안 사장의 최우선 과제는 '삼성식 M&A의 복원'이 될 전망이다.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상황에서 어떤 영역을 직접 개발하고 어떤 역량을 외부에서 확보할지 판별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기술·전략·M&A 아우른 안중현 전면 배치
14일 삼성에 따르면 초대 M&A 팀장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안 사장이 선임됐다. 통상 대기업 M&A 조직의 책임자 자리에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출신이 기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비(非) IB 출신이 기용된 것은 안 사장이 기술과 전략 전반을 이해하는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사장은 삼성전자 내 기술·전략·M&A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해 반도체 공정 제어, 서버 시스템, 임베디드 장비 안정성 확보 업무를 담당했다. 9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한 후 카이스트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학위을 취득하며 삼성전자 전략·투자 분야로 이동했다. 이후 기술 기반 사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전략실 전략1팀, 사업지원TF, 삼성글로벌리서치 미래산업연구본부장 등 그룹 핵심 전략 조직을 두루 거쳤다.
대형 딜을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직접 수행한 경험도 안 사장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약 9조원 규모의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다. 국내 기업이 추진한 M&A 가운데 최대 규모의 거래로 당시 삼성은 대내외 압박을 받던 국정농단 사태 시기에도 최종 클로징까지 완주했다. 삼성의 글로벌 크로스보더 딜 수행 능력을 확인시킨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안 사장은 과거 화학 계열사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았다.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의 한화 매각, 삼성SDI 화학부문·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의 롯데 매각 등 주요 포트폴리오 조정 거래가 그의 손을 거쳤다. 재계에서는 안 사장이 관여한 대·중소규모 딜이 50건을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안 사장이 기술 기반 이해도와 전략·투자 역량을 동시에 인물이라는 점은 이번 발탁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로 꼽힌다. 그간 삼성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기술을 깊게 아는 경영진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 대해 기술과 M&A 양쪽을 모두 경험한 인물을 전면에 세워 균형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삼성식 M&A 다시 시동거나
M&A팀 실무 라인업은 임병일 부사장, 최권영 부사장, 구자천 상무 등 금융·전략·기획 역량을 두루 갖춘 인물들로 채워졌다.
임 부사장은 글로벌 IB인 UBS 출신이다. 2021년 11월 삼성전자로 적을 옮긴 이후 이듬해 사업지원TF에서 M&A 관련 실무를 총괄해왔다. 최 부사장은 삼성디스플레이 기획팀을 거쳐 지난해 말 사업지원TF로 이동한 뒤 이번에 M&A 조직으로 편입됐다. 구 상무는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 기획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사업지원TF에서 주요 딜을 다뤄왔다.
안 사장을 필두로 IB 출신 금융 전문가와 전자·디스플레이·반도체를 두루 경험한 내부 기획 인력이 한 팀에 배치되면서 단순 타당성 검토를 넘어 구조 설계·실사·협상까지 일괄 수행 가능한 실행형 M&A체제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사업지원실의 조직적 역할을 감안하면 M&A팀은 인수뿐 아니라 매각·분할·합병 전반을 포괄하는 포트폴리오 재편 창구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이 같은 조직적 정비가 이뤄진 시점에서 시장 환경도 삼성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글로벌 금리가 고착화되면서 기술기업 밸류에이션이 전반적으로 조정 국면에 진입했고 팬데믹 이후 높아졌던 우량 기술기업의 몸값이 현실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전략적 자산을 적정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술기업 가치가 정점을 지나 조정되는 흐름과 삼성의 조직 개편 시점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부터 삼성이 주도하는 M&A는 사실상 타이밍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