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in부산] 지스타2025, 승부수와 위기 사이…K-게임, '글로벌 시험대'에 서다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G STAR) 2025’가 K-게임의 ‘글로벌 재도전’을 위한 무대가 됐다. 하지만 흔들리는 전시회의 위상도 동시에 드러냈다. 엔씨소프트·넷마블·웹젠 등 주요 게임사는 지스타를 무대로 글로벌 동시 출시와 ‘착한 비즈니스모델(BM)’을 앞세운 대형 신작을 쏟아냈지만, 현장은 예년보다 한산했고 해외 게임사의 참여 역시 구작 위주의 팬서비스에 머물렀다.
올해는 유독 정치권 인사들의 방문이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정책 환경이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규제 개선 의지가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글로벌 노리는 K-게임, 신작으로 승부수
올해 지스타는 국내 게임사들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신작들이 다수 공개됐다. 엔씨소프트는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전면에 배치했다. ‘아이온2’를 필두로 오픈월드 슈팅 ‘신더시티’, 액션 지향의 ‘타임테이커즈’, 애니메이션 스타일 RPG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 신규 MMORPG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까지 총 5종을 전면 공개했다.
엔씨소프트는 지스타 2025 현장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앞으로 출시하는 게임은 글로벌 동시 론칭을 기본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지역 선출시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용자 부담을 낮춘 BM 설계도 관전 포인트다. 또한 뽑기 중심 BM을 배제하고 글로벌 이용자 기준에 맞춘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넷마블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선보였다. 액션 RPG ‘나 혼자만 레벨업: 카르마’를 비롯해 협동 액션 ‘프로젝트 이블베인’, 오픈월드 기반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수집형 액션 RPG ‘몬길: 스타 다이브’ 등을 앞세웠다.
웹젠은 오랜 기간 확보해 온 ‘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프로젝트 G’를 새롭게 공개하며 글로벌 공략 의지를 드러냈다. 또 애니메이션풍 서브컬처 게임 '게이트 오브 게이츠'도 공개하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크래프톤은 일본 포켓페어의 '팰월드' IP를 활용한 게임 ‘팰월드 모바일’을 전면에 내세웠다.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 마련된 부스에는 테스트 빌드를 체험하려는 관람객이 몰리며 장시간 대기줄이 이어졌다.
지스타는 국내 게임사들에게 출시 전 ‘글로벌 시장에서의 첫 심사대’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스타에서 초기 긍정적 반응을 얻은 게임이 글로벌 성과로 이어졌던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도 인기 타이틀에는 유난히 관람객이 몰렸다. ‘아이온2’와 ‘팰월드 모바일’, ‘카르마’,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부스 앞에는 최대 3~4시간 대기줄이 형성됐다. 일부 관람객은 접이식 의자를 들고 와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버텼고, 전날 밤부터 ‘오픈런’을 준비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작 시연과 별개로 개발 생태계를 넓히려는 시도도 있었다. 게임 엔진사 유니티는 ‘유니티 인디 쇼케이스 존(유니티 월드 존)’을 운영하며 전시회에 또 다른 색을 더했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유럽·미주 등 13개국 인디 게임 30여 종을 한데 모아 소개했다. 또 스탬프 투어·미니 세션 등 부대 프로그램을 통해 인디 개발자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흔들리는 ‘글로벌 게임쇼’ 위상
이용자들의 열기와 달리 전시장 전반의 온도는 예년만 못했다. 주최 측은 ‘44개국 1273개사, 3269부스’라는 수치를 강조했지만 체감 밀도는 이전보다 확연히 낮았다. 올해는 일일 관람객 집계도 공개되지 않아 현장 분위기와 발표 수치 간 괴리가 더욱 커졌다. 현장에서는 “최근 3년 중 가장 조용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왔다.
해외 게임사의 참여 규모는 확대됐지만 ‘허울 뿐인 참여’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제2전시장 BTC관에서 블리자드는 12년 만에 공식 부스를 설치했지만 오버워치 부산맵 체험 등 팬서비스 중심 구성에 머물렀다. 일본 아틀라스는 신작 없이 기존 타이틀만 선보였고 다른 해외사 부스도 대부분 구작 홍보나 행사성 참여로 채워졌다. 글로벌 신작 공개는 배틀스테이트 게임즈(BGS게임즈)의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정도였다.
국내 주요 대형사의 불참도 지스타의 공백을 키웠다.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게임스컴·도쿄게임쇼 등 해외 주요 전시회가 연중 콘텐츠 발표 중심으로 자리 잡은 반면, 지스타는 국내 시장 중심의 B2C 행사 포맷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여당 대표도 벡스코 찾아
올해 지스타는 유례없이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행사이기도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현직 총리 자격 최초로 지스타를 방문했다. 엔씨·넷마블·크래프톤 등 주요 부스를 둘러보고 일부 게임을 직접 시연하며 “게임이 산업으로 자리 잡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앞서 게임업계 면담에서 밝힌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다”는 발언도 언급하며 “산업적 가치와 여가로서의 역할을 함께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스타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는 현장에서 ‘카르마’를 직접 플레이하며 개발진에게 세부 시스템을 묻는 등 게임 이용자에 가까운 태도로 관심을 보였고, 인디게임 참여 규모도 챙겼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작비 세액공제·연구개발(R&D)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며 “기획재정부 설득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존재감은 올해도 미약했다. 장관·차관이 모두 불참했다. 주요 행사는 과장급이 대리 참석해 게임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정부 기조와 현장의 간극이 드러났다.
올해 지스타는 예년보다 조용했지만 K-게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 무엇이 부족한지를 동시에 드러낸 자리였다. 글로벌 공략에 나선 신작들은 존재감을 입증했지만 전시회의 위상과 정책 환경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