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박학규 부회장 승진' 둘러싼 두 가지 시나리오

2025-11-17     최지원 기자
/그래픽=박진화 기자

 

삼성 사장단인사가 임박한 가운데 격상된 사업지원실을 이끌고 있는 박학규 사장의 승진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전략·진단·인사·인수합병(M&A) 등 그룹 차원의 조정기능이 대폭 확대된 구조에서 '사장'이라는 직급이 조정 권한의 실질적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TF→실(室) 됐지만 수장 직급은 사장?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상설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했다. 사업지원실은 전략팀, 경영진단팀, 피플팀, M&A팀 등 4개 팀으로 구성됐다. 기존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에 있던 경영진단 기능이 삼성전자 내부로 이관되고 M&A 전담팀이 신설되는 등 조정·지원 기능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조직 확대와 달리 사업지원실장의 직급은 여전히 사장이다. 이것이 재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해석되는 대목이다.

박 사장은 미래전략실, 삼성전자 DS(반도체)·DX(완제품) CFO(경영지원실장), 사업지원TF 등 핵심 조직을 두루 거친 전략·재무통으로 그룹 내부 조정과 의사결정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런 이력만 보면 전신인 사업지원TF를 이끌었던 정현호 전 실장(부회장)의 뒤를 자연스럽게 잇는 후임 라인이다.

실제로 그간 삼성의 전통을 보면 그룹 전체의 전략·진단·인사·구조조정 기능을 맡은 조직의 수장은 대부분 부회장급이었다. 구조조정본부를 이끌었던 이학수·김순택,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그리고 사업지원TF의 정현호까지 모두 부회장이었다. 이 직급은 단순한 서열 표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계열사 대표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룹 차원의 조정·감독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직 기능이 오히려 커졌는데 실장 직급은 한 단계 낮은 사장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역할과 직급 간에 괴리가 있으며, 현재 직급으로는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 있다'는 해석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경영진단 기능이 삼성전자 내부로 들어오면서 사업지원실은 앞으로 계열사·사업부와의 직접 접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DS부문 등 일부는 부회장이 수장인 만큼 사장급 실장이 조정 역할을 할 때 미묘한 위상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도 현실적인 변수다.

이 같은 이유로 재계에서는 연말인사에서 박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박 사장이 부회장에 오를 경우 사업지원실이 사실상 그룹 조정 기능을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게 된다.

 

책임경영 기조 속 '사장 유지론'도 힘받아

박 사장이 올해 인사에서도 사장 직급을 유지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사업지원실에 대한 일련의 조정이 권한 확대라기보다는 체계 정비에 가깝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삼성 내부에는 계열사 간 조율 기능을 일정 수준 강화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특정 조직에 과도하게 상징적으로 무게가 실리는 것을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사업지원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정·진단·지원에 맞춰져 있다. 그룹 전략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 경영진단 기능 이관이나 M&A팀 신설 역시 업환이 변동하는 가운데 중복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관리적 조정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장 직급을 부회장으로 올릴 경우 '컨트롤타워 완전복원'이라는 외부의 해석이 앞서게 된다. 이는 삼성으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은 대목이다.

이재용 회장이 그동안 강조해온 책임경영 기조 역시 변수다. 미전실 해체 이후 삼성은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전략과 실행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부여해왔다. 이에 사업지원실이 다시 부회장급 조직으로 격상되면 이 구조가 흔들리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사장급 유지는 안정적인 선택이다.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균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업지원실이 조정 기능을 무리 없이 수행할 만큼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양대 사업부 '겸직 체제' 향방도 관전 포인트

올해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삼성전자 내부 수장들의 겸직 체제 변화 여부다. 현재 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메모리사업부장을, DX부문장 직무대행인 노태문 사장은 MX사업부장을 각각 겸하고 있다. '부문장 겸 사업부장' 체제는 삼성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조치로 반도체 부진과 스마트폰 경쟁 심화라는 긴급한 경영환경에서 불가피하게 구축된 과도기적 포맷에 가깝다.

만약 부문장 또는 사업부장 직책에 변화가 생길 경우 이는 단순한 보직 조정을 넘어 반도체·모바일 전략의 재설계와 직결된다. 기술투자 우선순위, 고대역폭메모리(HBM)·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경쟁력 강화, 프리미엄 스마트폰 전략 등 중장기 제품 포트폴리오 개편과 연동되는 구조적 변화이기 때문이다.